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도착했다.
알라딘 온라인 중고 서점에서 주문한 <어반 스케치 수업>이 도착했다. 어반 스케치를 제대로 하려 책을 샀다. 온라인 중고 서점에서 최상급이면 거의 새 책이라는 뜻이다. 배송비를 부담해도 30% 이상 할인된 가격이다. 중고 서점을 자주 이용하는 까닭은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누군가가 샀다 판매한 책이라 그 사람의 손때가 묻었을 같아서 산다.
책을 폈다. 중고라고 하지만 처음 구매한 사람이 거의 읽지 않았나 보다. 상태가 깨끗하다. 책을 받을 때면 늘 기분이 좋다. 그 느낌을 즐기려 산 탓에 읽지 않은 책도 많다. 책을 받는 순간만큼은 책 속의 지식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아니, 들어왔다고 착각한다. 다 읽지 않고 책장에 꽂은 책들이 빤히 쳐다본다. 그들과 얼굴이 마주치면 미안해서 손으로 페이지를 넘긴다.
가끔 수첩을 뒤적이다 메모해 둔 좋은 글을 발견한다. 책 제목과 몇 쪽에서 나온 말인지 기록해 둔다. 아차, 책 제목만 있거나 아예 그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부랴부랴 인용문이 있을 만한 책을 뒤진다. 끝내 책장을 온통 헤집어 놓는다. 읽지 못한 책들이 자기를 봐달라고 아우성친다. 미안한 마음에 몇 권의 책을 뽑아 든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인터넷 검색도 자주 하고, 구글링도 열심히 한다. 요즘은 챗GPT의 도움도 자주 받는다.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인공지능 강의도 한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좋은 글을 만나고 강의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있어 참 편리하다. 그렇지만, 인용할 문구를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아날로그인 종이책의 몫이다. 원작을 뒤져 출처를 확인한다. 책이 없으면 학교 도서관에 가거나 그곳에도 없으면 공공도서관으로 간다.
두고 봐야 할 책이면 서점에서 구매한다. 알리딘 서점을 찾거나 신간을 사러 교보문고로 간다. 그곳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을 손에 넣으면 그 즐거움도 쏠쏠하다. 그렇다고 꼭 새 책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끔 해지고 낡은 책을 손에 넣을 때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겨우 몇천 원도 차이 나지 않은 가격은 아무 상관이 없다. 금방 포장을 뜯은 책 보다 묵힌 책에서 나는 특유의 향기가 좋다.
향기로운 종이 냄새
"인터넷 보면 다 나오는데 왜 신문을 보니?"
"응, 신문에서 나는 종이 냄새가 좋아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신문이 왔나 하고 현관문을 빼꼼히 연다. 대략 6시 30분에서 40분 사이면 신문이 놓여있다. 어지간한 소식은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신문만이 가진 묵직함이 좋다. 어차피 속도야 신문이 인터넷을 따라가기는 글렀다. 신문은 인터넷보다 한없이 느리지만, 속 깊은 맛에 읽는다.
매일 활자 신문을 보는 까닭은 뉴스의 속보성 때문은 아니다. 문학이나 예술 분야의 글을 쓴 전문가의 식견 때문이다. 자기 분야의 글을 쓰기 위해서 필자가 기울인 정성을 느낄 수 있다. 독자는 그냥 썩 흩고 지나친다 해도, 글을 쓰는 사람은 많은 시간을 번민했을 것이다. 전문가가 들인 공을 생각하면 한 달 내는 구독료가 참 싸게 느껴진다.
전자책은 편리하다. 책상에 앉아 구매하고 바로 읽을 수 있다. 진짜 빠른 속도로 작업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전자책을 구매한다. 편리하긴 하지만, 전자책은 건조하고 메마르다. 종이 냄새도 나지 않고 책을 잡는 질감도 없다. 그래서 시간 여유가 있으면 종이책을 찾아서 본다. 오래된 종이는 화학적 분해를 겪으면서 기분 좋은 향기를 내뿜는다. 묵은 책과 색 바랜 종이에서 나는 느낌과 향기가 좋다
다시 불 밝히는 작은 서점
아날로그가 주는 느림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종이책이다. 매일 활자 신문을 보고 활자 책을 자주 읽는다. 전자책의 편리함은 손때 묻는 종이의 감촉에는 미치지 못한다. 책장에 꽂힌 책을 보면 흐뭇하고, 색색의 표지가 주는 시각적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손 닿을 곳에 있는 그들이기에 수시로 꺼내 본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종이 없는 사무실을 만들려 했다. 사람들은 컴퓨터가 종이를 대신할 것이라 기대했다. 디지털 기술은 제일 먼저 종이를 공격했다. 그로부터 약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종이 없는 세상이 되었는가? 상당한 정보가 디지털 매체로 저장됐다. 손으로 전하던 사연을 이메일, 문자 메시지, PDF 파일이 대신했다. 디지털의 맹폭격 속에서도 꿋꿋하게 종이는 살아남았다.
종이는 아날로그 감성 중에서도 가장 긴 역사를 지녔다. 약 2,000년 전 종이가 발명되면서 인류는 기록의 시대를 열었다. 종이는 인류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종이는 지식을 기록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종이는 인간의 역사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종이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사연은 애틋하고 소중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종이는 디지털 기술의 공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디지털 매체는 집요하게 종이를 공격하고 위협했다. 그렇지만 종이는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SNS의 발달로 손 편지 쓸 일도 줄었다. 덩달아 종이 사용도 줄었다. 최근에는 스케치나 드로잉 같은 감성적인 종이 가치가 높아졌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서로 공존하기 시작했다.
신문과 잡지에서 종이는 자신의 위상을 되찾고 있다. 책 읽는 사람이 늘면서 내리막길을 걷던 서점도 다시 문을 열었다. 대형서점들이 문을 닫았지만, 작은 서점들이 다시 불을 밝혔다. 그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전자책 판매가 주춤한다. 종이책이 부활했다는 신호다. 종이에서는 깊은 산 속의 나무 냄새가 난다. 이런 아날로그 감성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