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아 악당이 되거나 생각을 바꾸거나..

by Henry

영웅으로 죽거나 끝까지 살아남아 악당이 되거나

“고대 로마는 제국이 위기에 처하자 황제를 추대해 위기를 넘겼죠.”

“로마의 황제 시저는 권력을 포기 못 했죠.“

“맞아. 영웅으로 죽거나 끝까지 살아남아 악당이 되는 거지."


배트맨 시리즈의 명작 ‘다크 나이트’에 나오는 대사이다. 마지막 대사는 검사 하비 덴트가 한 말이다. 존경받는 순간에 죽으면 영웅으로 기억되지만, 살아남으면 점차 악당으로 변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사실 우리는 영웅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권력을 탐하고 타락하는 일을 자주 봐왔다. 처음에는 맑고 깨끗한 영혼이 세월과 함께 변색하고 검고 탁한 색으로 변하는 경우도 많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1959년 1월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최고 권력에 오른 카스트로는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하고 농민에게 몰수 토지를 무상 배분하는 획기적인 농지 개혁에 착수했다. 쿠바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미국과 국교를 단절하며 쿠바를 사회주의 국가로 변모시켰다.


카스트로는 젊은 변호사로 부패 정권에 맞서 혁명가가 되었다. 그는 혁명에 성공한 후 49년 동안 쿠바를 통치했고, 2016년 90세 나이로 사망했다. 그를 혁명가로 존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 그를 반대파를 잔인하게 숙청한 독재자로 비난한 사람도 있다. 카스트로는 쿠바 혁명의 영웅이었고, 또 오래 살아남았다. 카스트로도 혁명을 준비할 때 분명 영웅이었지만, 권력을 잡고 난 후 점차 악당으로 변모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체 게바라



또 한 사람의 쿠바 혁명의 영웅은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라는 긴 이름을 가진 남자다. 본명보다 체 게바라(Che Guevara)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는 아르헨티나의 의사 출신으로 쿠바 혁명에 가담했다. 혁명 성공 후 그는 쿠바의 중앙은행 총재와 장관 자리에 올랐다. 그는 카스트로 다음의 높은 지위에 머물지 않고, 제3세계 해방을 위해 안락한 삶을 버리고 전쟁터로 떠났다.


콩고 혁명에 가담한 체 게바라는 이후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였다. 1967년 10월 미국 CIA의 지휘를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정글에서 사살됐다. 카스트로와는 달리 39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는 세계인의 가슴속에 영웅으로 살아남았다. 별을 단 베레모와 덥수룩한 구레나룻의 모습은 20세기 저항운동의 상징이 됐다. 그는 변하지 않은 초심을 안고 영웅으로 죽었다.


체 게바라가 꿈꾸던 혁명의 세상이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지 아닌지는 불투명하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혁명의 이상도 세월과 더불어 변해가고 혁명의 주역들도 타락하기 때문이다. 볼리비아 깊은 숲에서 죽어간 게바라의 꿈은 그의 죽음 때문에 아름답게 채색되었다. 만일 그가 살아남았다면 그의 꿈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의 꿈을 아름답게 꽃 피우기에는 현실이 너무 각박하다. 체 게바라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이 세상이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면 신념도 색이 바랜다.

뭐 굳이 영웅을 말할 필요까지도 없다. 그래도 그들은 변색하기 전까지는 맑은 영혼을 가졌다. 보통 사람은 그보다 더 빨리 생각을 바꾸고 처세를 달리한다. 치열한 경쟁 사회의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 살아남기 위해 안면을 바꾸고 이웃과의 결합을 끊기도 한다. 생각의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 생각은 변색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변하는데 사람의 생각이 어찌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너무 쉽게, 너무 빨리 생각의 색깔을 바꾸는 건 경계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나도 얼마나 많이 생각을 바꾸며 살았던가. 수시로 노선을 바꾸고, 줄 바꾸는 일을 반복했다. 어떻게 하면 가늘고 길게 살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 소시민의 애환을 직접 체험한 나로서는 사람의 생각이 바뀌는 것을 뭐라 할 처지가 아니다. 내가 살아온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낯부끄럽고 얼굴이 화끈거린 적이 한두 번도 아니다.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면 누구나 생각이 바뀌고 영혼의 색도 바랜다. 마음이 강건한 사람은 끝까지 버텨내겠지만, 마음 여린 사람은 버텨내지 못한다. 권위에 복종하고 조직의 명령에 순응하려는 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 그들을 과연 비난할 수 있을까. 힘이 세고 권위가 있는 조직이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자기 소신을 지키고 영혼의 색을 바꾸지 않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경쟁사회는 그런 배려에 소홀하다. 이익 극대화의 논리에 함몰된 기업은 직원의 상황과 내면의 연약함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익과 성과를 기반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단죄한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고 변색할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은 대의와 명분보다 생존이 더 중시한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둘러봐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용기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영웅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을 공경해야 한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 현실은 더 막막했을 것이다. 끝까지 빛이 바래지 않은 맑은 영혼을 간직하고 대의를 위해 살다 간 모든 이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동시에 사회의 버팀목으로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도 인정해야 하고, 그들의 삶도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남을 해코지 하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생각이 세월과 함께 빛이 바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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