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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반 전쟁'과 투키디데스의 함정

【별별 경제학 22】

by Henry


플랫폼 기업의 충돌과 투키디데스의 함정

CJ와 쿠팡 사이에 '햇반 전쟁'이 터졌어. CJ는 자기 먹거리 영역을 침범하는 쿠팡을 불편하게 생각해. 더 깊이 들어오기 전에 쿠팡의 싹을 자르려고 하지. 전쟁은 늘 명분과 대의를 강조하지만, 사실은 경제적 패권을 둘러싼 싸움이지. 과거에는 땅을 더 많이 차지하는 자가 부를 더 많이 축적했지. 현대의 기업도 시장(market)을 많이 차지해야 기업의 부가 증가해. 역사는 외형만 바뀌지, 본질은 변하지 않고 그저 반복할 뿐이야.


기원전 431년에서 404년까지 고대 그리스에서 아테네 주도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 주도의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에 전쟁이 터졌어. 에게해와 지중해의 코발트색 바다를 차지하기 위한 한판 대결이라 할 수 있어. 이 전쟁은 기존의 강자인 스파르타의 동맹이 신흥 세력인 아테네 동맹을 제압하면서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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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Thucydides, 약 460년 BC ~ 400년 BC)는 스파르타(기존의 강대국)가 아테네(상승하는 국력을 가진 국가)의 성장을 두려워해 전쟁이 발발했다고 분석했어. 기존 강자와 신흥 강자 사이의 다툼을 피할 수 없다고 해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불러.


기술이 진보하면 기득권을 가진 강자와 신흥 강자 사이의 충돌은 피할 수 없어. 역사는 늘 그렇게 부침을 거듭했지. 어쩌면 양쯔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 할 수 있어. 영원한 제국은 없고 불멸한 왕국은 없어. 동로마제국의 천 년 왕국도 무너졌고, 중세 천 년도 새로운 질서에 패권을 넘겼지. 서양 역사만 그런 게 아니고 세계 역사가 그래.


인터넷 기술은 경제의 마디마디를 쪼개고 분철했어. 그렇게 나뉘진 경제 마디는 그 속에서 또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었어. 인간의 탄생, 성장, 노화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전 과정이 각각 경제 생태계가 된 거야. 돈이 된다면 어떤 것도 상품으로 만들어 팔게 되었어. 이혼과 출산, 심지어 고독과 외로움까지 상품화했어. 데이터 앱 시장의 확장, 반려동물 경제의 활성화, 게임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은 외로움과 고독의 상품들이야.


여름휴가를 맞이해 사람들은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 그들은 KTX나 SRT를 이용하거나 고속버스를 이용하지. 전국 어느 곳이든 버스 터미널의 플랫폼을 통해 떠날 수 있어. 고속버스 터미널 회사는 터미널을 전국의 도시로 가는 플랫폼을 설치하지. 고속버스가 들어오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버스에 올라타지. 고속버스 터미널을 운영하는 회사는 플랫폼을 설치하고 관리해 주고 돈을 버는 거야.


인터넷 기술이 가져온 또 하나의 혁명적 변화는 온라인 플랫폼 시장을 만든 거지. 경제의 모든 마디를 분철하고, 그 하나하나의 마디에 시장이 만들어졌어. 눈치 빠른 사람들이 새로운 시장에 플랫폼을 설치했어. 플랫폼 기업은 다수의 생산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기술을 이용해 돈을 버는 거야.


플랫폼 기업은 자신들이 직접 상품을 만들지 않아. 공급자를 끌어모아 자기 집 마당에서 물건을 팔게 하는 거지. 물건 파는 매대를 설치하고, 관리해 주는 거야. 팔다 남은 상품을 창고에 보관해 주지. 이것을 온라인으로 끌어들인 것이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야. 먼저 온라인 장터나 중개소를 차린 업자가 떼돈을 벌게 되어 있는 구조가 플랫폼 시장의 특징이야. 아마존, 쿠팡, 메타, 배민 등은 모두 네트워크 기술을 활용한 플랫폼 기업들이야.


햇반 전쟁

CJ와 쿠팡 사이에 햇반 전쟁이 벌어졌어. 언뜻 보기에는 햇반 납품 단가를 둘러싼 다툼으로 보이지. CJ제일제당은 쿠팡이 원하는 단가를 맞추지 못하자 일방적으로 발주를 중단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대형 유통사인 쿠팡의 갑질이 있었다는 거야. 쿠팡도 당연히 할 말이 있겠지. CJ가 여러 차례 납품가를 올리면서도 발주 물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았다며 불만을 토로했어.


햇반 전쟁은 날이 갈수록 싸움 규모 커졌어. 쿠팡은 CJ제일제당의 햇반과 비비고 만두 등 주요 상품에 대한 발주를 중단했어. 그러자 CJ제일제당도 쿠팡에서 철수하고 대신 네이버와 신세계를 새 유통처로 확보했어. 그 후 상황은 묘하게 진행하고 있어. 쿠팡은 CJ그룹의 먹거리가 빠진 자리를 중소기업 제품으로 채웠어. 덕분에 중소기업은 햇반 매출이 급증하는 바람에 입이 귀에 걸렸어.


자, 여기서 짚어 보자. 쿠팡과 CJ제일제당 사이의 다툼이 진짜 햇반 납품 단가 싸움일까?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그 이면을 따져보면 상황이 뜻밖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쿠팡의 상품의 종류는 다양하고 많아. 온라인 유통 기업의 특성상 가능하면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려 하지. 그러다 보니 CJ그룹 핵심 먹거리 대부분이 쿠팡의 주력 상품으로 등장한 거야. CJ그룹은 이대로 쿠팡에 밀리다간 그룹의 먹거리 사업 전체가 결딴나겠다고 판단한 거야.


쿠팡은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야 할 형편이야. 이커머스 시장에서 지배적 사업자가 되려면 시장 점유율이 30%가 넘어야 해. 쿠팡의 현재 시장지배력은 25% 조금 못 미치는 걸로 알려졌어. 아마존이 미국 이커머스 시장 지배력이 60%를 넘는 것을 생각하면 쿠팡의 속이 얼마나 타들어갈까. 그러니 쿠팡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신규 고객을 확보할 필요가 있지. 그래서 쿠팡은 미디어 사업으로 쿠팡플레이를 시작했고, 로켓그로스(Rocket Growth)라는 물류시스템을 키우고 있어.


쿠팡이 키우려 하는 사업이 묘하게도 CJ 그룹의 주력 사업과 충돌해. 쿠팡이 굳이 CJ를 타깃으로 한 건 아닐 거야. 꼭 적을 짓밟아야 하는 처절한 복수극이 아니라는 뜻이지. 이들이 충돌하는 영역이 플랫폼 기업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사업이야. 여기서 승리하면 경제학이 좋아하는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어. 이야기가 길어서 개별 전장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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