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경제학 15】
어머님, 따님이 고3이라고요? 의대반 가능합니다!!
이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 하느냐고 타박하는 것도 당연하다. 며칠 전 초등학교 6학년도 의대반에 늦었다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겨우 이틀 지나 말을 확 바꿨으니, 앞뒤가 맞지 않다고 말할 만하다. 이게 사실이라면 내신 관리를 잘한 고3 학생과 학부모들의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소식이다.
얼마 전 정부에서 수능의 킬러문항(정말 풀기 어려운 문항)을 없앤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을 들은 대학 1학년들이 들썩인다. 작년 수능에서 킬러 문항에 걸려 고생한 학생들은 쾌재를 부른다. 그것만 빼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은 학생들은 반수를 결심한다. 벌써 발 빠른 N수생들이 입시학원에 몰리고 있다고 한다. 수능의 킬러 문항에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조차 의대 진학의 의지를 불태운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오늘 아침 이런 뉴스를 들으면서 마음이 씁쓸해진다. 세상에는 꼭 의대, 치대, 한의대만 있는 건 아니다. 꼭 의대를 나오지 않아도 먹고 못 사는 것도 아니다. 그것 말고도 얼마든지 다양한 학과가 존재한다. 인문학, 물리학, 화학, 공학 등 문명을 발전시키고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전공도 많다. 이들 전공을 선택해도 잘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다.
사람들이 의치한을 선호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현실이 너무 팍팍하고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제 앞가림하기 쉽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어느 전공을 선택하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잡을 수 있다면 걱정거리가 적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한 현실은 이와 다르다는 것을 알려준다.
높은 분들은 말한다. 의대 가지 않고도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한다. 제발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 그분들의 선한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입시 제도를 이리저리 뜯어고쳐도 늘 현실은 저만치 앞서 달아난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제아무리 많이 연구해도 세상은 그것을 이미 꿰뚫고 있다. 수능의 킬러 문항을 없앤다는 소식에 벌써 반수생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말 다 했다.
공교육은 어떻게 하고?
"사교육을 뿌리 뽑으세요!!!"
지엄한 분의 서슬 퍼런 명령이 내려진 적이 한두 번도 아니다. 사교육과의 전쟁이라 부를 정도로 정부의 모든 부서가 동원돼 수십 년째 전쟁을 치르고 있다. 늘 그렇듯이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정책은 흐지부지된다. 학교는 머리 아프고 공교육은 만신창이가 된다. 덕분에 강한 맷집으로 살아남은 사교육만 잔뜩 키워놓는다.
한차례 태풍이 지나면 학원은 물 만난 고기 마냥 활개 친다.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심할수록 위험수당만 잔뜩 올린다. 새로운 대책이 한번 학원가를 휩쓸고 지나가면 학원비는 다락같이 오른다. 차라리 진득하게 한 가지 정책을 밀고 왔다면 지금보다 나아졌을 것이다. 높은 어르신의 입맛대로 정책을 흔들면 도대체 공교육은 누가 지킬 것인가.
우리의 본능은 이성보다 빠르다. 당국이 만드는 정책이 아무리 이성적이라고 해도 감각적으로 허점을 파고드는 사교육을 이기기 쉽지 않다. 성급하고 허술한 대책은 사교육비만 인상하는 엉뚱한 부작용만 일으킨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강력한 사교육 대책을 시행했는지 세어 보자. 그 긴 시간 동안 왜 공교육을 살리지 못했을까. 그것이 바로 정부의 무능이 아닐까.
정말 정책이 성공하려면 수험생을 가진 부모 마음으로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내 자식이 수험생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을 두고 대책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높은 분의 자식이 의대 갈 실력이 되지만, 굳이 의대 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식이 원하는 학과에 진학해도 장래 걱정을 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그것도 부모의 재력에 기대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말이다.
우리 사회의 킬러 문항을 먼저 없애야 한다.
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MZ 세대를 본다면 안쓰럽다. 수능 한번 잘 못 치면 인생이 우울해진다. 젊은 친구들이 왜 '이생망'이라고 외치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런 경쟁체제를 그대로 두고 입시 제도를 아무리 뜯어고쳐도 소용없다. 학벌이 평생을 좌우하고, 삶의 질을 뒤흔드는 마당에 소신 같은 한가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
순위가 매겨진 대학이 자식의 미래를 결정하는 현실에서 부모와 수험생의 선택은 간단하다. 의대에 가든가 아니면 높은 순위의 대학에 가야 한다. 이런 판국에 내 자식이 의대반에 들어가기 늦었다는 학원 원장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초등 6학년이 의대반에 늦었다는 말은 학원의 영악한 공포 마케팅일 수 있다. 자녀 문제라면 겁을 줄수록 시장은 넓어지고 수익이 높아지는 법이다.
우리의 빠른 본능과 더딘 이성의 충돌은 합리적 선택을 방해한다는 것을 행동경제학이 밝혔다. 정부 정책은 더딘 이성에 호소하고, 치열한 현실의 대학 진학은 빠른 본능을 자극한다. 밤잠 자지 않고 노력해 의치한에 진학할 수 있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러니 진짜 중요한 것은 의치한을 가지 않아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의치한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과 부모의 마음을 비난만 할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다른 전공을 외면하고 오직 이들 전공에만 올인하는 것은 안타깝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하다. 높은 분들은 수능의 킬러 문항을 색출하지 말고, 아이들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킬러 문항을 먼저 없애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아이들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한결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