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제와 장원경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서로마가 망하자, 서유럽을 통합하는 힘이 사라졌다. 서유럽은 수많은 영주들이 나타나 스스로 무장하고, 기사를 거느리고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각자 자기 땅에서는 절대자로 군림하고, 다른 성의 영주가 침범하지 못하게 군사력을 키웠다. 유럽 내부는 갈갈이 찢어져 영주의 땅은 함부로 지날 수 없다. 영주의 땅과 다른 영주의 땅을 넘어 내륙으로 이동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되었다.
그렇다면 바닷길은 어떤가. 유럽의 앞바다인 지중해와 대서양에는 시도 때도 없이 바이킹이 출몰했다. 약탈과 방화, 그리고 살인을 서슴지 않는 그들은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니 해상 무역도 자연히 막히고 상인들은 꼼짝달삭할 수 없게 됐다. 귀족의 사치와 향락을 위한 상품의 교역도 줄고, 도시의 시장은 위세가 꺾였다.
유럽의 육로와 해상로가 위험해지자 상인들이 이동하며 장사하는 일이 힘들어졌다. 상업은 급속히 축소되고, 도시의 시장도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물물교환하던 것도 줄고, 지역 간 원거리 무역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자급자족해야 했다. 유럽 도시들의 화려함이 빛을 잃자 인구도 줄어들었다. 중세 사회를 지탱한 것은 봉건제와 장원경제의 두 축이다.
봉건제(封建制)는 토지(봉토, 封土)를 하사한 왕과 신하의 신분적 계약 관례라 할 수 있다. 왕은 신하에게 봉토를 하사하고 그 대가로 왕은 신하의 충성을 확보한다. 왕의 권력이 상당 부분 신하인 영주에게 배분되고, 왕은 영주의 봉토에 대해 간섭을 하지 않는다. 영주는 자신의 봉토 내에서 독자적인 통치권을 행사했다. 중세의 봉건제는 토지를 매개로 하는 주군과 봉신 간의 주종 관계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중세의 영주는 왕에게 충성을 하지만, 독자적인 사법권과 통친권, 그리고 군사력을 가진 막강한 지위를 누렸다.
장원경제(莊園經濟)는 영주의 장원(莊園)을 중심으로 자급자족하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장원은 그 중앙에 큰 성으로 둘러싸여 있고, 성밖의 땅을 농민에게 빌려주어 경작하도록 했다. 영주는 군사를 길러 장원의 농민들이 이민족의 공격을 받지 않도록 보호했다. 장원 내에는 경작지가 있고, 제분소도 있었다. 영주의 성 안에는 생필품을 만드는 수공업 시설도 있었다. 중세의 장원에서는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조달했다. 생산기반인 토지를 경작하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농민은 영주와 경제적 예속 관계에 놓였다.
중세의 농민은 땅을 소유할 수 없었지만 경작을 하고 그것을 자손에게 물려줄 수도 있었다. 영주의 직영지에 가서 일주일에 사나흘 이상을 일해야 했다. 영주의 허락 없이 장원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수도 없었다. 영주는 농민을 구속할 수 있고 재판권과 경찰권도 가졌다. 농민들은 세금도 납부하고, 영주의 성을 쌓거나 영주가 명령하는 일에 노동력을 제공했다. 영지나 촌락에서 농사를 짓고 성에 들어가서 영주의 일을 하는 것은 땅을 소유하지 못한 농민의 몫이었다.
천국을 꿈꾼 별난 침팬지
성직자들은 영주와 기사의 중간 정도의 지위를 가졌다. 그들은 교회나 수도원에서 종교적 임무를 수행했다. 교회나 수도원도 땅을 소유하였고, 신탁을 기반으로 막대한 세속 재산을 보유했다. 중세 초기 교회가 성장하면서 기부나 십일조가 증가하고, 그 결과 교회 소유의 땅이 크게 늘었다. 교회는 영주들과 밀월 관계를 맺고, 수도원은 독립적인 사법권과 재판권을 행사했다. 중세 초기 성직자들이 주관하는 종교재판은 매우 악랄한 것으로 유명했다.
농민들은 수확량의 대부분을 영주나 교회에 상납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하느라 지친 나머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고역인 농민들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이때 교회가 신의 사랑과 배려라는 달콤함 말로 농민들의 불만을 잠재웠다. 하느님은 각자가에게 이 세상에서 할 일을 주셨기에 자기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잘 듣고 성경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간다고 설파했다.
중세의 교회는 인간은 아담과 이브가 행한 원죄를 지고 태어났다고 농민에게 가르쳤다. 이 죄를 씻기 위해 이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고 세금을 잘 바치고 충성해야 한다. 그래야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중세 초기 교회의 설명이다. 이 세상은 천국으로 갈 사람을 판별하는 시험대이기 때문에 청빈하고 금욕해야 한다. 이 세상은 단지 천국으로 가는 중간에 거쳐가는 곳이니 지금의 고생은 사후에 보상받는다고 강조했다.
농민은 신에게 가기 위해서는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따랐다. 항상 현실을 긍정하고 신께 감사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는 중세 교회의 율법을 잘 지켰다. 그들은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고 모순과 착취가 가득하다 해도 참고 견뎠다. 그들은 하느님 이외는 어떤 것도 믿지 않고, 오직 말씀대로 살았다. 지긋지긋한 이승을 떠나 행복이 넘치는 천국으로 가길 학수고대했다.
고단한 일상을 사는 그들에게 천국의 약속은 달콤했다. 화가 치밀고 분노가 솟아도 천국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중세의 교회는 농민들을 거짓 약속으로 속였다. 교회의 설교는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는 진통제가 됐다. 중세의 별난 침팬지는 영주와 교회로부터 끊임없이 착취당하면서 오직 천국을 꿈꾸었다. 그들은 무기력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세뇌당했다. 오직 신의 구원만이 유일한 위안이고, 천국만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별난 침팬지는 중세가 끝날 때까지는 그런 착각 속에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