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는 지혜도 깊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조선 개국의 업적을 찬양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2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처음으로 편찬한 조선 왕들의 서사시다. '용(임금)이 날아올라 하늘을 다스린다.'는 뜻의 용비어천가는 총 125장으로 이루어졌다. 그중에서 나는 2장을 특히 좋아한다.
현재의 문장으로 바꾸면, '뿌리 깊은 나무는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꽃이 아름답고 열매가 무성하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므로, 내를 이루어 바다로 흘러간다.'가 된다.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선의 근본이 튼튼한지, 또 얼마나 뿌리가 강건한지를 말하는 내용이다.
이 말은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심지가 굳고 강한 사람은 어떤 역경이나 고통에도 흔들리지 않고 성공의 열매를 맺는다. 생각이 단단한 사람은 다른 이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솔깃한 이야기에 귀가 팔랑거리지 않고 일을 제대로 하려면 마음의 뿌리가 깊어야 한다. 심지가 깊은 만큼 지혜도 깊다.
속 깊은 사람은 배려와 관용이 마르지 않는다. 그들은 깊은 마음과 탄탄한 지혜로 세상을 통찰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내면을 꿰뚫어 본다. 깊은 샘의 물이 아무리 심한 가뭄을 맞아도 마르지 않는 것과 같다. 비가 오면 물이 넘치고 조금만 가물어도 물이 마르는 밴댕이 속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영혼의 샘을 깊이 파야 한다. 그리하여 배려하고, 사랑하고, 포용하는 바다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법은 아득하고 주먹은 가깝지만
살다 보면, 아무 잘못도 없는데 큰일을 당하기도 한다. 믿은 사람한테 받는 배신은 절망으로 내몬다. 제 살자고 끼친 경제적 손실이 클수록 내 삶의 뿌리가 뽑힐 지경이다. 그런 비바람과 혹서를 참아내기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믿고 모든 것을 맡긴 나 자신이 비극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그렇다고 자책하고 살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이를 앙다물고 견디고 견뎌야 한다.
너무 억울해서 세상 살기가 싫을 정도다. 감당하기 힘든 손실은 경제적 파탄의 위기로 내몰았다. 소중한 아이들은 어리고 들어갈 돈은 천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통곡해도 이미 일은 터졌다. 마땅히 책임져야 할 사람이 나 몰라라 발뺌하니 미치지 않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변제받을 길이 마땅치 않으니 복장 터질 지경이다. 자칫하면 몸까지 망가질 상황이라 두 번이나 당하는 억울함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오래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민사소송은 길고 지루했다. 승소해도 채무자는 이미 재산을 다 빼돌린 뒤다. 법적 절차를 거쳐 재산을 조회한들 자기 이름이 아니라 이미 친인척 이름으로 돌려놓았다. 절차를 받는 동안 그의 재산은 이미 먼 곳으로 사라지고,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내 변호사는 상대가 '기망행위(欺罔行爲)'를 저질렀지만, 그것을 밝히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조언한다.
억울한 마음에 상대방을 '사기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상대가 대형 법무법인을 변호인으로 내세웠다. 그 돈 있으면 차라리 빚이라도 좀 갚을 일이지 당황스러웠다. 몇 달을 끈 사건이 결국 상대의 무협의로 종결 처리되었다. 그리고 내가 법리를 오인해서 생긴 일이라 내게는 무고의 책임이 없다는 서류를 받았다. 참 기가 찰 노릇이다. 그때 법은 아득하고 주먹이 가깝다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검찰 고발 건과 별도로 몇 건의 민사소송을 진행했다. 민사에서는 승소했다. 그간의 이자까지 붙여 거액을 변제하라는 승소 판결문을 손에 쥐었다. 민사소송의 승소가 그렇게 허탈한지 몰랐다. 본인 이름으로 된 재산이라고는 땡전 한 푼 없는 사람을 상대로 승소한 결정문은 사람 약 올리기 딱 좋다. 국이라도 끓여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까짓 종이 쪼가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속 끓인 시간만 안타깝고, 그동안 돈만 더 날렸다.
참 많은 액수의 금액을 정리했다. 꼬박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동안 생고생한 걸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그래도 마음의 뿌리와 영혼의 샘은 조금은 깊어졌을 거라고 나를 다독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뭐 어쩌겠나. 운명이라 받아들일 수밖에 도리가 없다. 남은 시간, '불휘 기픈 남간'이 되고, '새미 기픈 믈'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되돌아보면 솔직히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그때의 기억조차 희미해지니 살만하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맞다. 이제 원망도 미움도 잘 떠올리지 않는다. 떠올려 본들 내 속만 상하니까 아예 기억 속에서 지우는 게 차라리 낫다. 살다 보니 잊힐 권리와 잊힐 용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에 못지않게 잊을 시간도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