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프로와 프로크리에이터
그림을 꼭 손으로 그려야 하나?
아니, 그림을 손으로 안 그리면?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느냐고 핀잔받을 일이다.
손재주가 모자라면 도구를 이용한다.
그렇다고 AI 화가의 힘을 빌자는 것은 아니다.
프로필 사진을 제출할 일이 생겼다.
굳이 사진이 아니래도 상관없다고 한다.
캐리커처도 좋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내 얼굴을 그렸다.
그것도 반 만 그렸다.
이게 무슨 알일까?
얼굴을 반만 그리다니?
내가 직접 다 그린 게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패드 프로와 프로크레이터를 이용했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았다.
어제 토요일 아침 화실 가기 전
이른 아침에 학교에 들렀다.
아이패드를 챙기지 않은 탓이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 했던가?
진작 그 생각을 했다면 미리 챙겼을 거다.
덕분에 화실에 일찍 도착했다.
준비해 간 커피를 꺼냈다.
진한 커피 향이 물감 냄새와 묘하게 어울린다.
색색의 물감을 칠한 커피 향이 퍼진다.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는 그림 도구들이 보인다.
토요일 아침 화실 풍경은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아이패드를 켜고 아이패드 펜슬을 꺼냈다.
프로크레이터에서 사진을 불러들였다.
레이어 1에 원본 사진을 둔다.
그 위에 사진을 그려 넣을 레이어 2를 추가한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레이어 2에서 레이어 1에 있는 사진의 선을 딴다.
습자지에 대고 사진의 윤곽을 따는 일과 같다.
그렇게 선을 따고 얼굴을 그린다.
다음에 레이어 1을 보이지 않게 한다.
레이어 2에 사진 위에 그린 얼굴 모양이 나온다.
여기까지는 컴퓨터의 도움이다.
이렇게 인물을 그리는 밑작업이 끝났다.
아직은 엉성하고 내 얼굴과 딴판이다.
왜냐하면 얼굴선만 따놓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내 손이 필요하다.
외곽선을 다듬어 입체감을 줘야 한다.
명암도 넣고 빛나는 눈의 동공도 필요하다.
머리카락도 한 올 한 올 그려야 한다.
입가의 미소와 하얀 치아가 보일 때 나답다.
그래서 내 얼굴을 반 만 그렸다고 말했다.
사실 반만 그린 것도 아니다.
기계가 다 그린 거나 마찬가지다.
사람 인물을 그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틀어져도 영 다른 사람이 된다.
그래서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밑 작업을 도구한테 맡겼다.
손 그림의 아날로그 감성
세상 참 좋아졌다.
옛날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지금은 재주가 없어도 기계의 힘을 빌 수 있다.
손재주가 없으면 도구라도 잘 다뤄야겠다.
이제 AI 화가가 나왔으니 그 아이한테 맡기면 된다.
그러면 나보다 더 나 같은 인물화를 그릴 것이다.
컴퓨터와 알고리즘의 편리함이다.
그렇다고 그림을 굳이 그렇게 할 생각은 없다.
아무리 AI 화가가 난다 긴다 해도 그에게 다 맡기면 무슨 재미가 있나?
가능하면 손으로 그릴 것이다.
아날로그 감성을 그대로 살려 그리고 싶다.
오늘은 급박한 상황이라 기계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도 마무리 작업은 손으로 했다.
짜릿한 아날로그 손맛을 봤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뿌듯하다.
디지털 세상이 편리하긴 하다.
아이패드나 AI나 다 디지털의 자식들이다.
그들이 주는 편리함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매달릴 필요도 없다.
손으로 그리는 그림
손으로 쓰는 글
먼 거리를 달려가는 여행
얼굴을 마주 보고 마시는 커피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술자리
이런 아날로그 감성이 주는 즐거움을 놓칠 수 없다.
이것마저 빼고 나면 남는 게 뭘까?
제아무리 편리함이 좋다고 해도 어디 낭만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