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보낸 한 철

by Henry

그때는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어

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어

그렇게 한 철을 보내고

삶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지옥에서 보낸 한 철.jpg


그곳으로 간다.

오전 6시 집을 나서 서울역으로 왔다. 2시간 조금 못 미치는 도시로 가기 위해 열차에 올랐다. 스마트폰 덕분에 기차 안에서 글을 다듬는다.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엄두조차 못 낼 일이다. 아니, 아예 이럴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이러니 현대인은 바쁠 수밖에 없다. 나야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직장인은 대가를 받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만 늘었다고 할 것이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도시에 도착하면 다시 한 시간 채 걸리지 않는 곳으로 간다. 상처와 추억이 뒤섞여 있는 곳이다. 한때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던 그곳으로 간다. 다시 찾을 줄 몰랐다. 이렇게 글을 쓰며 그때를 돌아볼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래서 알 수 없는 게 인생인 모양이다. 굳이 열차 안에서 글을 정리하는 까닭은 그곳에 가기 전과 갔다 온 후 마음이 어떨까를 비교하고 싶어서다.


배신과 음모, 상상조차 못 했던 채무, 어느 날 내게 불행이 들이닥쳤다. 사람을 믿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때 알았다. 대학에 있어서 순진했다는 말은 씨알도 안 먹혔다. 너무 어설픈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채권자들이 득달같이 학교에 들이닥쳤다. 민망함과 동료들의 뜨악한 표정, 무엇보다 힘든 건 어마어마한 금액을 보전하라는 말에 넋이 나갔다.


그때는 너무 무섭고 힘들었다. 큰 정신적 충격은 심각한 우울증을 불렀다. 나 스스로 일을 저지를 것 같고, 가족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었다. 아르튀르 랭보의 시집 제목처럼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다. 그때의 내 심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없다. 하기야 이때 겪은 혹독한 우울증 덕분에 심리학과 뇌과학 공부를 많이 했다.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경험하고 얻은 지식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아직도 헷갈린다.


그 무시무시한 문제를 해결하고 10년이 흘렀다. 몇 남은 그곳의 추억들이 떠오르는 걸 보니 마음은 참 간사하다. 고통의 순간에도 나를 위안해 주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많은 금전적 손해를 보았고, 지금도 그때의 후유증으로 어렵다. 그래도 문제를 해결했으니 다시 그곳을 찾을 여유가 생긴 셈이다. 과연 다시 가면 어떤 감회를 만날까. 그 소회와 그 당시의 엄혹한 사정을 갔다 와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랭보의 지옥

랭보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19세기 프랑스의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1854~1891)는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고, 방랑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16살 때 유명 시인인 폴 베를렌(Paul verlaine·1844~1896)에게 편지를 쓰고 자신의 시를 보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광적인 동성애를 나눈다. 랭보를 만난 베를렌은 아내와 아이들도 외면한다. 두 사람은 런던을 거쳐 벨기에 브뤼셀로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랭보의 이별 선언에 가슴이 찢어질 듯한 배신감을 느낀 베를렌은 랭보에게 총을 쏜다.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파탄이 났다. 랭보는 베를렌과 결별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시를 쓴다. 이때 나온 시집이 그 유명한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다. 이후방랑벽이 도진 랭보는 죽을 때까지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에티오피아에서 유랑생활을 했다. 유럽 문명과 상류 사회의 이중성을 거부한 랭보는 원시의 향수가 남은 아프리에서 행려병자로 사망했다. 시대와 불화하고 현실에 반항한 랭보다운 극적인 삶의 끝이다.

랭보는 자기가 겪었던 고통과 괴로움, 인생을 고뇌했다. 자기 삶에 대한 자기비판적 연작시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다. 랭보는 자기 삶이 고통으로 가득한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래서 그는 약 17년 간을 방랑 생활을 하다 37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둔다. 현대 문명의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시도 쓰지 않고 방랑했다.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고 비극적인 삶을 선택했다.


천재 시인 랭보와 그를 사랑한 베를렌의 동거와 결별은 영화 <토탈 이클립스(Total Eclipse, 1995>를 통해 사람들에 많이 알려졌다. 영화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랭보 역할을 맡았고, 데이비드 듈리스가 폴 베를렌 역할을 소화했다. 랭보는 당시 사회의 모순을 직설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또 저항했다. 훗날 베를렌은 랭보와의 기억을 "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이라는 시인다운 말을 남긴다.


누구나 한 번은 지옥 같은 한 철을 보낸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한 철을 지옥에서 보낸다. 처절하고, 막막하고, 불안한 시절을 경험한다. 그 절망감과 두려움을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런 괴로운 일을 당하지 않고 평생을 보내는 사람은 정말 복이 많다.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은 잠시나마 어렵고 힘든 시절을 보낸다. 어떤 사람은 지독한 어려움 때문에 진저리를 친다. 그런 삶을 살지 않고 꽃길만 걸으면 좋겠지만,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사는 동안 극락도 가보고, 지옥도 가본다고 말한다. 이때 극락과 지옥은 특정한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떤가에 따라 극락도 되었다가 지옥으로 바뀌기도 한다는 것이다. 번뇌와 고민이 사라진 청정한 마음 상태가 극락이고, 번뇌로 뒤범벅된 마음이 지옥이다.


깨달은 사람은 어디에 있더라도 한결같다. 마음을 갈고닦으면 집이 곧 청정한 도량(道場)이다. 반대로, 청정 도량인 사찰에 머물러도 번뇌가 가득하면 지옥이나 다름없다. 지옥과 극락은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이승에서도 극락세계에 사는 것이다.


너무 훌륭한 가르침이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이 그리 살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잠깐은 번뇌 없는 청정한 마음을 갖지만, 이내 온갖 잡생각아 머리를 채운다. 근심과 걱정, 욕심과 욕망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이러니 매 순간 청정한 마음으로 사는 건 힘들다. 고승조차 깊은 산에서 평생 도를 닦는데 일반인이 그런 경지에 도달하는 건 무리다.


살면서 고민 한둘 지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걱정 없어 보여도 속을 들여다보면 다 자잘한 근심을 안고 산다. 그 정도야 일상적이니 충분히 견딜만하다. 그런 상황을 우리는 지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 해결되거나 자기 노력으로도 극복할 수 있는 난관이야 삶의 윤활유다. 그마저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괜히 스스로 번뇌의 감정을 증폭하지 않으면 지옥을 경험할 일 없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내 힘으로 감당이 안 되는 난관이다. 금전적 손실이 너무 커서 가정이 파탄날 지경이 되면 이건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다.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어 끝내 해결하지 못하면 가정이 해체된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단칸방 하나 구할 형편이 못되면 이건 정말 큰 일이다. 이거야 말로 지옥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런 잔혹한 일은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이런 일을 당한다고 다 파탄 나는 것은 아니다. 강한 의지와 깊은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도 있다. 그 과정에서 감내해야 할 심적 고통은 지옥에서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문제가 터지고, 수습하고, 해결하는 동안 혼비백산한다. 마음은 갈갈이 찢어지고, 영혼은 너덜너덜해진다. 그것이야 말로 지옥이다.


우리가 닥치는 어려움이 온전히 우리 탓인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하는 바람에 난데없이 봉변을 당하는 일도 많다.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정도가 아니고 머리가 돌아버릴 정도로 고통스럽다.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자신에게 실망한다. 이런 상황에서 온전히 정신을 갈무리하는 것은 대단한 정신력이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의도치 않았다 해도 나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좋다. 늘 현명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며 살아야 한다. 까닥 잘못하다가는 내 잘못도 아닌데 고통스러운 한 철을 보낼 수도 있다. 금전적인 문제를 처리할 때는 처음부터 단호한 것이 좋다. 뒤늦게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처음에는 쌀쌀맞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서로를 위하는 길이다.


기차는 겨울 들판 사이를 쏜살같이 달린다. 느긋하게 풍경을 즐기려는 내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제 갈 길만 간다. 풍경을 보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삶은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간다. 울고 웃는 것은 오롯이 우리 마음이다. 기차는 곧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그곳에 가서 어떤 추억과 만날지 궁금하다. 그 시절이 지나면 삶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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