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치매 14】
아버지의 가스라이팅
"너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니?"
이크 큰일 났어. 엄마의 목소리에 화가 잔뜩 실렸어. 이럴 때 그냥 찍소리 말고 고개 숙이자. 뒤이은 엄마의 가시 돋친 한 마디가 마음에 비수처럼 꽂힌다.
"너처럼 공부 안 하고 놀면 나중에 거지가 될 거야!!"
뭐라고 내가 커서 거지가 된다고? 입을 삐죽 내밀고 불만 섞인 얼굴을 해. 기분이 나빠져 그나마 남았던 공부할 마음이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아이는 화난 얼굴로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해서 모자(母子)의 전투도 평화를 위장한 채 끝난다.
‘엄마, 아빠가 널 사랑해서 이러는 거야’ ‘부모 말 잘 들어, 너의 행복을 위해서야!’ ‘너를 사랑하고 아껴서 하는 말이야’ ‘엄마는 널 위해 사는 거 알지?’ ‘너는 아직 어려, 아직은 아니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린 시절 이런 이야기를 한두 번쯤 들어봤을 거야. 대개 자녀가 어느 정도 자라면 부모는 아이들을 믿고 더는 간섭하지 않아. 그런데 청소년기까지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의 머릿속에 헝클어져. 아이의 뇌 신경세포와 시냅스가 연결 상태가 엉망으로 될 수 있어.
가스라이팅( Gas-lighting)이라는 말 들어봤지? 최근 크게 사회적 문제가 되는 말이야.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자신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게 만드는 현상이야.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만든 사람한테 의지하고, 그 사람만 말만 따르는 거야. 친한 사이에서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지.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가스라이팅이 일어나. 절대적으로 힘이 센 부모가 힘이 없는 자녀에게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부모의 뜻을 강요하는 경우 말이야. 아이는 부모가 하는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없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부모의 가스라이팅은 머릿속을 헝클어뜨리고, 아이의 평생을 우울하게 만들 수 있어.
봐봐 착해도 너무 착한 후배는 젊은 나이에 치매에 걸렸잖아. 그의 머릿속 뇌 신경회로가 일찍 끊기는 불행을 겪고 있어. 후배가 이 지경이 된 것도 그런 연유가 있다고 생각해. 아버지의 위압적인 태도가 후배의 시냅스를 주눅 들게 했던 거야. 사랑의 이름으로 자행한 폭력이요 치명적인 가스라이팅이야. 후배의 머릿속 시냅스가 정상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없었던 거야.
우리의 뇌 신경망은 기억을 저장해. 부모가 무심코 내뱉는 말을 아직 성숙하지 않은 아이의 시냅스는 그걸 진실로 기록해. 부모의 잦은 비난과 질책이 여린 머릿속을 헤집고 난도질한다고 생각해 봐. 끔찍하지 않니? 부모는 아이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정작 아이의 머릿속은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지는 거야.
문제는 시냅스의 선택에 달렸다.
뉴런은 정보 전달 통로이면서 뇌 신경세포의 생물학적 몸통이지. 뉴런과 뉴런이 만나는 지점이 시냅스야. 시냅스는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뇌 신경회로야. 학습과 기억 등 인지적 기능이 바로 이 시냅스에서 일어나. 그러니 시냅스가 망가지면 그건 치명적이야.
뉴런의 숫자는 고정됐지만, 시냅스의 수는 증가하거나 줄어들어. 공부나 운동을 열심히 하면 실력이 느는 걸 알 수 있어. 이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시냅스의 수가 늘어난 거야. 물론 시냅스의 정보 통로도 많아지지. 뉴런의 기능이 강화된다는 것은 시냅스가 활성화한다는 뜻이야. 그만큼 시냅스는 사람의 인지 능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지.
그림이 뭐로 보여? 마치 나뭇가지로 보이지 않니? 나무 몸통에서 가지사 솟아 나온 것처럼 보여. 이건 시냅스 형태를 단순화한 그림이야. 중간에 있는 시냅스가 정상이야. 8개의 크고 작은 가지가 달려있어. 왼쪽은 기능이 강화된 시냅스야. 가지가 무려 13개나 되지. 그만큼 영양분을 많이 받아 잘 자랐다는 뜻이자. 오른쪽은 가지사 세 개뿐인 시냅스야. 이런 시냅스는 조만간 사라질 거야.
이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는 시냅스는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는 거야. 관리를 잘하면 새로운 가지가 솟아난다는 뜻도 되지. 그 차이가 어마하게 중요해. 시냅스의 숫자가 많을수록 신경망의 밀집도는 높아져. 그만큼 정보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라지는 거지. 이 말은 머리가 좋다는 말이야. 시냅스의 숫자가 많고, 잘 자리 잡은 아이는 똑똑한 아이로 자라.
사과나무의 작은 가지들은 해마다 왕성하게 솟아 나. 잔가지들이 너무 많아지면 영양분을 서로 나눠 가져야 해. 사과는 열리겠지만, 사과 씨알이 작고 당도도 떨어져. 맛도 없고 크기가 작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리면 상품성이 나빠지겠지. 과수원에서 크고 맛있는 사과를 수확하기 위해 가지들을 적당히 솎아내지. 이걸 사과나무의 가지치기를 한다고 말해.
사람의 머릿속 시냅스도 가지치기 원리가 적용돼. 시냅스의 숫자가 많으면 좋긴 하지만, 너무 많으면 정보 전달의 효율성이 떨어져. 많은 시냅스가 가치 없는 정보까지 분석하려 들면 에너지 손실도 커지지. 그러다 보면 정작 중요한 정보에 몰입해야 할 에너지가 모자라는 일이 벌어져. 그래서 불필요한 시냅스를 솎아낼 필요가 있지.
우리 머릿속의 시냅스 가지치기는 언제 일어날까? 또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까? 이걸 잘 알아야 해. 사과나무 가지치기를 할 때,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가지나 자르면 안 돼. 실한 사과가 달릴 가치를 쳐내면 사과 농사는 엉망이 되는 거야. 하물며 아이의 머릿속 가지치기를 잘못하면 아이의 장래를 망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