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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Dec 31. 2022

지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기

지성으로 비관하고, 의지적으로 낙관하라.

나무위키


프랑스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로맹 롤랑(Romain Rolland, 1866~1944)이 했다고 알려진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라는 말에 감동한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사회사상가인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가 옥중에서 동생 카를로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의 지성은 비관주의적이지만, 나의 의지는 낙관주의적이다“라고 적었다. 몇 시간이면 끝날 올해를 이성적으로 비관하고, 다가올 새해를 의지적으로 낙관하기 위해 글을 적어 본다.      


올해 마지막 날이다. 몇 시간 후면 또 한 해를 매듭지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한 해가 저문다거나 2022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고 말한다. 무엇이 저물고 무엇이 사라지는 걸까. 물리학적으로 따져 보면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았다는 뜻이다. 그동안 우리 몸의 세포는 노화했고, 기계는 그만큼의 가치를 상실됐다. 우리 몸과 아끼는 물건의 변화를 보면서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는 걸 실감한다.


2022년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궁금하다. 각자 보낸 시간이 다르기에 느끼는 정서도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행운의 해라 좋아할 것이고, 어떤 이는 나쁜 일이 많았다고 힘들어한다. 코로나19 때문에 경기가 나빠질까 염려해서 뿌린 돈이 급기야는 물가를 폭등시켰다. 정부는 물가를 잡겠다고 이자율을 높이고 있다. 대다수 사람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한 해였다.


그 와중에 전쟁까지 터졌으니 이건 세계적으로 곡소리가 날 만한 일이다. 세계적으로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한 판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바람에 세계 경제가 발칵 뒤집혔다. 세계의 곡물 창고라는 우크라이나가 곡물 수출을 중단하는 바람에 곡물 가격은 폭등했다. 그것으로 끝나면 말도 안 한다. 전쟁 때문에 각국의 물자 흐름이 끊기는 바람에 세계 공급망에 혼란이 일어났다. 가뜩이나 풀린 돈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데 기름을 부은 격이다.


도대체 뭐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지 분간할 수 없는 한 해였다. 미국의 팬데믹 정책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걸 해결하는 과정은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돈을 살포했는데 정작 그 돈은 서민들 손에 가지 않았다. 대신 폭등하는 물가와 그것을 위해 올리는 높은 이자율은 서민들의 생활은 직격탄을 맞았다. 돈은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들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으로 남은 것이 아닐까. 


오늘도 소련과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나토와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를 고조시켰다. 지금도 전쟁터에서는 죄 없는 민간인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올해처럼 인간 이성의 합리성에 회의가 든 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19세기 초의 과거에는 어땠는지 간단히 알아보자. 



벨레 에포크의 환상

“이제 우리 인간은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맞아, 인간의 이성은 합리적이고, 과학과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니 걱정할 게 뭐가 있겠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수학, 물리학, 철학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수학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증명하고, 물리학은 우주와 지구의 운동 법칙을 확정하고, 철학은 인간의 인식과 이성이 합리적이라고 정리했다. 인간의 지성으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고 인류의 미래는 행복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산업 현장에서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다.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기술의 효율성은 더할 나위 없었다. 자연법칙을 알고 있고,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니 세상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이제 꽃길만 걷고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19세기 말에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814년까지의 시기를 예술 분야에서는 벨레 에포크(Belle Epoque, 황금시대)라 표현할 정도였다.      


인간의 낙관적 믿음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14년에 터진 제1차 세계대전과 1939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인간의 이성은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철저히 짓밟았다. 두 차례의 전쟁은 아무 잘못도 없는 수천만 명의 민간인들이 죽였다. 거기에는 어떤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도 댈 수 없었다. 인간의 이성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아름다운 수학조차 불완전하다.

물리학과 화학의 발전은 인류의 행복을 증진하지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핵폭탄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을 한 번에 죽이는 데 더 크게 이바지했다. 경쟁적인 핵무기 개발은 지금도 인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했다. 유전학과 생리학의 발전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의 근거로 활용되었고, 산업혁명 이후의 기술 발전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했다. 학문과 기술, 과학의 발전이 장밋빛 미래를 조장한다는 신념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세상의 질서와 인간의 이성을 완전하게 해석했다고 생각한 수학, 물리학, 철학의 완전성 논리들도 하나씩 무너졌다. 인간 이성의 꽃이며 학문의 최고 권위를 인정받은 이들 학문에도 한계가 있고, 불완전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수학에서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물리학에서는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의 ‘불확정성 원리’, 철학에서는 파이어아벤트(Paul Karl Feyerabend, 1924~1994)의 ‘인식론적 무정부주의’가 그것들이다. 이들 학문은 각각 분야의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을 밝혀냈다.      


이 세 가지 내용은 복잡하고 정교한 이론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필자의 능력 밖이라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의 개념만 소개한다. 나머지 내용을 해설하는 책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그걸 읽어보면 될 것이다. 또 이 글의 주제는 이것들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물리학의 불확정성, 수학의 불완전성, 철학의 인식론적 무정부주의를 통해 인간의 이성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수학에서는 쿠르트 괴델(Kurt Gödel, 1906~1978)이 ‘불완전 정리’를 통해 아름다운 수학이 증명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수학은 우주 전체를 설명하는 절대 진리이고, 수학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괴델은 수학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면서 수학조차도 모든 것을 증명해내기에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설파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이성이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분명하다. 수학, 물리학, 철학이 불완전하기에 완전함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덕분에 이들 학문은 완전성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인간의 이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성으로는 비관해도 의지로는 낙관하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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