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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04. 2022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사람도 고쳐 쓰는 거야.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하고 상우(유지태)가 묻는다.     

“헤어져!!”라고 은수(이영애)가 단호하게 말한다.      


영화 ‘봄날이 간다(2001)’에서 주인공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의 이별 장면이다. 어느 겨울 상우가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를 만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은수는 상우와 녹음 여행을 떠난다. 자연스레 가까워진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됐다.      

     

너무 빨리, 너무 깊이 빠진 상우의 사랑이 이른 결별을 불러왔다. 빨리 다는 화로가 빨리 식는다. 사랑이 익숙해지고 이제 막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벌써 이별이라니? 변치 않을 거라 믿은 사랑이 봄날과 함께 간다니 상우는 믿을 수 없다. 사랑이 어떻게 변할까?


문화인류학자 헬렌 피셔(Helen Fisher)는 저서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에서 사랑은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화학물질의 조화라고 말한다. 호감을 느낄 때는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젠이 활발하게 솟는다. 사랑에 빠질 때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용솟음친다.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은 자연스레 스킨십을 유도한다. 이렇게 사랑이 이루어진다.


피셔 박사의 말을 빌리면, 시작에서 절정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묘약이 유지되는 기간은 2년이고 길어야 3~4년이다. 불멸의 사랑, 영원한 사랑은 다 어디로 갔는가. 상대를 생각하는 뜨거운 마음 고작 2년 만에 식다니 믿기지 않는다. 입맛이 쓰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데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흔히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완전히 옳은 말도 아니다. 당신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해된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변하려는 의지도 생긴다.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알아채고 인정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니 사람은 변하지 않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사람을 고쳐 쓸 수 있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시냅스의 변화에 달렸다. 시냅스의 발달 과정을 볼 때, 3~6세 사이 어린이의 시냅스 개수가 무려 1,000조 개나 된다. 성인의 시냅스 숫자 150조 개와 비교하면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간다. 이때 아이는 호기심이 많아지고 예상 밖의 놀라운 질문을 한다. 말도 얼마나 잘하는지 흠칫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부모들은 누구나 우리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진다. 


시냅스가 너무 많으면 머리가 터질 수 있다. 언제까지 1,000조 개가 넘는 시냅스를 주렁주롱 달고 살 수는 없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시냅스는 가지치기하고 숫자를 줄인다.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 과일이 튼실해지고 당도가 높아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인생을 살아갈 때 꼭 필요한 자기 가치관과 세계관을 남기고 없앤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사람의 생각은 점차 굳어진다. 한번 굳어진 생각을 바꾸는 것은 무척 힘들다.


사람이 변하려면 먼저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생각이 바뀌려면 뇌 신경회로인 뇌 신경세포(뉴런)와 시냅스가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를 일으킨다. 사람이 바뀌었다는 것의 본질은 뇌 신경회로와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를 말한다. 사랑이 변하는 것도 사랑의 신경전달물질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는 뇌를 얼마든지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토론토 대학교 정신의학과 연구 교수인 노먼 도이지(Norman Doidge)의 저서『기적을 부르는 뇌』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변화를 해내는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의 능력을 강조한다. 양육 환경이나 학습 경험이 뇌의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키는 것이 뇌 가소성이다. 학습하면 아는 것이 많아지고 지식이 풍부해진다. 그렇게 되면 뇌 자체의 구조가 변하고 뇌의 학습 용량이 증가한다. 


고속도로망과 선착장이 발달하면 국가의 지도가 바뀐다.

독일의 고속도로망(위키 백과)


무제한의 속도로 질주하는 자동차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Autobahn)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우토반은 독일 고속도로망의 중심이다. 독일의 여러 도시를 연결한 도로망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아우토반에는 모든 제한을 해제하는 구간이 있다. 속도 제한, 추월 금지 제한  모든 제한이 해제된다. 특정 구간은 거의 일직선이라 200km/h 이상으로 주행하는 차가 많다. 아우토반을 이용해 사람과 물자르게 이동했다. 아우토반은 독일의 경제 성장에 이바지했고, 조밀한 고속도로망은 독일의 국가 지도를 바꿨다.  


뉴런

          

우리 머릿속 뉴런은 고속도로와 닮았다. 뉴런의 가지 돌기와 축삭 말단의 가짓수는 고속도로의 차선과 같다. 이들의 가짓수가 많은 것은 고속도로의 차선이 많다는 뜻이다. 신경세포의 가짓수가 많아지면 정보 전달 속도가 빨라지고 정보의 양도 많아진다. 뉴런이 발달하면 정보는 뉴런이라는 도로를 무제한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이것을 우리는 머리가 좋다고 말한다. 뉴런의 가지가 많아지면 신경회로가 바뀌고 사람은 변한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 강이 흐르면 도로가 끊어진다. 자동차로는 강을 건널 수 없다. 강나루의 이별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이제부터는 차를 배에 실어 날라야 한다. 강나루에 배를 대는 접안 시설이 많고 큰 배를 댈 수 있으면 좋다. 한꺼번에 많은 차를 실어 나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많은 자동차와 사람들이 강을 건넌다.  


뉴런과 뉴런이 만나는 시냅스에는 미세한 틈이 있다. 말하자면, 그 틈이 우리 머릿속의 강이다. 아무리 좁아도 강은 강이다. 전기 신호는 시냅스의 강을 건널 수 없다. 시냅스가 발달하면 선착장이 발달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되면 많은 정보들이 빠르게 시냅스의 강을 건너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이처럼 시냅스 강화는 뇌 신경회로를 바꾸고, 머리를 좋게 한다. 

  

어떻게 하면 뇌 신경회로를 바꿀까?

겨우내 움츠렸던 나뭇가지에도 새 생명이 꿈틀거린다. 영양분을 잘 공급받은 나무줄기에서 새 가지가 솟아난다.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가지가 많아지면 잎이 더 많이 달리고, 과일도 더 많이 열린다. 나무는 수확이 많아지는 쪽으로 변한다.


사람의 머리도 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다. 활발한 자극은 뉴런과 시냅스를 강화한다. 자극이 반복되면 전기 신호가 많이 흐른다. 전기 신호는 뇌 신경세포의 영양분이다. 영양분을 많이 받은 뇌 신경세포에서 새로운 가지들이 솟아난다. 머릿속의 정보를 내보내고 받아들이는 통로도 많아진다. 이러한 현상을 뇌 신경회로의 변화라고 말한다.


뇌 신경세포도 자극이 없으면 뉴런과 뉴런의 연결이 끊어진다. 전기가 흐르지 않고,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한 가지들이 떨어져 나간다. 시냅스도 사라지고 뇌 신경세포는 죽는다. 이렇게 되면 남아 있는 신경회로만 가동돼, 정보가 고갈된다. 사람은 점차 고집불통이 되고, 고쳐 쓸 수 없게 된다.


영국 카디프대학교 교수인 딘 버넷(Dean Burnett)의 말을 들어보자. 그의 말에 따르면, 성격과 마음은 뇌의 구조에 반영되었다는 생물학적 근거가 있다. 하지만 뇌는 유연하고 경험에 따라 변한다. 우리의 뇌 구조인 신경회로는 성격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의지가 뇌 신경회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뇌 신경회로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마음의 문제가 먼저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시작은 마음먹기다. 변화하려는 결심과 노력은 신경회로를 변화시킨다. 좋은 변화의 선순환이 일어난다.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해내려면 본인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말해봤자 소용없다. 뇌 신경회로를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자기 결심에 달렸다. 고쳐 쓴다면 고치는 주체가 자신이어야 한다.


우리의 두뇌는 자극을 먹고 자란다. 무언가를 배우거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과 같은 지적 자극을 말한다. 다양한 자극은 뇌 신경회로를 바꾼다. 이 중에서도 읽기나 쓰기 같은 지적 활동은 뇌 신경세포를 활성화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공부는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건 아니건 모두에게 중요하다. 뇌를 활성화하기 위한 공부는 나이와 상관없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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