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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Dec 25. 2022

주여, 이틀만 더 남국의 햇빛을..


남국의 햇빛이 이틀 더 필요하다.  

1년이 다 되도록 찾지 않다가 오늘 아침 문득 주님을 찾으니 염치가 없다. 주님이 태어나니 생일날마저 찾지 않는다면 그건 더 예의가 아니다. 그간 돌아보지 않은 시간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릴케의 시 '가을날'에서 글 제목을 따와,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주님이 태어나신 성탄절을 축하하며 아침을 시작한다.


사람이 자기 앞날을 점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처럼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안다면 겁날 게 없다. 실패할 일 없이 오롯이 꽃길만 걸어가면 된다. 드라마에서도 '일어날 일은 꼭 일어난다'라고 했지만, 그건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겪는 숱은 실수와 실패를 바로잡을 수만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명리학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올 초에는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 사주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여건이 받쳐주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일은 끝을 봐야 성공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평소 운세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기 앞날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싫어할 사람이 없다. 나도 내심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끝까지 가져본다. 끝내 감감무소식이면 또 어떨까. 명리학이야 음력으로 보는 거니까 아직 한 달 시간이 남았다. 바람이 운명의 물길을 딴 곳으로 돌려버려도 서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만큼 살고 있으니 딱히 원망할 일도 없다. 연말은 회한에 젖게 하지만, 그래도 올해를 열심히 살았으니 이만하면 됐다고 나를 다독인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의 '가을날'의 일부를 겨울 시점으로 조금 바꿔 옮겨본다. 워낙 유명한 시라 이렇게 해도 될지는 모르겠다. '이틀 더 남국의 햇빛을 달라'는 시인의 마음이 너무 가슴에 와닿는다. 그래서 그의 시를 살짝 바꿔 옮긴 것을 널리 양해 바란다.


한 해를 마무리할 때가 왔다. 올 한 해는 참으로 위대했다. 마지막 과일을 무르익도록,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고, 진한 포도주에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려면 남국의 햇빛이 이틀 더 필요하다. 지금 혼자인 나는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글을 쓸 것이고, 눈발이 날리는 빌딩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이다.      


삶은 늘 다사다난하다.

어느 해라고 다사다난하지 않은 때가 있을 리 없다.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늘 새로운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문제를 하나 해결하면 또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이미 해결한 것들은 잊히고 지금 당면한 문제는 늘 고통스러운 법이다. 그러니 작년의 다사다난함은 기억 저 너머로 사라졌고, 올해는 또 유난히 힘들었던 한 해가 된다. 아마 내년 이맘때면 또 내년 한 해가 억척스럽게 힘든 해였다고 말할 것이다.      


삶은 늘 그렇게 반복한다. 그저 올해만 잘 버티자는 주문이 옳은 건지도 모른다. 아니 오늘 하루만 무사히 보내자는 소박한 생각이 필요하다. 코끝이 찡한 겨울바람에 외투 깃을 부여잡은 손끝마저 얼얼하다. 기온이 영하 10C° 가까이 곤두박질치고 칼날같이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베일 듯한 날씨다. 몸도 마음도 얼어붙는 연말이지만, 다가올 봄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자.


아쉽지만 오지 않는 운을 탓할 것도 아니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기에 실력을 갖추는 것이 먼저다. 늘 경계선에 머물고 이너 서클에 들어간 적이 없다면 서러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아무리 운이 있다고 해도 인연이 아니면 또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삶이 나를 속여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 당부를 새겨듣자.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의 반지하방에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글귀가 적힌 액자가 보인다.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니, 영화 속 기택의 환경과는 다소 동떨어지는 글이다. 그 상황에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하는 것이 가능할지 어떨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현실을 비관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사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곰곰이 따져보니 올해는 좋은 운세였다. 몸 안 아프고 다친 곳 없이 한 해를 무탈하게 보냈으니 이만하면 좋은 운세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가족들이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올해를 잘 견뎠다. 이만하면 됐지 또 다른 무엇을 바랄 것인가. 사람마다 보낸 한 해가 복인지 아닌지 판단은 작가의 몫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복 받은 것이고, 그렇게 받아들이면 그게 좋은 운세다. 아직 남은 희망과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일이다.


'남국의 햇빛이 이틀'이 더 주어지면 과일이 충분히 무르익고, 포도주의 단맛이 더해질 것이다. 아직 인연이 아니라면 남국의 햇빛이 이틀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 아직은 기다리고 인내해야 한다는 뜻이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릴케의 말처럼 경건하게 기도하자.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에다 많은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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