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외로움이 남긴 그늘은
어디에서나 따라다니며
내게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함께합니다
그림자처럼 나와 함께 있는
고독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내 안에 깊이 파고들어갑니다.
언제나 나의 곁에 있던 사람들도
늘 함께하던 것은 아닌 법
그러나 나는 그들이 지나간 후에도
고독과 함께 남겨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고통스러운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고독이란 흑백의 세상에서도
내가 더욱 빛나게 해주는 단 하나의 빛과 같습니다.
나의 고통은 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주며
내 안에 깊숙이 자리한
고독이 나를 위한 가장 소중한 친구임을 깨달았습니다.
외로움
나는 외로운 존재인가?
이미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는데도,
내 안에 차 있는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외롭다는 것은 마치 끊임없이 비어가는 물병 같다.
아무리 물을 채워넣어도,
언젠가는 다시 비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
그러나 이런 외로움도 가끔은 필요한 법이다.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
내 안의 깊은 감정을 돌아볼 수 있는 순간이다.
외로울 때면 가끔은 누군가의 어깨가 필요하다.
따뜻한 손길과 공감의 말,
그것만으로도 이 외로움은 조금은 가볍게 느껴진다.
하지만 가끔은 누구도 내 곁에 없다.
그럴 땐 참고 견디며,
나 자신에게 다가가보자.
내 안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소중한 세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 혼자만의 행복이 있을지도 모른다.
외로움이 더할수록 가끔은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나 자신과 내 안의 세상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고독'과 '외로움'의 시
'고독'과 '외로움'을 주제로 쓴 시다.
읽는 사람마다 느낌과 평이 다를 것이다.
잘 썼다는 사람도 있고, 이걸 시라고 썼느냐는 사람도 있다.
시인들이 보면 어떻게 평가할까?
그리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작부터 변죽을 울렸다.
본론을 말하면, 이 시는 내가 쓴 게 아니다.
챗GPT가 쓴 시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옮겨 적었다.
'고독'을 쓰는 데는 30초가 안 걸렸다.
'외로움'을 쓰는 데는 37초가 걸렸다.
미국 태생의 AI치고 띄어쓰기 몇 군데 틀린 거는 애교로 봐줄 만하다.
시간이 뭐 중요하냐?
내용이 중요하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걸 쓴 사람이 아니라 기계라는 것이 문제다.
기계가 가장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고독'과 '외로움'을 이 정도로 표현했다.
그러니 내용이 부실하다고 탓할 것만은 아니다.
같은 제목으로 부탁해도 매번 다른 내용으로 쓴다.
시간이라 해봐야 30초 이내다.
한 시간 동안 수십 편을 쓸 수 있다.
몇 시간 걸려 수백 편의 쓴 것 중에 나은 걸 고른다.
그땐 사람이 나무랄 수 없는 작품을 건질지도 모른다.
적어도 수백 편의 시를 보고 번뜩이는 창작 아이디어를 건질 수는 있다.
AI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그것도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챗GPT만 해도 이 정도인데 앞으로 어떻게 할까.
더구나 챗GPT 자체도 매번 업그레이드된다.
그때는 문학적으로 우수한 시가 나올 것이다.
곧 인간의 감성을 뒤흔들 시가 나올 판이다.
형보다 나은 동생들이다.
'형만 한 동생이 없다'는 속담을 수정해야 한다.
AI 형제들은 형보다 동생이 훨씬 똑똑하다.
알파고 형제들도 그렇고,
이번에 나온 챗GPT 형제도 그렇다.
그냥 똑똑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 똑똑하다.
이 시를 쓴 작가는 챗GPT-3.5다.
2022년 12월 1일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이제 겨우 4달째다.
며칠 전 이 아이보다 더 똑똑한 챗GPT-4가 공개됐다.
사진이나 영상 이미지를 인식하는 ‘눈’까지 달았다.
일찍부터 실력이 무시무시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렇게 A는 빠르게, 그것도 너무 빠르게 진화한다.
AI와 슬기로운 동거 생활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강 건너 불구경하기엔 너무 가까이 와버렸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당신'이 아니라
'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운 당신'이다
그저 AI가 놀랍다고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 아이는 머릿속이 어떤 모양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시리즈로 글을 쓰고 있다.
속속들이 알기엔 어렵지만 하는 데까지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