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칼이 좋긴 하다. 이리저리 엉킨 실타래를 속 시원하게 잘라 버린다. 쾌도난마라((快刀亂麻)는 말이 그렇다. 날카로움으로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면 후련하고 통쾌하다. 일할 때나 업무를 처리할 때는 그런 예리함과 단호함이 필요하다.
사람 관계는 날카로움이 늘 옳은 건 아니다. 두 번 다시 볼 일 없을 거로 생각하고 냉정하게 사람을 내친다. 별 볼 없는 사람이라고 등한시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인연이 없을 것으로 여겼던 사람과 피치 못하게 만나면 당혹스럽다. 원수까지는 아니지만, 소홀히 했던 사람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일도 어렵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다. 그때는 맞았는데 지금 와서 보면 틀린 일이 된다. 그럴 때는 난감하기 그지없다. 무 자르듯 냉정하게 일을 처리했지만, 거꾸로 동강 낸 무를 이어야 할 때가 생긴다. 그때의 통쾌함이 지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난다. 그러니 날카로움보다 무딤이 나을 때가 있다. 적어도 사람 사이는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세상일이 뜻대로 되고 예상대로 움직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지만 세상은 우리의 짧은 지혜를 뛰어넘을 때가 더 많다. 그러니 가능하면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철천지원수라면 영영 보지 않으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너무 박절하게 내쳐 원망을 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그리하지 않았다 해도 상대가 섭섭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기야 그것까지야 어떻게 알겠는가만, 사람 사는 일이 그렇다는 뜻이다.
특별히 원망 살 일을 하지 않았지만, 데면데면한 적은 있다. 나쁜 감정이 있어 그런 건 아니지만 소홀했던 만남도 있었다. 그때는 이렇게 만날 줄 몰랐는데, 급하게 뭔가를 부탁해야 할 일이 생겼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발길을 돌린다. 이제 와 부탁하기엔 염치없는 노릇이다. 뿌린 대로 거둘 뿐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다.
'늙은 정승을 무시해도 젊은 거지를 무시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늙은 정승이라도 무시하면 안 된다. 속담이 말하는 원뜻은 젊은 사람은 비록 지금은 거지라 해도 장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너무 괄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젊다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뜻하고, 젊음이 든든한 밑천이 될 때가 많다.
내일을 알 수 없는 게 삶이다. 할 수 있다면 관대하고 겸손하게 사는 것이 좋다. 단호함을 보여야 할 때는 그렇게 해야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단호할 것까지는 없다. 오늘 내가 무시하는 사람을 내일 어디서 만날지 어떻게 알겠는가. 세상에는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천지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자세를 낮추고 살자. 굳이 의도적으로 무얼 바라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마음이 우러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늘 지금 아닌 걸 그때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한다. 그때 몰랐던 걸 지금이라도 알았으리 다행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현재라도 잘 관리하면 그게 된다. 10년쯤 지나 오늘을 되돌아보며 같은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으면 된다. '지금 아는 걸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