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속에 싹트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일찍이『노동의 종말』(민음사, 2005)과 『3차 산업혁명』 (민음사, 2012)에서 사회의 변화를 꿰뚫어 본 사회사상가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한계 비용 제로 사회』 (민음사, 2022)에서 자본주의의 불안한 미래를 진단하고 있다. 그는 지금의 자본주의 이론은 환경공학, 화학, 생물학 등이 경제이론과 결합한 새로운 학제적 학문의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터넷, 사물인터넷, 인공지능의 뛰어난 생산성이 제공하는 한계비용 제로 사회가 자본주의의 종말을 앞당길 수 있다고 진단한다.
리프킨의 주장에 따르면, 강력한 신기술 플랫폼은 지금의 자본주의 이론을 위기의 종반전으로 몰아간다. 그는 인터넷, 사물인터넷, 인공지능의 뛰어난 생산성이 제공하는 한계비용 제로 사회가 자본주의의 종말을 앞당길 수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사물인터넷은 여러 분야의 재화와 서비스를 사실상 무료 또 무제한으로 공급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상품의 희소성을 바탕으로 한 이윤을 축적하는 기업의 설 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리프킨의 말에 따르면, 이대로 가면 기업이 자본을 소유하고 공장을 가지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생산성이 높아져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한계비용이 0이 되면 상품 가격도 0에 가까워진다. 이런 사회에서는 자원, 재화, 서비스의 희소성에 기초한 가격 책정 메커니즘도 사라진다. 상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전통적 기업 작동 원리가 먹히지 않고 자본주의는 그 작동 근거를 상실한다.
신기술의 발달로 한계비용이 사라지면 초기 투자비와 간접비도 없어진다. 그 정도로 경제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아지면 경제는 풍요롭고 기업은 더 이상 한정된 상품으로 비싼 가격을 책정할 수 없게 된다. 모든 사람이 돈을 내지 않고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많이 얻을 수 있다면 교환가치는 쓸모가 없어진다. 사람들은 상품과 서비스의 사용가치와 공유가치를 즐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소유권 중심의 자본주의는 접근권 중심으로 공유경제로 권한을 대폭 이양할 것이라고 리프킨은 주장한다.
리프킨은 ‘사물인터넷’의 생산성과 ‘공유경제’ 모델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소유 중심의 교환 가치에서 접속 중심의 공유 가치가 대세가 되는 ‘협력적 공유사회’가 온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는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사적 소유의 세상이다. 가지려고 하는 사람보다 물건의 공급이 적다. 사람의 욕구보다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발생하는 희소성이 지배한다. 강력한 신기술 플랫폼은 재화와 서비스를 거의 무료로, 원하는 것만큼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진보한 상태가 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해도 의미가 없어진다. 더 가지려고 다툴 필요가 없어지면 재산권도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산수단을 강제로 국가에 귀속하거나 사회의 소유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술 자체가 자연스레 그렇게 공유경제로 넘어가게 한다는 뜻이다. 피를 뿌리는 혁명이나 기득권 세력을 축출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공유경제는 서서히 사적 소유권의 자본주의 사회를 대체하리라는 것이 리프킨의 생각이다.
기술혁신은 한계비용을 제로로 만든다.
리프킨의 책에 나오는 내용을 계속 소개하자. 리프킨은 시카고 대학교 교수였던 오스카 랑게(Oskar Lange 1904~1965)가 지적한 자본주의의 기술혁신의 딜레마를 소개하고 있다. 랑게는 자본주의가 생산성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 추구하는 기술혁신이 자본주의 체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말한다. 랑게는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제도가 계속 무한히 경제적 진보를 촉진할 것인지 의문을 품는다. 기술 발전의 어느 단계에서 그 시스템의 성공 자체가 더 이상의 진보를 막는 족쇄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술혁신에 성공한 기업은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을 낮춰 큰 이익을 축적한다. 경쟁 상대들은 화들짝 놀라 기술 혁신에 매진한다. 후발 주자도 기술혁신에 성공하고, 선도 기업 사이에 경쟁은 치열해진다. 그 결과 상품 생산 비용은 낮아지고, 한계비용이 0에 가까워진다. 비용을 0에 가깝게 떨어뜨린 소수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는 승자독식 경제가 된다. 신규 기업이 진입하기에는 한계비용을 0으로 낮추기에는 큰 부담이 된다. 소수 기업이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는 성숙기 시장에서는 기득권층이 추가적인 경제적 진보를 막는 데 힘을 쏟는다.
그렇다고 독점시장을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경제적 진보를 막으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로 돌아간다. 새로운 기업이 나타나 계속해서 기술혁신을 시도한다. 생산성을 높이고 가격을 낮춰 경쟁자들보다 싼 가격으로 고객을 확보한다. 생산성의 증대는 계속 비용과 가격을 떨어뜨리고 마진을 줄어들게 한다.
최신 기술이 경제를 한계비용 제로 시대로 빠르게 바꾼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이윤이 남지 않는다. 자본을 소유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렇다면 사적 소유를 기반으로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시장경제가 자멸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를 보전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사적 소유보다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공유경제가 자본주의의 위기를 보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쇠퇴하고 협력적 공유 경제가 부상한다.
"자본주의가 나름의 자손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 ‘협력적 공유사회(Collaborative Communication)’를 토대로 한 공유경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19세기 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출현 이후 처음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다.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는 얘기다."
리프킨의 저서 『한계 비용 제로 사회』의 첫 문단에 나오는 글 일부다. 극도의 생산성이 주도하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모든 사람과 사물을 연결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빠르게 재화와 서비스가 거의 무료 수준인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한계비용이 거의 제로가 되면, 자본주의는 다음 반세기에 걸쳐 쇠퇴하는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러프킨은 생산수단의 사적 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대신 생산수단의 협력적 공유사회가 경제생활을 조직하는 지배적인 모델로 자리 잡는다고 예언한다.
리프킨의 전망이 옳을지 그럴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경제도 역사 속에 등장한 많은 체제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영구 불멸한 체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의 삶이나 체제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로병사의 사이클을 피할 수 없다. 언젠가는 자본주의 다음의 경제체제가 올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그런 경제체제가 오길 학수고대한다.
얼마 전에 나는 '적자생존(適者生存)'만 중요한 게 아니라 '협자생존(協者生存‘)'도 중요하다는 글을 브런치에 올린 적이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사람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 협력하며 더불어 사는 사람도 옳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내가 말한 협자생존의 기본 개념은 협력적 공유경제의 그것과 닮은 점이 있다. 리프킨은 자신의 박학한 지식을 바탕으로 정교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감히 내 생각을 그의 논리와 견줄 수는 없지만, 그런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