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를 합치세요!!

【외부인의 컨설팅, 내부인의 비판】

by Henry
http://www.realdebate.co.kr/메타모델-3/



“과를 합치세요!!”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구조조정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다. 몇 개의 과를 합해 하나로 만들라고 한다. 합치면 경제성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는 건지 불분명하다. 가만히 들어보니 이익은 부풀려졌고 숨겨진 비용이 보인다.


“경제성 분석에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직원의 생사가 달린 문제를 이리 허술하게 진행하다니 이해하기 힘들다. 해당 과와 한마디 논의도 없이 내린 결정이라 어안이 벙벙하다. 잘못 계산된 편익-비용 분석을 모른 척할 수 없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요. 결정대로 따르세요!!” 높은 분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난다. 그분의 싸늘한 표정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결정을 통보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라 자존심이 상하셨나 보다.


이미 내친걸음이라 멈추기는 늦었다. 경제성 평가의 문제점을 또박또박 설명했다. 힘으로 밀어붙이기에는 논리가 너무 허술했다. 다행히 없었던 일로 결론이 났지만, 단단히 박힌 미운털은 몽땅 내 것이 됐다.


미리 논의하고 설명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더 나은 방안을 찾을 수 있었다. 적어도 이해 당사자와는 사전에 논의했으면 좋았다. 그랬더라면 공식 회의에서 스타일을 구기는 일도 없다. 높은 분들은 중요 사안을 토론에 부치면 비판과 반대가 난무할 거로 여기는 걸까. 이런 일에서는 단독 지성보다 집단 지성을 믿으면 좋을 텐데 아쉽다.


토론은 엉성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만든다. 치열하게 논쟁하다 보면 독설로 속이 훌떡 뒤집어질 수도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엉성한 주장도 세련미를 갖추게 된다. 주장의 허점을 후벼 파는 비판 덕분에 정교한 논리로 변신한다. 높은 분들은 그런 과정과 절차를 귀찮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반박할 수 없는 정책을 발표해야 한다. 그러면 누가 감히 토를 달 수 있겠는가. 논란이 된다는 것은 주장에 허점이 있다는 뜻이다. 구조조정 같은 중요한 사안을 한두 사람이 결정하면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걸 걸러내는 것이 토론의 힘이다.


다이아몬드도 처음에는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돌덩이는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과 연마 기술 덕분에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로 변신한다. 투박한 원석이 뭉텅 떨어져 나가는 고통이 보석을 만든다. 따지고 보면 토론도 생뚱맞은 주장을 논리라는 보석으로 가공하는 과정이다.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만큼은 토론을 좀 했으면 좋겠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미리 설명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잘 된 토론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오히려 생산적이다. 그걸 통해 조직원의 사기와 능률을 높일 수 있다. 감히 공개적인 자리에서 저 하나 살자고 조직을 위험에 빠뜨릴 사람이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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