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경제학 21】
대학 간판이 능력이다.
능력만 있으면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얼핏 듣기에는 꽤 달콤하고 정의로운 말이야. 이 말의 이면을 뜯어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우리 사회의 능력은 도대체 무얼 말하는가. 그렇지, 공부야. 공부 잘해서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걸 능력이라 말해. 그런데 명문대학 진학하는 게 과연 개인의 진정한 능력일까. 그게 온전히 능력만으로 될까?
언제부터인가 능력 제일주의가 판을 치고 있어. 사회적 성공의 잣대는 개인의 능력이라고 말해. 대학 진학도, 성공도 오롯이 개인의 능력으로 돌려. 대학 진학 문제만 해도 그래. 가난 집안에 태어난 아이들이 명문대학 진학하기는 쉽지 않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서울 강남의 아이들을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까. 그것을 개인 능력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잖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좋은 조건에서 출발하지. 부모의 도움으로 조기 교육을 받고, 좋은 스펙을 쌓지. 일찍부터 의대반에 들어가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어. 이들은 저만치 앞서서 출발하고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명문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만으로 능력자로 대우받는 세상이야. 이런 세상에서는 부자 부모를 만난 것 자체가 능력이라고 강변하지.
대학 서열 따라 월급이 다르다고 하네. SKY대 나오면 하위 그룹 대학 출신자보다 최대 50%까지 월급을 더 받는다고 해. 설마 했던 일이 사실로 일어나고 있어. 좋은 대학을 졸업한 것과 직장의 대우가 일치한다고 봐야겠지.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좋은 대학 가야 사람대접받는다는 생각이 안 들겠어? 이래저래 수험생은 강박관념에 시달려.
고장 난 경쟁 시스템
능력주의는 자본주의의 표상이야. 공정한 경쟁을 통한 능력의 실현은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가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워. 공정한 경쟁을 통한 능력의 실현은 말장난이 아닐까 싶어. 처음부터 출발선이 다른데 무슨 공정한 경쟁이 될까. 시시콜콜 어깃장을 놓는 못난 심보다 아닌데 자꾸 까칠한 생각이 들어.
상품의 질이 같아야 경쟁을 통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출 수 있어. 상품이 동질적이 아니라면 경쟁적 시장이 아니야. 만족도가 높은 상품으로 수요가 쏠리게 되지. 좋은 상품을 서로 갖겠다고 피 터지게 싸우지. 웃돈을 주고서라도 기어코 손에 넣는 사람이 생기는 법이야. 시장경제 논리 운운해 봤자 '빈익빈 부익부' 현상만 심화할 뿐이야.
대학이 서열화된 지는 오래됐어. 사람들이 선호하는 명문대학의 수는 제한적이야. 수요는 많고 공급이 적다는 이야기야. 언제든지 가격이 폭등할 수 있고, 시장이 과열될 소지가 커. 입시제도를 그렇게 많이 뜯어고쳐도 대학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없었잖아. 입시제도를 손댈수록 명문대학 입학의 프리미엄만 올렸어.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이 고장 났어. 대한민국의 입시 문제는 주류 경제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골칫덩어리야. 수십 년 전부터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고 정부가 온갖 대책을 내놓았어.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과거 재수생이 많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지금은 반수, 재수, 그리고 N수를 불사하고 있어.
최근에는 SKY대학으로도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야. 가장 좋은 것은 의과대학을 진학하는 거라고 하네. 다음으로는 치대를 진학하고 한의과를 선택한다고 해. 의치한 열풍이 거세게 부는 이유는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이야. 재산이 많은 부모는 당연히 그렇지만, 그렇지 못한 부모들도 자녀를 의치한에 보내길 원해. 자녀들이 덜 고생하며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입학하자마자 의대 진학 준비를 위해 휴학하거나 아예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이 늘고 있어. 대학은 학생의 이탈을 막기 위해 상담을 강화하고, AI 상담사까지 붙여주고 있어. 그래도 중도에 대학을 그만두겠다는 신입생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야. '의치한'이 안정된 삶의 대안이 되는 한 이런 현상은 심화할 거야. 문제의 본질은 거기에 있는 거야.
'의치한'에 갈 수 있다면 7수도 좋아
세상 사는 일이 참 팍팍해. 명문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학생들은 자기가 능력 없다고 생각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자기 능력을 의심하는 학생들을 볼 때면 마음이 아파. 왜곡된 능력주의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야. 한 번의 수능 성적으로 자기 능력이 판정되는 현실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 실패를 만회하고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재수나 삼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명문대학에 진학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가. 그것도 아니야. 일부 학생은 의과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반수(半修) 혹은 재수를 선택해. 실제로 SKY대학에 합격한 학생 중 상당수가 등록을 포기하거나 입학하자마자 휴학해. 6수를 하든, 7수를 하든 “의치한’에 갈 수만 있다면 어떤 고생도 감수하겠다는 것이 젊은이의 고뇌야.
우리는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능력 있다고 생각해. 그래야만 고생을 덜 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야. 안정된 삶이란 소수의 ‘승자’에게만 허용된 거야. 그것을 결정하는 요소가 대학 진학이라면 수험생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아. 학벌은 한 번 정해지면 만회할 기회가 없어. 그래서 수많은 젊은이가 자연스레 N수생의 길에 접어들어.
자녀가 잘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바람과 좋은 대학에 진학해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학생을 누가 탓할 수 있는가. 대학 졸업장을 보고 사람을 쓰겠다는 기업과 부모의 등골을 뽑으려는 사교육 시장의 욕심이 뒤엉켜 있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야. 나름의 이유로 펄펄 끓는 각자의 욕망을 어떻게 다독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