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집을 지어 그 속에서 혼자 조용히 있고 싶다."
누에의 애벌레는 열심히 뽕잎을 먹는다. 먹고 잠을 자고 또 먹고 잠을 잔다. 어느 정도 자란 애벌레는 뽕 먹기를 멈추고 입으로 하얀 실을 토해낸다. 누에는 자기가 토해낸 실로 몸을 칭칭 감는다. 그렇게 하얀 실이 뭉쳐지면 둥글고 길쭉한 모양의 누에고치가 된다. 누에의 몸이 하얀 누에고치 집으로 둘러싸인다. 누에는 바깥세상과 절연하고 스스로 고독에 묻힌다.
누에고치를 한 올 한 올 풀면 명주실이 나온다. 명주실로 짠 옷감을 비단(緋緞) 혹은 실크(Silk)라고 한다. 비단은 양모(羊毛)와 함께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한 천연섬유이다. 광택이 나는 비단은 부드럽고, 촉감이 시원하다. 옷을 만들어 입으면 따뜻해 옛날부터 귀족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단은 한때 금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고, 지금도 천연섬유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누에가 고독을 저어 만든 옷감이 아름다운 비단이다.
과거 유럽인들은 비단을 손에 넣지 못해 안달이 났다. 유럽인들은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이 신기한 섬유를 사기에 바빴다. 상인들이 말이나 낙타 등에 비단을 싣고 중국에서 출발해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갔다. 상인들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고 쿤룬산맥, 파미르고원, 톈산산맥 등을 험난한 산을 넘어야 했다. 그들은 비단길 혹은 실크로드(silk road)를 건너가서 비단을 포함한 각종 물건을 싣고 목숨 건 여행길에 나섰다.
우리도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기 위해 가끔은 고독과 함께해야 한다. 혼자 생각하고 명상하며 자기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게 좋다. 도시의 소음과 사람의 소란함을 뒤로한 채 침잠하면 영혼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이렇듯 고독은 내가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을 때 빛을 발한다. 현대인은 수많은 사람과 관계 맺고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함께한다. 가끔 스스로 고독해 보는 여유를 갖지 않기 때문에 외로운 것은 아닐까?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이고,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한 말이다'라고 했다. 외로움은 우리 의지로 어찌할 수 없지만, 고독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누에가 고독 속에서 아름다움 명주실을 뽑듯이, 나도 가끔 고독 속에서 비단 같이 아름다운 생각을 뽑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