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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Feb 14. 2023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변한다고?


사랑은 타고난 감정일까

'우리는 진정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교회나 국가가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 낸 제도를 무조건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당히 도발적인 질문에 성의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잉겔로레 에버펠트 (Ingelore Ebberfeld)는 후자가 답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은 사회적 관습에 지나지 않고,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한 사람하고만 살아야 하는 운명의 노예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일부일처제도 인간의 본성에 일치하지 않는 제도라고 말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고 애절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진정한 사랑의 교과서이자 낭만적이고 애틋한 사랑을 꼽을 때면 단연 앞자리에 선다. 사랑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가혹한 운명에 사람들은 눈물을 훔쳤다. 셰익스피어의 소설로도 유명하지만, 몇 번의 영화도 세계적으로 히트를 했다.

  

잉겔로레 에버펠트의 저서 『사랑은 없다』(미래의 창, 2010)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죽음을 통해 비로소 불멸의 사랑이라는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복잡하게 꼬이지만 않았더라도 그들은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두 사람이 평생 함께 살았다면 초기의 뜨거운 열정이 아마도 심심한 일정으로 변질했을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사랑이라는 상태나 사랑에 빠진 상태는 '마약 칵테일' 효과와 같다는 컬럼비아대학 마이클 리보비츠(Michael R. Liebowitz) 교수의 말을 인용한다. 리보비츠 교수는 사람의 뇌 상태가 특정 약물이나 마약으로 인한 뇌 상태처럼 도취와 공상에 빠지고, 그 상태는 마치 발륨(신경 안정제)이나 아편, 헤로인 등 환각을 일으키는 약물을 복용한 상태와 유사하다. 말하자면, 사랑에 빠진 사람은 마치 약물 복용으로 환각 상태에 빠진 비정상적인 상태라는 것이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 리보비츠 교수의 말을 들으면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간을 도취 상태에 빠지게 하고 행동까지 좌우하는 매우 위력적인 약물과 유사하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로맨틱하고 낭만이 넘치는 사랑도 알고 보면 우리의 머릿속의 화학작용이라는 것이다.


사랑의 화학물질이 변하는 단계

헬렌 피셔(Helen Fisher)는 저서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이별하는 과정을 잘 묘사했다. 그녀는 사랑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화학물질의 변화를 보여준다. 많은 심리학자나 뇌과학자가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타고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마이클 리보비츠와 헬렌 피셔가 주장하는 머릿속 화학물질의 작용이 사랑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헬렌 피셔는 사랑은 갈망에서 끌림으로, 끌림에서 애착의 3단계를 거친다고 말한다. 단계마다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이 달라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남녀가 처음 보고 싶고 그리움이 싹틀 때는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젠이 활발하게 솟는다.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쌓이고 사랑에 빠질 때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용솟음친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게 만드는 사랑의 묘약이다.


사랑의 묘약으로 타오른 사랑은 자연스레 스킨십을 유도하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을 생성한다. 묘약이 지핀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하는 마법의 물질이다. 세상의 연인들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껴안게 한다. 이쯤 되면 서로가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된다. 그들은 "우리 사랑 이대로 영원하길"하고 소리칠 것이다.


이렇게 평생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생 꼭 붙어사는 닭살 돋는 연인이 될 것이다. 얄궂고 변덕 넘치는 게 사람 마음이라 변하지 않는 마음이란 없다. 마음이란 두뇌 신경세포의 연결망의 전기적 신호의 흐름이다.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같은 화학물질의 변화는 전기적 신호의 흐름을 변화시킨다. 전기적 신호의 크기와 강도가 변하면 마음과 생각이 변한다.


사랑의 불을 지피고 타오르게 하는 화학물질이 변하지 않으면 사랑은 한결같다. 어쩌면 두 사람은 “우리 이대로 쭉 살아갈래”라고 한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이별의 아픔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수많은 소설과 문학작품도 애초부터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소설을 들먹이지 않아도 누구나 사랑이 식고 서로가 데면데면한 경험을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변한다. 

안타깝게도 사랑의 화학물질의 분비량과 농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약해진다. 익숙한 것에서 무뎌져 처음 사랑에 빠질 때처럼 사랑의 샘이 솟지 않는다. 서서히 샘물은 줄어들고 끝내 말라버린다. 사랑은 떠나고 슬픈 마음만 남는다. 사랑이 식어서 화학물질이 줄어든 것인지, 아니면 이들 화학물질이 줄어서 사랑이 식은 것인지 선후는 모호하긴 하다. 어쨌든 머릿속의 화학물질의 농도가 사랑의 강도를 결정한다는 사실은 수긍해야 한다.


심리학자와 뇌과학자들은 사랑의 묘약이 유지되는 기간은 2년이고 길어야 3~4년이라고 말한다. 불멸의 사랑과 영원한 사랑은 다 어디로 갔는가. 사랑이 유지되는 기간이 짧다는 사실이 놀랍다. 곰곰이 따져보면 소설 속 불멸의 사랑은 주인공이 죽거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끝난다. 더욱이 지고지순한 사랑의 대명사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그들이 죽음으로써 불멸의 신화가 되었다. 그들이 끝까지 살아남았다면 그들의 사랑도 변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랑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열정적이고 불타는 짜릿함만이 다가 아니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 친밀함, 연민, 이해, 책임감 등도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의 짜릿함과 열정이 사라졌다고 해서 사랑이 끝난 게 아니다. 믿고 배려하고 존중한다면 사랑은 또 다른 색깔을 보일 것이다. 처음의 열정만을 사랑이라 생각하면 사랑은 이내 끝나고 만다. 그런 사랑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마약 칵테일' 효과는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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