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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의 여행자 Nov 24. 2024

프롤로그

무엇에 즐거움이 머무는가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  

 누구나가 알고 있고 흥얼거리는 노래. 제주를 대표하는 노래.

 감수광, 노래는 이미 잊힌 지 오래다. 그렇다. 모두가 떠나고 싶어 하는 그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에서 자랐다. 한라산, 360여 개의 오름 그리고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에메랄드 빛 바다. 돌, 바람, 여자가 많다는 그 제주도. 예전에는 결혼하면 손꼽히는 신혼여행지인 그 풍경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자랐지만. 제주 사람으로서 막상 맞닥뜨리는 현실은 냉혹했다.



 초등학교 때(그때는 국민학교 시절) 매일 쓴 일기로 상을 받으러 서울 한 신문사에 왔었다. 덕택에 서울의 한 지역의 초등학교에 1일 방문하고서 동학년 반인 여학생 집에 홈스테이로 1박 2일 머물렀다. 그 반에 들어서자마자 학생들은 제주에서 온 아이,라는 점에 신기해했고 폭포수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제주 사람들은 말 타고 다녀?', '너네 집도 귤 재배해?', '너네 엄마 해녀야?', '비행기 어떻게 타고 왔어?', '제주어 해봐.', '제주도도 아파트 있어?' 등등.


 그 당시 비행기 회사도 2곳 밖에 없던 시절이고, 부산에 친척이 거주하여 어릴 때부터 자주 비행기를 탔던 나와는 달리. 오히려 서울 학생들은 비행기를 타보지도 못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 수많은 질문에. '아니, 말 안 타봤고 말 본 적도 없고. 우리 집 귤농사 안 하고. 우리 엄마 해녀 아니고 나는 수영도 못 해. 비행기는 수없이 타봐 마일리지는 만이 넘었고, 비행기 안에서 신발 벗으면 안 된다. 제주어는 거의 안 써.'라고 대답했다.

 마음속으로는 '골믄 알아지크라? (말하면 알아듣겠어?)'라고 생각했을 뿐. 의외로 말도 안 타봤고 귤나무도 집에 없고 해녀도 아닌 제주 학생을 서울 학생들은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를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서울 아이들은 8절 도화지에 큰 동그라미에 한라산, 말, 귤나무, 해녀만을 그릴 뿐. 지금 생각해 보면. 그 90년대 시절, 아이들이 외딴 섬 제주에 대해 더 이상 뭘 그리겠나 싶다.

 이뿐이랴. 대학 시절에도 흔히 듣던 말은 제주어를 써보라는 거였고, 제주에서는 난 사람이 없다는 비꼬는 말을. 흔히, 종종, 자주 들었다. 에라잇. 그래, 나 섬사람이야.



 이 섬사람은 공기 좋고 한적한 밭과 돌담보다는. 복잡한 지하철 노선. 북적거리는 사람들. 반짝이는 불빛의 백화점. 수없이 비행기가 오고 가는 혼잡한 공항.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하고, 맛있고 다양한 음식점 및 물품이 있는 매력적인 서울을 동경했다. 공부와 여행을 핑계로 수시로 서울을 드나들며 화려한 서울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뭐 별거 사지 않아도. 뭐 특별한 거 먹지 않아도. 캐리어를 끌고 면세점 구경하는 것도. 청계천을 걸어 다니는 것도. 그 모든 것이. 그저 익숙하고 조그마한 섬이 아닌, 낯설고 드넓은 서울이 좋았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서울에 이주하게 되었다. 그토록 꿈에 그리고 기대하던 바였지만, 실상은 쉽지 않았다. 혼자가 아닌 가족이 있었기에. 또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은듯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환점도 필요했다. 새로운 물꼬가 트이기는 어려운 곳, 섬 안에서 뱅뱅 돌아가는 상황이 힘겨울 때이기도 했다. 결국 모든 게 안정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불안정한 상황을 선택했다. 그리고 결단했다. 가족 모두 서울에 정착하기로.



 이 글은 제주 사람이 육지에 정착하는 이야기다. 낯선 곳으로의 이사, 적응하는 모든 과정 속에.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으로서 육지의 모든 것을 얘기할 수는 없다. 제주 사람이라고 해서 말도 안 타보고 귤나무도 없으며 해녀 직업이 아닌 것처럼. 큰 도시 서울의 아주 작은 단면만을 보고 있을지도. 

 떠나 온 2년이란 시간 동안 제주도도 많이 바뀌었다. 서울의 유명한 맛집, 카페가 제주에는 만연하며. 서울에만 있고 TV광고 보며 신기해했던 컬리도 제주에 물꼬를 텄다. 서울 만의 방식을 동경하여 이곳에 왔건만, 이미 재빠르게 제주에도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 한발 늦은 자여.


 언제면 이곳에 익숙해질까. 어떻게 육지 문화에 적응될까 싶지만. 타지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언제라는 정해진 시기는 없고. 5년이든 10년이든 시간이 훌쩍 지나도 계속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 별수 없이 적응하는 과정 중에 글을 조금씩 써보려 한다. 조금이나마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

 같은 대한민국땅에 다를 것이 뭐가 있겠어, 싶지만. 좁은 땅덩어리에 별반 다를 게 없지, 싶으면서도. 섬사람, 지방 사람이 보는 서울을 확대경으로 살펴보며 이면의 다른 즐거움을 찾고자 한다. 같은 모국어를 사용해도 지역마다 쓰는 말과 억양이 다르듯이.


 바다를 볼 수 있는 창문과 바다의 속삭임을 버리고. 높은 아파트 담벼락과 도심의 침묵 속으로.

 '제주도의 푸른 밤♪' 노래와는 반대로 '서울 서울 서울♪' 이 도시의 거리로 나선다.


 게난 내 이야기 호끔만 들어 서.

 (그러니 내 이야기 한번 들어주세요.)






▲  뚝섬 한강공원의 드론 쇼  ⓒmoonlight_traveler






덧. 육지, 라 표현하면 그럼 너네는 바다에 살아,라고 육지 사람들이 되묻지만 예부터 제주 사람들은 외지를 육지라고 표현해요. 통상 육지라 하면 대표적으로 서울, 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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