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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Dec 23. 2022

빛의 소나타, 색을 보지 않고 읽는다.

색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다. 따지고 보면, 사람의 몸 가운데 소중하지 않은 곳은 없다. 눈, 코, 입은 물론이고 폐, 간 등 장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느 하나 없이 다 온전해야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이 중요한 기관 중에서도 특히 눈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눈이 보배'라는 옛 속담과 같은 의미다. 


눈은 외부로부터 가장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감각기관이다. 바깥세상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비중은 미각이 1%, 촉각이 2%, 후각이 4%, 청각이 10%를 차지하고 나머지 83%를 시각이 차지한다. 우리가 세상과 접하고 교감할 수 있는 것은 팔(八) 할(割) 이상이 눈의 덕택이라 할 수 있다. 묘하게도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八) 할(割)이 바람이다.”라고 한 시인 서정주는 시 '자화상(自畫像)'이 떠오른다.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말도 온전히 맞는 것은 아니다. 눈이 세상의 정보를 가장 많이 전해주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말은 틀렸다. 우리가 사물을 보고 색감을 알아내는 건 눈이 아니라 뇌가 하는 일이다. 눈은 물체에서 반사된 색의 정보를 전기 신호로 바꿀 뿐이다. 정작 색을 보는 것은 눈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는 색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색을 읽는다고 해야 옳다.      



사진 출처 https://sisu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04


이게 뭔 말인가? 우리가 눈으로 보는데 뭘 안 본다고 하는 말인가? 황당한 생각이 들 것이다. 자, 지금부터 눈이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이걸 알아보려면 눈을 먼저 살펴야 한다. 눈에는 어떤 기관이 있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알면 눈이 사물을 보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눈의 망막에는 억 개 이상의 막대세포(간상세포)와 약 7~8백만 개의 원뿔세포(원추세포)라는 두 종류의 세포가 있다. 위의 그림을 보면 막대모양의 세포와 위에 뿔이 달린 세포가 있다. 기다란 막대처럼 생긴 막대세포는 밝고 어둠의 명암을 감지하고, 위에 뿔이 달린 원통형의 원뿔세포는 빨강, 초록, 파랑의 세 가지 파장의 색을 감지한다. 원뿔세포 안에는 빛을 받아들이는 빨강, 초록, 파랑의 ‘감광 색소’가 있고, 이들이 각각 자기 색과 가까운 빛의 파장을 흡수한다. 


물체가 반사하는 빛의 파장에 따라 빨강, 초록, 파랑의 원뿔 세포가 각각 다른 강도로 반응한다. 빨강에 가까운 빛이 망막으로 들어오면, 빨강을 감지하는 원뿔세포가 더 많이 반응한다. 파랑에 가까운 빛이 망막으로 들어오면, 이것을 감지하는 원뿔세포의 수가 많아진다. 초록빛의 파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대다수 초록의 원뿔세포다. 


색을 인식하는 세포와 명암을 인식하는 세포 

다시 정리하면 이런 말이 된다. 빨강, 초록 그리고 파랑의 세 가지 빛을 적당한 비율로 섞으면 온갖 색깔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우리 눈 내부에서는 이 역할을 빨강, 초록, 파랑의 원뿔세포가 수행한다. 이 세 가지 원뿔세포가 적절하게 반응함으로써 다양한 색깔을 인식한다. 이 세 가지의 원뿔세포의 반응 비율이 어떤 색인지 판정하는 기준이 된다.   


이처럼 반사되어 망막을 통과하는 빛의 파장에 따라 세 종류의 원뿔세포는 서로 다른 비중으로 반응한다. 그 반응의 차이가 색의 차이를 보인다. 원뿔 세포의 감광 색소가 받아들인 빛의 색은 전기 신호로 변환되어 뇌의 앞부분으로 전달된다. 뇌의 앞이마 전두엽은 감광 색소가 보내온 신호를 읽고 색을 판단한다. 이 말은 어떤 색인지 판단하는 것은 눈이 아니라 뇌의 몫이라는 뜻이다.    


노란 해바라기에 뿌려지는 빛에서 노란색은 반사되고 나머지 색들은 해바라기에 흡수된다. 이렇게 반사되어 우리 눈으로 들어오는 노랑의 파장을 빨강과 초록의 원뿔세포가 반반 섞여 반응하여 노란색을 인식한다. 이렇게 해서 어떤 색이라도 반사되어 오는 빛의 파장을 세 종류의 원뿔세포가 적정한 비율로 반응한다. 우리가 보는 색의 세상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막대세포(간상세포)는 무얼 할까? 밝고 어둠만을 구분하는 막대세포는 색을 구분하는 것은 아니다. 깜깜한 밤에는 원뿔세포가 반응을 하지 못하고 막대세포(간상세포)만 반응한다. 어두운 밤에는 사물의 색을 구분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주행성과 야행성의 차이 

인간의 시각세포는 사냥감을 판별하거나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발달한 기능이다. 인간의 감각기관은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을 제외한 맹수들은 야행성이다. 이들 맹수는 색을 구분하는 원뿔세포보다 명암을 구분하는 막대세포(간상세포)가 발달했다. 이들은 사람만큼 풍부한 색의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다. 


인간은 밤에 활동하지 않고 낮에 주로 활동하는 주행성(晝行性)이다. 한낮에 색깔이 있는 열매를 먹기 위한 시신경이 발달했다. 식물과 꽃의 색깔을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의 시신경에는 야행성(夜行性)  동물들과 달리 세 종류의 원뿔세포가 잘 발달했다. 사람보다 원뿔세포의 감광 색소가 한 가지 더 많은 동물들도 있다. 조류 중에는 인간이 볼 수 없는 자외선을 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일부 동물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색을 본다. 그들의 감광 색소가 인간보다 많기 때문이다. 그들의 색채 세상은 인간 색채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답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색을 보는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다음 글에서는 자외선을 탐지하는 새들이 보는 색의 화려한 세상을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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