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팬데믹 때문에
그놈의 팬데믹이 청춘을 옥죄었다.
코라나 이후 처음으로 개강 모임을 가졌다.
역시 젊은 열정적이고 낭만적이다.
학생들은 강의실보다 바깥에서 더 좋은 모양이다.
공부하자면 풀 죽던 녀석들도 그저 신이 났다.
청춘은 낭만과 감성으로 충만하다.
화기애애한 자리를 무탈하게 마무리했다.
마치고 동료와 간단한 뒤풀이 시간을 가졌다.
한 분이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내 그림을 봤노라며 칭찬한다.
너무 과해 민망하기 짝이 없다.
자기도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열정 넘치는 그분의 말이다.
"색을 보면 열정이 끓어오른다.
빨간색을 보면 황홀함을 느낀다.
색에 빠지고 몰입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그는 고흐를 보러 프랑스 남부 여행을 했다고 한다.
아를(Arles)과 생레미(Saint-Remy)도 가봤다.
론(Rhone) 강의 별밤을 직접 보았다.
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면 언제든 떠난다고 한다.
나도 아를을 가봤다.
나도 론 강의 강변에도 섰다.
생레미의 별밤을 올려도 봤다.
다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분과 나의 차이가 바로 이것이다.
이분이야말로 색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감정이 풍부하고 열정적이다.
나는 감성이 풍부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폭발적인 감성을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으로만 많은 생각을 한다.
어정쩡한 이성형이다.
뜨거운 감성이 부족하면, 냉철한 이성이 풍부한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다.
폭발하지 못하는 휴화산이라고 할까.
아침엔 비까지 내려 마음이 쓸쓸하다.
당분간 어반 스케치만
토요일 아침은 늘 화실에 간다.
어제도 그랬다.
선생님께 동료와 나눈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자주 슬럼프에 빠진다고 고백했다.
"나는 왜 색에 확 빠져들지 않을까요?"
“음... 이유가 조금 짐작 가네요”
그림을 그릴 때 색감보다 형태를 더 중시한다.
구도와 묘사에 재미를 느낀다.
색을 마음껏 구사하고 과감하게 시도하기보다
정교하게 색을 고르고 거기에 맞게 색칠하려 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색감이 잘 안 나올 때가 많다.
그래서 슬럼프에 빠지는 것 같다.
그럼 처방이 뭔가?
스케치와 묘사에 몰입하기로 했다.
색은 가능하면 묽게 칠할 것이다.
돌고 돌아 어반 스케치 풍으로 왔다.
여기서 기본기를 다져야겠다.
그리고 난 후 나만의 색감을 개발해야 한다.
몇 번의 수상과 몇 번의 전시회
그것도 좋았지만 몰입할 필요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뭔지 찾는 게 급선무다.
기지도 못하는데 날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역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내게 딱 맞다.
그래서일까.
어제는 꼬박 고사리역만 스케치했다.
같은 장소를 다른 관점으로 해석했다.
연달아 몇 장을 스케치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푹 빠졌다.
지웠다 그리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흠뻑 취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길을 제대로 잡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