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이나 죽다 살아난 하고사리역

by Henry
https://m.blog.naver.com/nopqda/222036260275


이름을 잃어버린 하고사리역

하고사리역은 두 번이나 죽다 살아났다.

끝내 하고사리역은 제 이름을 잃어버렸다.

원래 이름은 고사리역이다.

번듯한 제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하고사리역이라 불렀다.


때는 나라를 빼앗긴 1940년 암울한 일제 강점기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일대 석탄 탄광이 들어섰다.

일제는 석탄을 수탈하기 첩첩산중에 철로를 깔았다.

일본으로 석탄을 가져가기 위해서다.

철로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석탄이었다.

그걸 실어 나르기 위해 고사리역을 만들었다.


원래 고사리역은 고사리에 있었다.

2.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늑구리 마을이 있다.

늑구리 일대에 새로운 탄광이 속속 개발되었다.

지금이야 이 정도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1940년대에는 참 먼 거리였다.

여기서부터 사달이 났다.


일본 제국주의는 고사리역을 늑구리로 옮겼다.

고사리 마을에 있던 역이 늑구리로 이사 갔다.

더 많은 석탄을, 더 빨리 일본으로 싣고 갔다.

고사리역은 일제 수탈의 아픔을 새겼다.


고사리역을 늑구리로 옮기면서 이름도 가져갔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정작 고사리 마을에는 고사리역이 없어졌다.

엉뚱하게 늑구리 마을에 고사리역이 자리했다.

이야기는 그렇게 된 것이다.


고사리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였다.

워낙 산이 깊어 고사리가 많아 자랐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고사리가 됐다는 말이 있다.


아니라는 말도 있다.

옛날에는 마을의 산세가 험하기로 소문났다.

산과 하천으로 고립된 지역이다.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은 험한 산길을 넘어 다녔다.

산을 넘다 사람들이 많이 죽어 고살(故殺)이라 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고사리가 되었다는 말도 있다.


이런 사연을 가진 고사리 마을은 역을 잃어버렸다.

원래 고사리 마을이 이 일대의 중심지였다.

고사리역이 이사 가자 사람 발길이 끊겼다.

첩첩산중이라 마을은 고립되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2015년 사진


마을 주민이 직접 세운 역사(驛舍)

고사리 주민들은 오랜 세월 불편하게 지냈다.

무엇이든 편리하게 이용하다가 사라지면 불편하다.

마을 사람들은 아예 역사(驛舍)를 짓기로 하였다.

그것도 주민들 스스로 짓기로 했다.

근처 산에서 손수 목재와 황토를 지게로 날랐다.

오십천에서 자갈을 지게에 지고 왔다.


이렇게 만든 역이 하고사리역이다.

하고사리 역사는 1966년에 완공됐다.

1동 1층 규모의 목조 건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마을 사람들이 지은 역이다.

남양주시의 팔당역과 더불어 가장 작은 역사이다.


옛날의 하고사리역, https://m.blog.naver.com/lemonpie1241/220712444237


고사리역은 이미 철도청에 등록된 이름이다.

어쩔 수 없이 하고사리역이라고 이름 붙였다.

처음에 주민들이 역을 직접 운영했다.

1967년 9월 1일 간이역 영업을 인정받았다.

1970년대 하루 이용객이 500명에 이르렀다.


2006년 11월 하고사리역은 철거 위기에 처했다.

당국에서는 역을 없애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은 강력하게 항의했다.

온몸으로 던져 철거를 막았다.

어떻게 만든 역인데 포기할 수 없었다.

하고사리역은 다시 한번 죽다 살아났다.


지금의 하고사리역


얼굴마저 잃어버린 하고사리역

부활한 하고사리역은 감동의 스토리를 가진 역이다.

규모는 작아도 이야깃거리가 풍성하다.

그 덕분에 하고사리역은 2007년 등록문화재가 됐다.

2008년도 근대문화유산 지킴이상을 받았다.

지금은 폐역이지만 어엿한 국가등록문화재이다.


문화재로 등록하면서 역사를 새로 지었다.

안타깝게 역사를 완전히 뜯어고쳤다.

성형 수술을 해 페이스 오프했다.

마을 주민의 손으로 직접 지었던 역사는 없다.

하고사리역은 본래의 얼굴마저 잃어버렸다.


역사는 깨끗하지만 밋밋한 흰색 건물이다.

흰 페인트가 세월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그저 그런 평범한 건물로 변했다.

아무 특징도 표정도 없는 건물이다.


하고사리역의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없앴을까?

왜 역사(驛舍)의 역사(歷史)를 보존하지 않을까.

차라리 낡고 추한 그대로 두었으면 좋았을 걸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흙과 나무를 구해 직접 만든 역사(驛舍)가 아닌가.

그걸 부수고 무미건조한 건물로 만들었다.

덕지덕지 묻은 손때가 차라리 좋은데....



하고사리역은 이 골목 끝을 지나 있다.

마을 입구에서 이 길을 통해 들어간다.

붉은 황토 담에 쌓은 장작더미가 정겹다.

이 길이 끝나면 오른쪽으로 들판이 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폐역의 새 건물이 있다.



들판 끝 하고사리역.JPG


저 멀리 보이는 흰색의 건물

가까이 가서 안을 들여다봤다.

그 시절의 사진이나 추억할 거리가 있나?

궁금해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는 허무만 가득하다.

꼭 이래야만 했을까?

날씨만큼이나 쓸쓸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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