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인생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
'고민', '걱정', '스트레스'
마음이 편치 않은 단어들이다. 대학 졸업반 학생들이 SNS에서 많이 언급하는 마음의 상태라고 한다. 졸업하면 어떻게 될지 막연함과 불안함이 잔뜩 묻어난다.
'취업', '시험', '졸업작품', '대학원', '영어', '자격증'
'졸업'이라는 말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말들이다. 최근에는 '창업'이라는 말도 함께 언급된다. 대학 졸업반 학생들이 가지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여실히 드러난다. 무얼 해야 할지 아직 뚜렷하게 결정하지 못한 청춘들의 고뇌가 느껴진다.
어째 이리도 변한 게 없을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학 졸업을 앞둔 젊은이들은 한결같이 비슷한 고민에 휩싸인다. 20대는 인생의 황금기인 벨 에포크(Belle Époque)이다. 정작 이들은 앞날을 걱정하느라 빛나는 청춘을 만끽할 여유가 없다. 불안하고 막막한 앞날이 그들이 발목을 단단히 붙잡는다.
20대의 나도 그랬다.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일을 할지 도대체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청춘은 불안하고 막막했다. 고민하고 상심했다. 뭘 하고 살까? 남들은 저리도 잘 사는데 나만 뒤처질까 봐 불안감에 몸서리를 쳤다.
고막을 갉아먹고 기어코 구멍을 내 버린 만성중이염. 고막은 소리의 파동을 달팽이관으로 전달한다. 고막이 녹으면서 작은 소리의 파동이 없어졌다. 들리지 않는 고통은 끔찍했다. 사람의 입 모양을 유심히 쳐다봐도 제대로 수화를 배우지 않아 알 수 없다. 그저 들은 시늉을 하다 보니 엉뚱한 말이 튀어나온다. 점차 바보가 되어갔다.
그때 맞이한 대학 졸업반, 끔찍하고 두려웠다. 뭘 해 먹고살까? 생존은 내게 절박한 문제였다. 지금의 S그룹 최종 면접까지 갔지만, 구멍 난 고막이 사달을 냈다. 우문현답도 시원찮은데 동문서답을 했으니 빛의 속도로 떨어졌다. 눈앞이 캄캄하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마지막 승부수로 택한 것이 공부다.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길 말고는 답이 없던 시절이다.
다행히 책을 보고 읽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듣는 불편함은 강의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대충 반만 알아듣고 나머지 반은 눈치고 때려잡았다. 그리고 책을 읽고 해석하고 보충했다. 그래도 학교는 그게 통해서 좋았다. 막막한 앞길이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어 불안은 더해 갔다. 난청을 해결하지 않고 무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걱정만 앞섰다.
그때는 몰랐다. 삶이 어떤 그림을 그릴지 어찌 알겠는가. 지나고 보니 20대의 고뇌와 방황은 미래라는 한 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갈등과 번민은 내일을 위한 통과의례였다. 공부는 지금껏 나를 버틸 수 있게 한 원동력이다. 20대에는 도무지 어떻게 살지 상상할 수 없었다. 시간의 조각들이 미래와 어떻게 연결될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갭이어와 삶의 내비게이션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들은 제 길을 찾아갈 것이다. 숱한 번민의 날들은 내일의 밑거름이 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고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불안하고 고민이 되면 졸업을 유예하는 것도 방법이다. 시간을 벌어놓고 진로를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다. 100세 시대에 1~2년 늦는다고 뭐가 대수일까.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게 삶이라는 말도 있다.
졸업을 잠시 미루고, 여행과 봉사 혹은 인턴 등 새로운 활동을 해보는 것도 좋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앞으로의 진로를 제대로 설계하는 것이다. 시간과 시간 사이에 잠시 틈을 주는 갭 이어(gap year)가 필요하다. 이 말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년 정도 여행 같은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뜻한다. 대학 졸업반도 졸업을 유예하고 갭이어를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되는 사람도 있다. 당장 하루 벌어 살아가기 빠듯한 젊음도 있다. 그들의 귀에는 갭 이어가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설익은 말들이 그들을 더 힘들게 만들 수 있어 조심스럽다. 각자 형편에 맞게 삶의 내비게이션을 잘 세팅해 보자는 뜻이다.
당장 대책 없는 졸업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에 취업하기보다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급한 마음에 덜렁 취업해 놓고는 얼마 못 버티고 나올 바에는 준비를 단단히 하자. 몇 달 만에 직장을 관두고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도 많다. 현실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탓에 마음은 더 조급해진다.
삶의 숲에는 동서남북이 없기에 자칫하면 방향을 놓치고 엉뚱한 곳에서 헤맨다. 책을 보든, 선배를 만나든. 멘토를 찾아가든 그들의 경험을 듣고 배우자. 충분히 검토하고 조언을 듣고 내게 맞는 건지 견주어 보자. 그 이후에 결단해도 늦지 않다. 결심이 서면 최선을 다하자. 하기야 어떤 경우든 그들은 온 힘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그런 젊은이들의 앞날에 좋은 소식이 가득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