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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침팬지의 식욕, 처음과 마지막 쾌락

by Henry

꺼지지 않는 욕망

“식사의 쾌락은 다른 모든 쾌락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미식 평론가인 쟝 브리야 사바랭(Jean-Anthelme Brillat–Savarin, 1775~1826년)이 말했다. 200년도 더 전에 그는 식욕의 끈질김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사람이 먹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인류가 발전하는 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두 가지 본능을 꼽으라면 식욕과 성욕이다. 생존을 위한 열량을 공급받는 식욕과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성욕은 생명체의 종을 보존하기 위한 중요한 본능이다. 별난 침팬지도 식욕을 삶을 유지했고, 짝짓기 본능으로 종족을 유지했다. 엄밀히 말하면 별난 침팬지 시절의 먹는 일은 식탐의 쾌락이 아니었고, 그 시절의 짝짓기는 성욕이 아니었다.


생명체는 매일 음식을 섭취하여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한다.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모든 생명체의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욕구가 곧 식욕이다. 인간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인류의 장구한 역사는 먹는 것을 구하기 위한 투쟁의 시간이다. 이제 현대인은 열량 공급만을 위해 음식을 먹지 않는다. 별남 침팬지의 오래고 끈질긴 식욕은 음식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쾌락으로 진화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욕구인 짝짓기 욕구는 종족의 번식을 위해 꼭 필요하다. 생명체의 짝짓기 욕구가 없었다면 그 생명체는 멸종되었을 것이다. 인간도 짝짓기 욕구가 있었기에 지금과 같이 번성할 수 있었다. 인간의 의식이 발전하면서 종복 번식을 위한 짝짓기 욕구는 성적 욕망으로 진화했다.


먹어야 하는 욕구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 매일 음식을 섭취하여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한다. 식욕은 생존을 위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 욕구다. 성욕은 종족의 번식을 위해 그 중요성을 따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짝짓기의 욕구가 없었다면 인류는 자손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는 식욕으로 삶을 유지하고 성욕으로 종족을 유지해 왔다.


식욕, 처음과 마지막 쾌락

사람의 뇌에는 식욕 중추와 성욕 중추가 시상하부(Hypothalamus)에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둘 사이의 간격은 불과 1.5 나노미터(mm)에 불과한 아주 가까이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식욕과 성욕은 같은 감정의 뿌리에서 형제 사이라 할 수 있다. 1 나노미터가 10 억분의 1 미터이니 그만큼 둘 사이가 가깝기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태양왕으로 불렸던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는 한 번 식사할 때 60가지도 넘는 음식을 먹어 치운다. 그는 엄청난 식성에 버금갈 정도로 넘치는 성욕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간혹 대식가들은 성욕이 강하다고 말하지만, 근거는 확실치 않다. 식욕 중추와 성욕 중추가 가까이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런 내용을 여러 군데서 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둘 사이의 거리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기술한 자료를 확인하는 데는 실패했다.


시상하부 2.jpg


우리 뇌의 시상하부가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작은 부위지만 욕구와 욕망, 쾌락과 고통을 관장하는 기관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곳에서는 갈증, 공복, 체온, 성 충동 등을 조절하고 행복감과 감정을 만들어 낸다. 눈을 통해 들어온 빛의 정보를 통해 수면과 공복 주기와 같은 인체의 생체 리듬을 유지한다. 시상하부는 감정과 정서를 생성하는 변연계(limbic system)의 핵심 기관이라 할 수 있다. 폴 맥클린(Paul D. MacLean)의 뇌 3층 구조설을 인용하면, 2층에 있는 구 포유류의 뇌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시상하부가 성욕과 식욕을 조절하는 기관이라는 사실은 맞다.


인간에게 식욕을 통제하는 능력이 없다면 인간이 동물 가운데서 가장 잔인하고 사악한 존재라고 말한 고대의 철학자가 있다. 그는 섹스에 관한 인간의 욕망을 조절할 능력이 없다면 역시 가장 잔인하고 사악한 존재로 전락한다고 하였다. 식욕과 성욕이 이런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같은 곳에 욕망의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식욕은 성욕과 함께 더불어 평생 사람의 마음을 흔들지만, 욕망의 지속 기간에서는 차이가 있다. 성적 욕망은 일정 연령이 되어서 나타났다가 육체가 노쇠하면서 점차 수그러든다. 식탐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사람의 마음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다. 성욕과 달리 식욕은 매일 반복되고 하루도 꺼지지 않는 욕구다. 생명의 불이 꺼지는 그 순간까지 식욕은 사람과 함께한다.


사는 건 늘 팍팍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좋은 일이다. 요즘은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식탐에 빠지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현대인은 별난 침팬지 시절의 식탐을 지우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그만큼 열심히 운동해서 열량을 뺀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씹고 뜯고 즐기기 위해 산다. 이리저리 들러봐도 먹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흔치 않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말만 기억하면 마지막까지 식욕의 쾌락을 즐겨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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