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의 컨설팅, 내부인의 비판】
"이게 뭐라고 생각하니?"
"모르겠습니다"
고맙다. 너는 나에게 기쁨을 주었다. 네가 모르니까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네가 모든 걸 다 잘 안다면 내 설 자리가 없다. 그러니 너는 내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고마운 존재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이렇게 풀면 되지 않나요?"
고맙다. 너는 나에게 보람을 주었다. 내가 가르치고 코칭(coaching)한 걸 잘 이해했다. 내가 지금껏 한 일이 헛수고가 아님을 알려주었다. 그러니 너는 네게 큰 보람과 자부심을 주는 고마운 존재다.
수업할 때 끊임없이 묻는다. 바로 가르쳐주면 재미도 없고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아이들은 모르고, 틀려도 되는 권리를 가졌다. 비싼 돈을 내고 학교에 다니는 이유가 그것이다. 거창하게 인격 도약까지 말할 필요도 없다. 등록금을 낸 만큼 학생들은 제대로 남는 걸 익혀야 한다.
아이들은 입을 잘 떼지 않는다. 숫기도 없다. 그들이 자신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아니, 입 떼는 두려움을 줄여줘야 한다. 틀려도 좋고, 몰라도 괜찮다고 한다. 어떤 말을 해도 내겐 기쁨 혹은 보람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면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지고 아이들도 조금씩 자신감을 가진다.
토론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반드시 알아야 할 이론과 법칙을 먼저 일러준다. 그리고 난 다음, 거기에 맞는 주제를 준다. 참고 도서와 자료를 알려주고 발표와 토론을 준비시킨다. 처음에는 힘들어하고, 먼저 하고자 나서는 아이들이 없다. 이때 강하게 밀어붙인다. 조를 정하고 발표 순서를 결정해 준다. 속내야 어떨지 몰라도 아이들은 잘 따라온다.
세 번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이제는 틀이 많이 잡혔다. 발표를 꽤 잘하는 친구도 있다. 군계일학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실력을 갖췄다. 청중을 끌어들이면서 자기주장을 펼쳐나간다. 답변할 때도 여유가 넘친다. 그렇지만 지식이 아직 얕아 막힐 때가 있다. 그걸 보충해 주는 것이 내 일이다.
또 한 팀은 PPT 자료를 제대로 만들었다. 색감, 폰트, 내용 등 어느 하나 나무랄 데가 없다. 내가 일러준 준 이론 말고도 다른 주장들도 담았다. 미처 내가 읽어 보지 못한 자료가 있다. 이크, 이러다간 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닐까? 살짝 염려가 들 정도다. 제대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가능하면 아이들의 발표와 토론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들이 막히거나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알려준다. 대답을 못 해 토론이 중단될 때가 있다. 그럴 때도 답을 바로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이어간다. 어느 순간이 되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낸다.
조직에서도 중요한 안건이 있을 때 토론하면 좋겠다. 상사가 의견을 바로 내는 게 아니라 부하 직원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다. 이때 부하 직원의 생뚱맞은 주장을 타박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가는 건 어떨까? 주장이 허술하면 그 부분을 다시 물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토론과 질문을 이어가다 보면 좋은 안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러다가 언제 일하느냐고? 볼멘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제대로 된 토론은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몇 사람이 낑낑대는 것보다 훨씬 빠른 결과를 얻는다. 그것도 제대로 된 내용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자질구레한 것까지 매번 토론할 일은 아니다. 그건 평소 하던 대로 지시하고 확인하면 된다.
뜬금없이 조지훈(1920~1968) 시인의 시 '사모(思慕)'가 떠오른다.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시의 첫 부분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틋함을 표현했다. 중간쯤에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과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떠나간 사랑을 축복한다는 내용의 시다.
"조직에 있어 직원은 기쁨 아니면 보람"이 될 수 없을까. 다 지도자 하기 나름이다. 인재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아직 남의 사람이 된 건 아니다. 사람이 없다고 하면 그건 제대로 된 사람을 뽑지 않은 조직의 잘못이다. 이미 사람을 뽑았다면 제대로 된 인재로 키워야 한다. 그것이 지도자의 능력이고 상사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