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아는 자, 사랑하는 자, 보는 자, 모으는 자
“그림에는 그것을 아는 자, 사랑하는 자, 보는 자, 모으는 자가 있다. 한갓 쌓아두는 것이라면 잘 본다고 할 수 없고, 본다고 해도 칠해진 것밖에 분별하지 못하면 아직 사랑한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랑한다고 해도 오직 채색과 형태만을 추구한다면 아직 안다고 할 수 없다. 안다는 것은 화법은 물론이고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오묘한 이치와 정신까지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림의 묘미는 잘 안다는 데 있으며 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나니 그때 수장한 것은 한갓 쌓아두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기가 막힌 글이 아닌가. 그림이든 글이든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의미를 이리도 잘 설명할 수 없다. 놀랍게도 이 글은 지금부터 약 250년 조선 시대의 한학자이자 당대 최고 문장가 중 한 사람인 유한준(1732~1811)이 썼다. 김광국(1727~1797)이라는 사람이 평생수집한 회화를 묶은 화첩『석농화원(石農畵苑)』에 쓴 글이다.
그림을 알고, 사랑하고, 보고, 모으는 것의 참뜻을 밝혔다. 지금 읽어도 그 뜻이 생생히 살아 있을 정도로 참 좋은 글이다. 이 글은 최근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창비)에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인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물론 유홍준 교수는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고, 느낀 만큼 보인다"는 말을 덧붙여 예술을 공부하는 자세를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뭔가를 알아야 사랑할 것이고, 그래야 제대로 봤다고 말할 수 있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은 그림에 담긴 화가의 생각을 제대로 읽어 내려면 한참 공부해야 한다. 화가의 출생 배경과 나라를 알고,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도 알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화가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화가의 시대까지도 알면 더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 한다. 하긴 세상 사는 이치가 어디 그림에만 통하는가. 그림이든 무엇이든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백날 미술관을 다닌다고 느는 건 없다. 열심히 발품을 팔아도 소출이 없는 실없는 짓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재주가 없는 내가 그렇다는 말이니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무언가? 공부해서 알고 그림을 감상하는 일이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골똘히 생각했다. 예술의 역사를 아는 것과 그림을 아는 것은 차이가 있지 않을까? 예술의 정의와 역사를 공부하면, 긴 시간 동안 회화나 조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읽어야 할 자료가 너무 많지 않을까? 또 비전공자인 내가 그것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이런 갈등이 생겼다.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대학의 강의를 들으려 생각했다. 미술의 역사와 화가의 생애 등을 압축해서 강의하는 곳이 없는지 알아봤다. 좋기야 미술대학의 정규 과정을 듣는 건데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대신, 대학의 평생교육 과정이나 특별 과정에서 미술 관련 강좌가 개설되었는지 샅샅이 살폈다. 아쉽게도 그런 강좌만 따로 개설한 곳이 없다.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적어도 나는 찾지 못했다.
그래 안 되면 혼자서라도 해보자.
그래 안 되면 혼자서라도 해보자. 결심은 좋았다. 그날부터 미술 공부를 위한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다. 비전공자가 미술의 역사와 화가의 화풍을 혼자 학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때는 몰랐다. 그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어려움은 대개 이런 말을 내뱉게 만든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를 읽으면서 미술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최소한의 지식을 얻었다. 사실 책이 너무 두꺼워 다 읽지 못하고 관심 있는 부분만 중점으로 읽었다. 중세 미술과 르네상스 미술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특히 르네상스가 미술뿐만 아니라 과학과 철학 등 여러 분야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이때 주로 『서양미술사』를 읽었다. 원근법과 미술 이론은 쉽게 이해되지 않아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직접 그림을 그리겠다는 마음을 품지 않을 때다. 그러니 원근법이니 소실점이니 하는 단어가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화가의 이야기와 그들의 소소한 일상이 더 눈에 쏙쏙 들어왔다. 뒤이어 화가를 주제로 쓴 글을 읽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일대기를 다룬 책들을 시작으로 현대 미술 이전까지의 화가들의 이야기를 봤다.
이 시기에 만난 화가들은 르네상스 화가와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주를 이룬다. 고흐, 클림트, 샤갈, 로트렉, 피카소, 고갱, 카라바조, 달리, 세잔 등 많은 화가의 이야기를 읽었다. 또 명작 그림책들도 살폈다. 대부분 책에 화가들이 중복해서 나오기에 나중에는 건성으로 읽은 적도 많았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스테파노 추피의 『천년의 그림 여행』, 크리스토퍼 델의 『명작이란 무엇인가?』 등도 재밌게 봤다.
이렇게 나는 거대한 그림의 늪 속으로 빠져들었다. 닥치는 대로 읽고 부딪히는 무모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땐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무식하면 용감하고 무지를 자각하는 일은 참 어렵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