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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Sep 24. 2022

빛, 물감, 말의 덧칠

빛은 덧칠할수록 투명하다.   

사진 출처 : 해시넷


우리가 말하는 빛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빛에는 파장이 다른 여러 종류의 빛이 있다. 파장이 가장 짧은 감마선에서 파장이 가장 긴 극저주파까지 모두 빛이다. 그 중간에는 엑스선,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마이크로파, TV파, 라디오파가 있다. 이 하나하나가 빛이고, 이들은 의학에서부터 통신 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빛 가운데 400nm~700nm의 파장을 가진 가시광선만 우리 눈에 보인다.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파장의 영역이 여기까지다. 이 파장 안에 보라색의 파장부터 붉은색의 파장이 들어 있다. 각기 다른 파장은 고유의 색을 띤다. 가시광선이 입자와 같은 미세한 입자와 부딪히면 파장이 쪼개진다. 쪼개진 파장대의 빛은 우리가 보는 색깔을 뿌린다. 


가시광선을 더 잘게 쪼개면 더 미세한 색깔이 나온다. 사람은 백만 개의 색상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은 가시광선의 파장을 백만 개로 구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이한 경우 이 파장대의 색을 1억 개까지 구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은 가시광선을 1억 개의 각기 다른 파장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보는 모든 색의 파장은 400nm~700nm의 길이다. 이 파장의 빛이 가시광선이다. 빛의 색에다 빛의 색을 합하면 파장이 이어진다. 보라색에다 남색을 더하고, 파랑, 초록, 노랑, 주황, 빨강의 빛을 모두 더하면 400nm~700nm의 파장이 된다. 따라서 빛의 색은 계속 덧칠하고 합하면 원래의 투명한 빛으로 돌아간다.  


물감은 덧칠하면 어두워진다. 

물감의 역사는 기원전 25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에는 색을 띠는 천연 광물을 갈아서 색을 만들었다. 천연 광물의 가루를 물에 풀어 사용한 것이 물감이다. 알타미라 동굴이나 라스코 동굴의 벽화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의 역동적인 색깔도 이렇게 만들었다. 


'지오반니 아르놀피니와 그의 부인의 초상'(1434) - 얀 반 에이크


벨기에 플랑드르 출신의 화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5-1441)는 최초로 유화 물감을 개발한 화가다. 그의 붓끝에서 유화 물감이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다. 그가 그린 '지오반니 아르놀피니와 그의 부인의 초상'이라는 그림에서 특히 초록 유화 물감이 더 없는 아름다움을 뽐낸다.           


지금은 인공적으로 만든 물감을 사용한다. 서양화는 그림의 유형에 따라 수채화 물감, 유화 물감, 아크릴 물감으로 나뉜다. 동양화에서는 먹, 석채 안료, 분채 안료, 접시 물감, 막대 물감, 조각 물감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색상이라도 만들어 자연의 색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 


수채화는 수성 물감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초보자에서 숙련자까지 널리 애용하는 그림의 종류이다. 물감 사용이 비교적 쉽고 섞는 물의 양에 따라 다양한 색감을 낼 수 있다. 또 여러 종류의 물감을 섞어 다채로운 색깔을 낼 수 있다. 물감 번지기 기법 등 물을 적절히 사용하면 의외의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수채화는 맑음이 생명이다. 물에 흠뻑 젖은 물감이 수채화 종이에 잘 스며들게 칠해야 한다. 색칠이 간결하고 물을 많이 사용할수록 맑고 깨끗한 그림을 본다. 물감을 자주 덧칠하면 그림이 탁해진다. 빛의 색은 모두 덧칠하면 투명하지만, 물감의 색은 모두 덧칠하면 검은색이 된다.  


말도 덧칠하면 탁해진다.      

말도 덧칠이 많아지면 본질이 흐려지고 뜻이 탁해진다. 잦은 말끝에 실수가 나오고 불필요한 사족이 오해를 낳는다. 말이 길어지면 그 뜻을 다르게 해석할 소지가 많아진다. 구구한 억측이 난무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말이 많아서이다. 말이 길어서 손해 볼 일보다 말이 짧아서 손해 볼 일이 훨씬 적다.    

  

노자의 《도덕경 5장》에는 ‘말이 많으면 곤란한 일에 봉착하니 속으로 담아두는 것보다 못하다’(多言數窮 不如守中)고 경고한다. 말이란 일단 입 밖으로 나가게 되면 그것은 듣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처한 환경에 따라 달리 해석한다. 그러니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바에는 말을 삼가는 게 좋다.     


《잠언 10장 19절》에서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렵다. 반면에, 자신의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롭다’고 한다. 역시 말이 많음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솔로몬의 지혜에서 이렇게 충고할 정도라면 말을 줄여야겠다. 


말이 맑고 투명해지려면 짧고 간결해야 한다. 듣는 이가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해석의 여지가 많거나 행간의 의미를 새기는 것은 고수들의 대화법이다. 은유와 비유가 가득한 말을 보통 사람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보다 투 레스 토커(too less talker)로 사는 건 어떨까. 말이 빠르고 많아서 좋은 점도 있다. 말 잘하는 사람이 말 못 하는 사람보다 더 존중받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실수 없는 다변이 힘들다면 오히려 어눌한 말솜씨로 사는 것도 나쁘진 않다.     


물감은 덧칠하면 지우기 힘들고, 말은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다. 빛의 색깔 말고는 덧칠해서 원래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연 그대로 두지 않고 인간이 손댄 것은 무엇이든 그렇다. 그러니 가능하면 말은 적게 할수록 좋고, 수채화의 물감은 적게 쓸수록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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