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슬기로운 동거 생활】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초록 눈이 내린다.
화가 마르크 샤갈(Marc Zakharovich Chagall, 1887~1985)의 마을에는 3월에 초록 눈이 내린다. 그는 지금은 벨라루스에 속하는 러시아의 작은 마을 비텝스크에서 태어났다. 김춘수 시인은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에서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라고 했다. 초록색을 무척 사랑한 샤갈이라, 나는 늘 그의 마을에는 초록 눈이 내릴 거라고 상상한다.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 1973)는 “마티스가 죽은 후 진정으로 색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화가는 샤갈뿐이다.”라고 말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가 누군가? 야수파의 대표 주자로 강렬한 빨간색을 캔버스에 쏟아부은 화가다. 그는 사물을 단순화하고 강렬한 원색의 그림을 그렸다. 사물의 색깔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속의 색채로 표현하는 야수파라는 회화 기법을 개척했다. 피카소는 샤갈이 마티스만큼이나 뛰어난 색채의 화가라고 극찬했다.
샤갈은 빨강, 파랑, 노랑 그리고 초록의 원색을 많이 사용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초록색을 사랑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초록색 사람은 샤갈 자신을 뜻한다. 고향의 푸르름을 그리워하고, 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열망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의 그림에는 강렬한 색채와 이방인의 외로움이 가득하다.
샤갈의 고향 비텝스크는 인구의 절반이 유대인으로 유대교의 전통이 강한 마을이었다. 이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수탉이나 암소의 몸으로 들어간다고 믿었다. 그의 그림에서 동물이 사람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 까닭은 고향 마을의 전통 때문이다. 그림 속에 번번하게 등장하는 초록색의 사람은 샤갈 자신을 뜻한다. 그의 마음은 늘 고향 마을과 함께했다.
그림 <나와 마을(1911)>에는 커다란 암소 얼굴과 초록색 사람 얼굴이 마주하고 있다. 고향 마을의 전통과 초록색에 대한 샤갈의 강한 애착이 드러난다. 그림 속에 또 작은 그림들이 있다. 젖을 싸는 마을 처녀, 농기구를 어깨에 걸친 아저씨, 거꾸로 선 여인과 집들이 보인다. 샤갈은 어린 시절 들었던 마을의 동화를 회상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 위에다 갓 정착한 파리의 빛깔을 씌웠다.
어디 초록색 눈이 있기나 한가? 동화 속에서나 있을 법하다. 너무 자로 잰 듯한 정교함이 판치는 세상이다. 디지털 기술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AI까지 설치니 너무 빠른 속도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상상을 허용하지 않고 느림을 용납하지 않는 현실이다. 사람들은 늘 바쁘게 일하고 피로에 찌들어 산다.
이제 봄도 끝자락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남은 봄볕마저 자리를 훌훌 털고 떠나면, 더운 여름이 시작될 것이다. 조금만 더디게 가라는 소리를 시간은 한쪽 귀로 흘려듣는다. 그래도 마음만은 여유를 갖고 살아야겠다. 가끔은 반가운 얼굴을 마주 보며, 아날로그 감성을 듬뿍 담은 차를 마실 것이다. 어딘가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이름의 카페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