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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Dec 26. 2022

계유정난의 달빛과 '재벌집 막내아들'의 국회 청문회

파도와 바람 2

출처 : https://m.blog.naver.com/majorscoffee/221813600410


김종서의 운명을 가른 그날 밤의 달빛

바람이 없는 바다에서 파도가 어디로 치는지 알기는 쉽다. 거센 바람이 몰아치면 파도가 요동을 치고 어디로 부딪힐지 가늠하기 힘들다. 멀리 뱃길 떠나는 사람은 파도를 보는 것만 아니라 그날의 바람의 세기와 방향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한다. 자칫 바람 방향과 세기를 잘 못 읽는 날이면 곤욕을 치른다.      


사람의 앞날을 점치는 일은 파도를 읽는 것과 같다. 파도가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물살은 늘 예상한 대로 움직인다. 문제는 바람이다.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면 물살은 엉뚱하게 움직인다. 그렇듯이 사람의 운세를 볼 때도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여건까지 고려해서 봐야 한다. 그 사람의 사주만 보고 앞날을 이야기하는 것은 파도만 보고 바람을 보지 않는 어리석은 일이다.    

 

계유정난이 시작된 그날 밤의 바람은 무엇일까? 매사 철저하게 경계하던 김종서가 방심한 까닭은 무엇일까? 하필 그날 달빛이 너무 밝아서 일 것이다. 달빛이 그리 밝지만 않아도 마당에 서서 수양대군이 건넨 편지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종서의 파도는 달빛이라는 물살 때문이 흔들린 것이다.     


이 정도면 김종서의 죽음을 애석하면서도 낭만적으로 묘사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이 바뀌는 비극을 낭만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지나친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날 밤 달빛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 수 없다. 몇몇 기록에 그렇게 나오니까 상상을 해본 것이다. 수양대군과 한명회 등이 일으킨 바람의 세기를 오판한 김종서의 뼈아픈 실책을 말하고 싶었다.


김종서가 수양대군의 행동만 예측한 것은 바람을 보지 않고 파도를 본 것이다. 수양대군 참모들의 역할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수양대군은 파도이지만, 그를 에워싼 참모들이라는 바람을 보지 못한 것이다. 탁월한 지략가인 한명회가 일으키는 바람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 김종서의 결정적인 패착이다. 만일 수양대군 옆에 그런 인물들이 없었다면, 수양대군의 운세는 김종서의 예측대로 흘렀을 것이다.      


진도준의 복수를 일궈낸 국회 청문회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끝났다. 시청자들 사이에 결말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은 모양이다. 작가도 그걸 예상하면서도 그렇게 마무리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을 것이다. 어차피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니 더 이상의 치밀함과 현실성을 요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극적인 복수를 위한 장치가 허술하다 해서 탓할 이유도 없다.


마지막 회에서 진도준의 환생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윤현우(송중기)는 복수의 장으로 국회 청문회를 택한다. 그걸 위해서 서민영(신현빈) 검사를 통해 최창제(김도현)를 동원한다. 윤현우가 가진 비자금 자료만 가지고는 순양그룹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드라마니까 가능한 이야기라 그냥 받아들이자. 윤현우가 사건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었던 건 외부의 힘인 바람 덕분이다.

      

드라마 중간에 등장하는 ‘복수는 억울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대사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억울한 사실 그 자체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바람을 일으켜 파도를 흔들어야 한다. 사건의 내용이나 본질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드러낼 힘이 없다면 그냥 묻힌다. 판을 흔드는 여건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예전에 방영했던 드라마 정도전에서 고려말 세도가 이인임(박영규)이 한 말이 묘하게 겹친다. 실제 이인임이이렇게 말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야기를 만들고 말을 지어내는 작가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잘 들으시오. 힘이 없으면,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헌신하지 마시오.", "내가 원하는 사람은, 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무릎을 꿇는 사람이오. 그런 사람은 밥만 제때 주면, 절대 주인을 물지 않거든요."     


아무리 올곧은 정의라 해도 힘이 없으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자본의 힘은 너무 막강해 누구도 감히 대적할 수 없다. 드라마에서도 말했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아니라 사필귀전(事必歸錢)이 맞는 말이라면 너무 아프다. 이러니 사람들 입에서 '이번 생은 망했다'는 '이생망'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 아닐까.운명도 바람에 흔들리기 마련이라 외부의 도움 없이 홀로서기에는 버거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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