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
"어, 둘 다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인데 색깔이 다르네."
"맞아. 왼쪽은 밝은 노란색을 주로 칠했고, 오른쪽은 짙은 파란색이네"
두 그림은 대상과 표현 기법, 붓질은 같은데 색깔이 다르다. 왼쪽은 구글의 AI 딥 드림(Deep Dream)이 그린 그림이고, 오른쪽이 고흐의 그림이다. AI가 같은 색깔을 사용했다면 두 그림은 같다고 해도 좋을 만큼 비슷하다. 전문가조차 구분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AI가 예술을 한다고? 감정, 느낌, 사유, 생각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이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예술인데, 그걸 기계가 해낸다고? 예술가는 자신의 감정과 창작 열정을 작품에 담아 타인에게 감동을 준다. 감정이 없는 AI가 어찌 예술을 한다는 말인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2015년 독일 튀빙겐 대학 이론물리학연구소와 통합뇌과학연구센터의 레온 게티(Leon A. Gatys) 등이 ‘예술적 스타일의 신경 알고리즘’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AI가 풍경 사진을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뭉크의 ‘절규’ 스타일로 변환한 그림을 실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이 정도로 완벽하게 유명 화가의 그림을 모방할 줄을 생각하지 못했다.
AI 화가는 고흐뿐만 아니라 어떤 화가의 그림도 완벽하게 모방한다. 거기다가 새로운 소재를 추가하거나 작품을 다른 스타일로 변형하기도 한다. AI가 화풍과 기법에서는 인간 화가를 완벽하게 따라잡았다. AI가 그린 그림의 붓 터치나 색감이 훌륭하다는 것까지는 인정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AI의 그림을 보고 감동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좋아한다. 소용돌이치는 구름, 짙은 코발트블루의 하늘, 노란색의 별무리, 아득히 멀어져 보이는 마을의 고독한 분위기가 가슴에 닿는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우리가 고흐의 별밤을 사랑하는 까닭은 그의 외로움과 고독을 알기 때문이다. 지독히도 가난했고, 지독히도 불행했던 그의 고단한 삶을 모르고선 제대로 감동할 수 없다.
고흐의 외로움을 사랑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후기 인상주의 화가다. 그에게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빈센트’라는 형이 있었다. 고흐를 임신한 그의 어머니는 아기를 잃은 슬픔으로 깊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의 부모는 일 년 후에 태어난 고흐를 죽은 형의 이름인 ‘빈센트’로 불렀다. 고흐는 매년 자신의 생일에 형의 무덤에 가서 슬퍼하는 어머니를 지켜보았다. 이때의 기억은 고흐의 무의식 세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고흐는 몇 번의 프러포즈를 거절당하고 제대로 된 사랑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구필 화방 사원에서부터 광산촌의 전도사까지 하는 일마다 실패했다. 불꽃 같은 열정으로 10년 동안 약 2,000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정작 팔린 것은 단 한 점의 그림뿐이다. 모든 것을 의지한 동생 테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 했으나 늘 궁핍했다. 슬픔과 우울함으로 망가진 영혼을 붙잡고 그림을 그렸다. 끝내 좌절과 우울을 이기지 못하고 37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흐는 한때 폴 고갱과 한집에서 살았다. 시골풍의 서정적인 고흐와 도시풍의 냉정한 고갱은 성격이 맞지 않았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은 격렬하게 싸웠다. 고갱이 떠나려 하자 상실감을 견디지 못한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귀를 잘랐다. 끝내 고갱이 떠나자 고흐는 스스로 생레미(Saint-Rémy)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자신의 유일한 희망인 그림을 그리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불멸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은 생레미 병원에서 탄생했다. 생레미의 창문으로 올려본 밤하늘이 소용돌이쳤다. 그의 영혼도 심하게 회오리쳤다. 정신이 너덜너덜해진 극한의 고통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나왔다. 생전에 빛을 못 보고 죽어서야 이름을 날리는 아름답고도 슬픈 화가다.
인공지능이 제아무리 빼어난 솜씨를 자랑해도.
우리는 그림을 감상하기 전에 작가의 생애와 그가 살던 시대를 알아본다.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작품의 배경이 뭔지 공부한다. 작가와 시대를 알면 그림에 대한 공감대가 깊어진다. 알고 보면 멋진 취미 생활이지만, 모르고 보면 노동이 되는 것이 그림 감상이다.
인공지능이 무슨 삶의 스토리를 가졌을까. 알고리즘과 컴퓨터 칩이 결합한 AI의 삶에는 스토리가 없다. 그런 AI가 아무리 빼어난 그림을 그려도 그저 기계가 그린 그림에 불과하다. 고통과 아픔이 담기지 않은 AI의 그림에 감정을 이입하기 힘들다.
그림 자체만으로 보면 인공지능은 앞으로 놀라운 독창성과 예술성을 보일 것이다. 작가 누군지 모르고 그림만 보면 잘 그렸다고 감탄할 것이다. 그러나 외로움과 고독과는 거리가 멀고, 삶의 질곡과 파란을 경험하지 못한 AI의 그림 앞에서 눈물 흘릴 사람은 없다.
인간은 감성을 익히고 눈물을 흘리며 성장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애달프지 않은 삶은 없다. 인간은 그 아픔까지 보듬고 살기에 서로 감정을 이입하고 감동한다. 우리 가슴은 사랑, 우정, 고통, 슬픔을 잘 버무려 지혜를 발효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우리에겐 감정과 지혜가 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생각하는 AI가 나온다 해도 그가 배우고 학습할 데이터는 인간의 사랑과 감정들이다. 인간이 시를 읽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산을 오르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은 지성과 감성을 벼리기 위함이다. 인간이 이룩한 모든 것들을 AI가 배우고 학습할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위하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만 가득하면 AI도 미움이 없는 사랑만 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