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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침팬지의 과식과 게으름을 위한 변명

by Henry

최대 열량 확보와 최소 열량 소비 전략

별난 침팬지들에게 사냥은 시간이 많이 들고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이었다. 돌도끼를 들고 덩치 큰 짐승과 싸운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한다. 힘들고 무모한 도전이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피할 수 없다. 들소 한 마리만 잡으면 며칠간은 에너지 걱정은 없다. 별난 침팬지 사냥꾼이 200킬로그램 가까이 가는 동물을 사냥하는 날에는 마을은 그야말로 잔칫날이다.


문제는 사냥에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다는 데 있다. 별난 침팬지가 사나운 들소 사냥을 나가도 매번 성공할 수는 없다. 어쩌다 한 번 사냥에 성공한 날에는 배 터지게 먹어야 한다. 지금은 살 빼기 위해 난리지만 그때는 배를 두둑이 채우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다. 별난 침팬지들은 고열량 지방으로 배를 채울 기회는 그리 흔치 않았다. 늘 허기 전 그들은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생활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불리 먹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자연스레 과식하는 습관을 낳았다. 식탐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진화 과정에서 인류의 아픈 기억이다.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먹을 때 실컷 먹고 지방을 비축할 수 없었다면 별난 침팬지는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지 못했었을 것이다. 사냥에 실패하거나 한겨울 먹을거리가 떨어지면 남아 있는 지방을 태우며 견뎌야 한다. 그마저도 없다면 별난 침팬지의 생존에는 치명적인 일이 벌어진다.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20만 년까지 별난 침팬지의 두뇌와 신체는 진화를 완료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아직은 무조건 많이 먹어야 할 때이다. 많이 먹고 한 후에는 가능한 한 불필요한 동작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에너지를 뇌로 보내고, 두뇌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 별난 침팬지는 배불리 먹는 최대 열량 확보 전략과 동시에 게으름이라는 최소 에너지 소비라는 두 가지 전략을 택했다. 그때는 두뇌 성장을 위해 기가 막힌 전략이었지만, 지금은 필요 이상으로 몸을 살찌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의 뇌에는 여전히 그때의 기억이 화석으로 남아 있다. 서툰 사냥 도구를 갖고 떼 지어 들소에게 매달려 공격했다. 개중에 몇 사람은 들소의 뒷발질에 치명상을 입기도 했다. 온몸에는 상처가 나고 심지어 부러지기도 했다. 먹는 것을 구하는 일은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그런 시절 별난 침팬지는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철학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지방을 비축할 수 없었다면 인간의 뇌는 성장할 수 없다. 큰 짐승을 사냥하지 않고, 오직 과일과 채소만을 먹으면 뇌가 성장해야 할 자식들이 필요로 하는 열량을 충분히 제공할 수 없다. 아이들이 성장해 어른이 되어도 지구력은 떨어지고, 두뇌 발달도 원만하지 못했게 된다. 인류의 진화가 끝난 기 전이라 높은 체지방 비율을 유지해야 했다. 아직은 두뇌가 더 발달하고 신체가 더 성장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꽤 오래된 과식과 게으름의 전략


과식.jpg 사진 출처 : http://plug.hani.co.kr/health/2878714


인류의 과식과 게으름의 전략은 그보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식을 통한 최대 열량 확보와 게으름을 통한 최소 열량 소비의 기억은 파충류 시절에 형성됐다. 별난 침팬지의 뇌는 3층 구조로 이루어졌다. 지금도 생존을 위한 먹는 행동은 뇌의 3층 구조 가운데 1층에 있는 파충류 시절 뇌의 통제를 받고 있다.


파충류는 먹이를 찾거나 적을 피하는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하루 종일 배를 땅에 대고 움직이지 않는다. 파충류는 먹이를 실컷 먹이면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부지런히 활동하면 열량을 소모해야 하고, 열량을 보충하기 먹이 사냥을 나가야 한다. 먹이 사냥은 파충류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최대 열량 확보를 위한 과식과 최소 열량 소비를 위한 게으름은 파충류의 생존을 위한 최적의 전략이었다.


별난 침팬지의 뇌 1층에는 파충류 시절의 뇌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곳에는 그때의 과식과 게으름의 본능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별난 침팬지는 먹이 사냥을 끝내고 나면 꼼작하지 않으려 한다. 덩치 큰 짐승을 사냥하는 일은 과도한 열량을 소모하게 만든다. 사냥감을 갖고 집으로 돌아와서 포식하면 사냥꾼은 손가락을 깜짝하기 싫어하고, 가사를 돌볼 의욕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아픈 기억이 남아서 일 것이다. 현대인은 사냥터인 직장에서 돌아오면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어한다.


현대인은 에너지를 과소비해도 언제든지 보충할 수 있다. 과식과 게으름은 현대인의 생존을 위한 최적 전략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에너지를 구하는 문제에서 해방된 것이 산업혁명 이후이기 때문이다. 파충류 시절부터 시작된 과식과 게으름의 최적화 전략은 수억 년 동안 계속되었다. 화석처럼 굳어진 그 기억을 산업혁명 이후 겨우 200년 조금 넘은 시간에 지우기는 쉽지 않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활동에 필요한 하루 1,500~2,000킬로칼로리의 열량을 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별난 침팬지가 매일 그 정도의 열량을 얻기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감자튀김을 포함한 버거킹의 더블 와프 세트 한 개의 열량이 무려 1,437칼로리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한 조각에 덤으로 약 300킬로칼로리나 되는 피자 두세 조각을 먹으면 하루 열량을 훨쩍 넘는다.


이제 먹는 일은 단순히 생존 열량을 확보하는 일이 아니라 욕망을 소비하는 일이 되었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고 씹고 뜯고 즐기기 위해 살아간다. 매일 텔레비전에서 쏟아지는 먹방 스토리가 인기를 끄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하루 열량을 구하기 힘들었던 별난 침팬지의 과식과 게으름을 위한 변명은 이해되었다.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변명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열량은 넘친다. 이제는 별난 침팬지의 뇌에 새겨진 배고픔과 나태함의 기억을 지워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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