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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Dec 14. 2022

3. 2차 지식혁명과 대학의 발전

2차 지식혁명과 대학의 발전   

중세 말기가 되면서 상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베네치아와 피렌체 등 이탈리아의 도시들이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중세 봉건 질서가 흔들리자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야 일자리를 찾고 돈을 버는 법이다. 경제적인 이유와 함께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도시로, 도시로 달려왔다. 도시가 발달하고 인구가 늘자 법률가, 행정가, 교사 등 전문가들이 필요했다.


이탈리아의 도시들뿐만 아니라 유럽의 도시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려 노력했다. 파리, 볼로냐, 로마 등의 도시는 새로운 지적 자극을 갈망하는 사람들로 넘쳤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새로운 교육기관이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수도원과 같은 폐쇄적인 교육기관이 아니라 개방적이고 체계적인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이다. 배움을 원하는 학생들이 권위 있는 학자들로부터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드디어 대학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중세 대학은 교회와 수도원의 성직자들이 독점하던 지식을 대학으로 가져왔다. 대학에서는 전문적 강의와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대학은 서양 학문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었다. 인문주의의 성장, 종교개혁의 성공, 과학의 혁명적 발전 등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근대 학문은 신천지를 개척했다. 대학은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지식을 전파했다. 동시에 대학은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의 발전을 이끌기 시작했다.


중세 시대는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들이 라틴어로 된 성경과 지식을 독점했다. 일반인들은 성경과 지식을 읽을 수도 없었고, 필사본인 책을 접할 기회조차 없었다. 14세기에 시작된 르네상스는 그런 폐쇄적이고 신학 중심의 지적 토양을 인간 중심의 문화로 바꿔 놓았다.


14세기에 시작된 르네상스는 신 중심의 문화를 다시 인간 중심의 문화로 되돌려 놓았다. 철학, 논리학, 수학, 과학 등의 새로운 이론이 속속 등장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갈릴레오 갈릴레이,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요하네스 케플러, 프랜시스 베이컨,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수많은 과학자와 예술가, 인문학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인간의 문화, 예술, 과학의 수준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리는 업적을 남겼다.


르네상스의 천재들이 발표하는 새로운 학설이나 작품들을 중세 도시로 전파하는 지식 전달 도구가 필요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정보 공유 네트워크를 절실히 요구했다. 그때 혜성같이 새로운 지식 공유 플랫폼이 등장한 것이다. 바로 구텐베르크(ohannes Gutenberg, 1400~1468)가 발명한 활판 인쇄술이 그것이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 전달 수단인 인쇄술이 등장하면서 지식의 세계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중세는 성직자와 귀족이 지식을 독점했다. 그들은 라틴어로 된 성경과 필사본의 책들을 소유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책에 접근할 기회조차 없었다. 인쇄술의 발달로 활자로 출간돼 대량으로 유포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인쇄된 책을 읽었다.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은 인쇄 출판물을 가지고 공부하고 토론했다. 인쇄 출판물을 중심으로 한 지식 기반 사회가 만들어졌다. 그 중심에 있는 인쇄 출판물은 문자 발명 이후 2차 지식혁명의 방아쇠를 당겼다.


도약은 비약적으로 일어난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유발 하라리 교수는 『사피엔스』(김영사, 2015)에서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의 변화인 인지혁명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인지혁명 덕분에 인류는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의 직접 조상인 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지구에 등장했다. 그들이 인지혁명에 성공하기까지는 최소 13만 년 이상의 긴 세월이 필요했다. 그 후 기원전 3,000년경 문자가 발명되기까지는 또 그만큼의 긴 시간이 흘러야 할 만큼 사피엔스의 출현과 인지혁명 사이, 그리고 다시 인지혁명과 문자 발명 사이에는 시간의 간극이 컸다.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도약과 도약 사이에는 최소 10만 년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했다.


문자 발명이라는 1차 지식혁명이 일어난 후, 인쇄술 발명이라는 2차 지식혁명까지 약 5천 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이 기간은 문자를 이용해 지식을 축적했기 때문에 지식을 축적하는 시간이 짧아졌다. 글자를 이용함으로써 축적하는 지식의 양이 증가한 덕분이다. 문자가 발명되고 글자를 사용하면서 도약의 시간이 놀랄 만큼 단축된 것이다.


글자를 이용한 지식은 여전히 소수의 전유물이었다. 지식은 여전히 대중화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축적할 지식의 양도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다음 도약인 2차 지식혁명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문자가 발명된 덕분에 도약의 간극이 짧아졌다. 도약과 도약 사이에 인류는 포탄 속의 화약 채우듯이 지식을 차곡차곡 쟁였다. 그렇게 축적된 지식은 적절한 시대적 배경이라는 불씨를 만나는 순간 대폭발을 일으켜 왔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은 인류의 지적 도약에 크게 공헌했다. 인쇄술의 발명은 수도원 도서관에 갇혀 지내던 지식을 해방했다. 지식을 가둬 둔 중세의 문이 열리자 지식의 물결이 세상 밖으로 힘차게 흘러갔다. 인쇄술은 지식을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도록 했고, 덕분에 지식은 도시와 농촌 가릴 것 없이 넘쳐났다. 이처럼 인쇄된 책과 출판물은 새로운 지식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했다.


새로운 지식 플랫폼으로 성장한 대학 

대학은 인쇄 출판물을 이용해서 지식을 전파하는 대학은 지식 플랫폼 역할을 담당했다. 소소의 특권층이 알음알음으로 주고받던 지식이 개방적 지식 공유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대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대학의 지식은 세상을 향해 뻗어나갔다.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다. 최근 디지털 기술 기반의 인터넷이 지식혁명을 일으킨 것과 유사하다. 인쇄술과 인터넷의 발달은 지식의 전파 속도를 비약적으로 빠르게 했다. 또 지식이 대량 유통되는 데 혁혁하게 공헌했다. 중세 말기의 출판 기술 기반의 지식 혁명은 20세기의 디지털 기반 기식 혁명에 버금가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중세의 대학은 문자의 발명이라는 1차 지식혁명과 인쇄술 발명이라는 2차 지식혁명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렸다. 대학이 등장하던 초기는 지식의 기반을 다듬고 초석을 다지는 시기였다. 최근 대학이 경험하는 디지털 기반의 지식혁명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온라인 대학은 전통적인 캠퍼스 중심의 대학에 심각한 도전이다.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강좌들은 대학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역사는 늘 반복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달라도 역사의 본질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중세의 몰락과 르네상스의 지적 개혁을 이끈 대학이 거꾸로 강력한 자기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중세 수도원이 변화를 거부하는 바람에 지식 공유 플랫폼 기능을 대학에 빼앗겼듯이, 대학도 자기 혁신을 서두르지 않으면 디지털 기술에 자리를 뺏길 수도 있다. 입학자원 부족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릴 형편인데, 첨단 기술과 경쟁해야 하는 대학의 환경이 녹록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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