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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Dec 24. 2022

시간의 점묘법과 삶의 에이밍

붓질하지 않고 점을 찍는 화가

“이보게 친구, 그림은 안 그리고 웬 점을 그리 찍고 있나?”

“두고 보게, 새로운 멋진 그림을 보여 줄 테니”  

   

프랑스 파리의 한 작업실에 화가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를 찾아온 친구와 나눈 대화의 내용이다. 화가들이 쓱쓱 붓질해 멋진 풍경을 그리는 모습에 익숙한 친구는 당황했다. 아니 그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도대체 몇 개의 짐을 찍을 생각인가 하고 조르주 쇠라를 타박한다. 친구는 모르긴 몰라도 최소 수백만 아니면 수천만 개의 점을 찍을 거라면서 걱정스레 쉬라를 쳐다본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6)


고집스럽게 화폭에 색채의 점을 찍은 그는 2년여 걸친 작업 끝에 필생의 역작인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6)>을 완성했다. 무려 308x207cm의 큰 그림을 오직 점을 찍어 그려냈다. 조르주 쇠라는 이 그림을 통해 점묘법(點描法)의 창시자이며 인상주의의 뒤를 이어받은 신(新)인상주의의 선구자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모든 색은 이웃하는 색에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했다. 주황색을 표현하고 싶을 때, 빨간색과 노란색 점을 촘촘히 찍은 후 떨어져서 보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굳이 이 물감으로 두 색을 섞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그는 캔버스에 서로 다른 원색의 점을 수백 개 찍고는 물러서서 색감을 확인하며 그림을 그렸다.


쉬라의 점묘법에서는 인접한 두 색이 망막(網膜) 위에서 뒤섞이는 효과를 보인다. 마치 물감으로 색을 섞어 다른 색을 만드는 것과 같다. 쇠라는 대비와 조화라는 색채의 과학적 원리를 잘 활용해 점묘법이라는 훌륭한 걸작을 남겼다.      


쇠라는 2년 내내 아침이면 그랑드 자트 섬에 나가 풍경을 관찰하고 스케치했다. 저녁에 화실로 돌아와 그림 속 인물의 표정, 구도, 배치가 정확한지 확인했다. 그 후 점의 크기와 간격을 조정해서 촘촘하게 찍었다. 매번 제대로 점을 찍고 있는지 몇 발 떨어져 확인하며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쇠라는 수십 점의 드로잉과 색채 습작을 연습했다. 충분히 연습하고 제대로 밑그림을 그리는 철저함을 보였다. 그 후 그는 꼬박 2년에 걸쳐 가로 3m, 세로 2m의 큰 그림에 수백만 혹은 수천만 개의 점을 찍었다. 그는 그리는 속도보다 정확한 그림의 방향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 것이다.


삶의 점묘법에서도 에이밍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해마다 이맘때면 한 해를 되돌아본다. 새해 첫날, 새해 첫 주에 호방하고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분명 이룰 거라 다짐했고, 또 열심히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 계획을 제대로 실행해 목표를 이룬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뜻을 이룬 사람은 행복한 연말을 보낼 것이다.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은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성실하지 못해서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억울한 마음이 들 수 있다. 열심히 목표만 생각하며 매진했지만, 정작 한해를 마감할 때 와서 보니 이룬 게 없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답답하고 먹먹하다고 토로한다.


사진 출처 : https://smile1.kr/entry/


우리가 시간을 세는 가장 작은 단위는 초(秒)다. 1년을 초로 환산하면 31,536,000초다. 이것들이 모여 1년 365일을 이룬다. 말하자면, 이만큼의 초를 찍으면 1년이라는 큰 그림이 완성된다. 사람들은 1분, 1초를 허투루 보낸 적이 없다. 꼼꼼히 시간의 점묘법을 충실히 따랐지만, 연초에 세웠던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에 허탈해한다. 이럴 바에는 마음 편히 놀면서 할 걸 후회가 밀려올 수도 있다.


1초 1초 정성 들여 31,536,000번을 찍었는데 원래 의도한 그림이 아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구도를 잘 못 잡았다는 뜻일 것이다. 밑그림이 정확하지 않았거나 묘사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 바탕 그림이 틀렸다면 그 위에 아무리 정성 들여 시간의 점을 찍어도 뜻하는 그림을 볼 수 없다. 그건 운이 나빠서가 아니라 방향을 정하는 실력이 없어서 일 것이다.      


골프에서 에이밍(aiming)을 잘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공을 보내고자 하는 방향을 정확하게 설정하라는 말이다. 공이 떨어질 지점을 목표로 삼지 않고, 처음부터 엉뚱한 방향을 설정하면 결과는 좋지 않다. 공은 엉뚱한 자리에 떨어진다. 그걸 운이 나쁘다느니, 몸이 말을 안 들었다고 하는 것은 다 핑계에 불과하다. 잘못 설정된 방향은 끝내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향과 에이밍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잽싸게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갔는데, 엉뚱한 곳에 간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목표한 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향만 맞다면 속도는 그리 문제 될 것이 없다. 마지막에 가속도를 붙여 원하는 장소에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도착할 수 있다.                     


삶의 캔버스에 시간의 점을 찍어 뜻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준비 없이 무턱대고 점을 찍으면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미리 연습하고 밑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 자주 한 발 떨어져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목표를 제대로 세웠는지 에이밍을 체크하고, 속도에 조급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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