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슬기로운 동거 생활】
사라진 손 편지, 사라진 빨간 우체통
예전에 그 많든 빨간 우체통이 다 어디로 갔을까? 불현듯 그 생각이 났다. 최근에는 빨간 우체통을 본 적 없다. 골목이나 거리 어귀에 앙증맞게 섰던 우체통이 사라졌다. 우체통을 이용해 우리는 편지를 보냈다. 편지로 참 많은 기쁨과 슬픔을 전했다. 이제 그 사연들은 오래전에 사라진 추억으로 남았다.
최근 대부분 지역에서 빨간 우체통이 사라졌다. 대도시에도 우체통은 겨우 수십 개 남짓하다. 우편물은 하루에 겨우 스무 통도 되지 않는다. 군대 간 남자친구에 보내는 연애편지나 스승의 날 보내던 손 편지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 SNS에 밀려 손 편지가 사라지고, 그것을 전하던 우체통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다.
인터넷은 아날로그 감성의 대표주자인 손 편지를 사라지게 했다. 원래 손 편지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터넷이 나오면서부터 이 말이 등장했다. 이메일과 구별하기 위해 이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메일을 쓰기 전에는 편지는 당연히 손으로 쓰는 편지였다. 그러니 손 편지라고 굳이 구분할 이유가 없고, 기껏해야 30년 남짓한 역사를 가진 말이다.
손으로 편지를 쓰는 일은 보통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다. 예쁜 글씨와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쓴다는 건 부담감도 적지 않다.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편지는 밤사이에 수십 번도 더 썼다가 찢는다. 그러고도 아침에 일어나 읽어보면 손발이 오글거리는 걸 느낀다. 글씨야 예쁘지 않으면 어떤가, 내용이 좋으면 다 용서되는 게 손 편지다.
몇 날 밤을 고민하면 쓴 편지를 용감하게 부친다. 그다음부터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편지를 받은 이의 시간이다. 상대가 편지를 읽고 난 후 답장을 쓰기까지 초조하게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열흘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답장이 온다. 때에 따라서는 그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기다리던 답장을 뜯을 때 마음은 얼마나 떨리던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낭만의 시대였다.
기다림의 미학도 사라지고
손 편지를 집어던진 지 오래다. 스마트폰이 있고, SNS가 있는데 손 편지가 웬 말인가. 밤새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썼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밤을 새워 쓴 편지 아침이면 차마 부치지 못한 적이 몇 번이었던가. 밤이란 늘 감성을 충만하게 하고, 그런 절절한 감정을 하얀 종이에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아침에 읽어보면 얼마나 민망하던지, 지금은 손 편지를 쓰지 않으니 민망할 일이 없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민망함도 잊고, 기다릴 줄도 모른다.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시간이 짧아진다. 이메일 보내고 상대가 수신했다는 사실을 안다. 답장을 바로 보낼 일이지 왜 차일피일 미루는지 답답하다.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초조해진다. 애정을 담은 이메일이라면 더 마음이 심란하다. 상대가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오만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편하자고 만든 전자우편이 마음을 한정 없이 불편하게 한다.
이메일은 그나마 낫다. 카톡 메시지는 어떤가? 상대가 내 메시지를 읽은 지 10분이나 지났다. 그런데도 답장이 없다. 사람들은 초조하고 불안해진다. 내게 관심이 없는 건 아닐까, 걱정이 밀려온다. 업무가 바빠 답장을 늦게 하는 거야 이해하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답장이 늦다면 이건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런 초조함이 사람을 성마르게 하고, 견디기 힘들게 한다. 느긋하게 기다려야 하는데 그새를 못 참는다.
SNS의 신속성이 사람의 인내를 바닥나게 했다. SNS에서 대화하다 마음이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냥 참고 넘어가면 아무 문제가 없다. 메시지의 신속성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바로 만나서 현장에서 시비를 가린다.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시비가 붙은 사람이 실제 만나 싸우는 현피가 일어난다. 인내심과 참을성이 바닥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스마트폰, 인터넷, SNS 등 디지털 기술이 인간을 편리하게 해 준다. 그러나 인터넷의 신속성과 편리함 그리고 쉽게 맺어지는 커뮤니티가 과연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지 의문이다. 얼마 전 10대 청소년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하던 실시간 방송을 켜둔 채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에서 몸을 던졌다. 수십 명이 생중계된 그의 죽음을 지켜봤다. 예외적인 경우라 말할 수 있지만, 분명 SNS의 역기능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손으로 쓰는 즐거움
나는 자주 종이 수첩에 글을 쓴다. 종이에 손으로 글을 쓰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그렇게 쓴 글을 나중에 다시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예전에 써놓은 글을 찾으려면 종이를 넘겨야 한다. 페이지마다 숨어 있던 옛이야기가 튀어나와 그때의 추억을 되살려 준다. 아, 그때 그랬구나 하고 속으로 웃곤 한다.
얼마 전 손으로 쓴 노트를 세어봤다. 생각보다 많다. 하나씩 넘길 때마다 그 시간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 이때 이런 참신한 말을 썼구나 하고 대견해할 때도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분을 적은 글도 있고, 새 책을 읽고 좋은 문구를 적어놓은 것도 있다. 그것들이 지금은 다 소중한 글감이고 생각의 샘이 됐다.
워드로 작성해 파일로 저장한 문서를 찾을 때는 이런 맛을 느낄 수 없다. 파일 제목만 보고 휙휙 지나가면 그 속에 무슨 내용이 들었는지 알 길이 없다. 파일이 너무 많으면 제목을 훑는 것도 일이 되어 버린다. 골치가 찌근거리고 언제 이걸 다 찾느냐는 생각이 든다. 감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디지털 파일은 쉽게 지치게 한다.
이래서 나는 자주 종이에 글을 쓴다. 가끔 보낼 곳이 없는 손 편지를 쓰기도 한다. 외출할 때면 수첩을 갖고 다닌다. 약간의 수고로움은 자투리 시간에 뭔가를 끄적이는 재미로 보상이 된다.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 수첩만큼 요긴한 것도 없다. 그 위에 써 내려간 감성이 시간이 지나면 곱씹을 추억이 된다. 게다가 그 속에 가끔 보석 같은 글감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걸 제대로 연마할 재주가 없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