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입덕기
"야구, 좋아하세요."
야구 중계 중간에 나오는 컴00 프로야구 광고 카피다. 광고에 맞춰 우리 구단이(좋아하는 팀) 나온다면 어김없이 핸드폰을 든다. 여러 구단이 돌아가면서 광고가 달라지기 때문에 지금이 기회다. 광고 시작부터 끝까지 동영상을 촬영한다. 띠링. 녹화가 됐다. 매우 흡족스럽다. 야구 사진첩에 소장할 동영상이 하나 더 생겼다. '야구 사진첩'이라 하면 핸드폰 사진 앨범 목록 중 하나다. '23년 야구', '24년 야구'.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한가. 앨범을 들여다보면 사진도 다양하다. 직관했던 경기장, 선수들 사진, 아이들 사진, 응원 동영상뿐만이 아니라 집에서 보았던 중요한 경기 동영상이 담겨 있으며 좋아하는 선수의 프로필 사진도 소장하고 있다. 물론 남편도 아이들도 아닌 내 핸드폰에.
처음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아니 관심도 없었다. 가끔 친정에 가면, 미스였던 여동생이 집에서 TV로 야구 경기를 볼 때면
"야구 지루하지 않아, 경기 시간이 너무 길어."
"두산이 뭐야? 양의지가 누구야?"
라고 말을 했으며 여동생 방 옷장에 걸린 '양의지' 선수 유니폼을 보며 '이런 건 왜 가지고 있냐.'라고 묻기도 했었다. 그랬던, 그랬었는데. 시간이 흘러 동생을 면박 주던 언니는 이제, 주말 경기 직관(직접 관람)은 물론이며 경기가 없는 월요일 빼고는 매일 휴대폰으로 야구 경기를 보는 열렬한 야구팬이 되었다. 그래서 '두산 베어스'가 '엘지 트윈스'와 함께 서울에 연고지를 두고 있으며 '양의지'선수는 두산 베어스의 안방마님, 포수임을 아는 것은 당연지사.
야구와의 첫 만남은 22년 여름으로 돌아간다. 우연히 파주에 볼일이 있어 온 가족이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낮에 파주에서 볼일을 보고 잠실 호텔로 가서 숙박을 할 예정이었다. 저녁에 시간이 비는데 무엇을 할까, 하다가 최근 들어 아이들에게 흥미가 생긴 '야구'를 보러 가기로 정했다. 사실 이미 앞선 글에서 밝힌 바 제주에서는 '야구'가 흔한 운동이 아니다. 그런데 육지에서 온 지인을 통해 야구를 알게 되었고, 아이들끼리 서로 캐치볼을 하겠다 하여 야구 글러브를 사준 참이었다. 파주에서 서울로 넘어가는 길에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야구 경기를 보기로 했다. SSG VS LG 경기다. 사실 그때는 SSG에 어떤 선수가 있고 LG가 어떤 팀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저 서울(우리나라 수도니깐)인 LG를 응원하자고 가족끼리 결정했다.
LG TWINS 응원석에 앉아서 처음으로 야구 경기를 봤다. 1루수가 뭔지, 2루수가 뭔지, 스트라이크, 볼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저 초등학교 시절 즐겁게 했던 발야구를 떠올리며 그와 비슷할 거라 여겼다. 사랑이와 기쁨이도 마찬가지. 응원석에서 앉아서 먹고 있다가, 일어나서 'LG TWINS'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따라서 춤을 추고 노래 부르며 우왕좌왕했다. 모든 상황이 처음이고 당황스러웠지만. 앞에 서 있는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를 따라 하며 열심히 응원했다. 돈 내고 경기를 보러 왔는데 응원은 해야 하지 않겠냐며. 가만히 앉아서 묵묵하게 보지 못하고 열렬한 골수팬인 것처럼 경기흐름에 따라 환호하고 때때로 좌절하며 경기에 몰입했다. 그래서였을까. 금세 경기는 9회로 달려갔다. 결국 LG TWINS 승. 몇 대 몇으로 이겼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날 밤 숙소로 가기 위해 어둑해진 인천-서울의 거리를 달리며 우리 가족은 차 안에서 야구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발야구 설명을 하면서, 야구 규칙에 대해 그리고 선수들에 대해서. 처음 본 야구 경기였지만 우리 가족 각자에게 그만큼 흥분되고 재미있었던 일은 분명했다. 그 해 가을에도 잠실 야구장으로 야구 경기를 보러 왔으니깐. 가을 여행 온 김에 여행 코스에 야구장을 필수 코스로 넣은 것이다. 두 번째 보는 경기라 어느 정도 야구 경기에 익숙했으며, 드넓은 잠실 야구장에 색다른 매력을 느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야구에 입문하고 있을 즈음.
뜻밖에 23년도에 서울로 이사 오게 되었다. 제주를 떠나기 싫다는 아이들을 유혹하기에는 '야구'만한 것이 없었다.
"우리 서울 이사 가면 비행기 타지 않아도 차로 쉽게 야구장 갈 수 있어."
"더 많이 야구장 갈 수 있겠다. 야구 직접 보면 재밌잖아."
결국 아이들에게 야구를 미끼로 그나마 덜 슬프게(겉으로는) 친구들과 고향을 이별하고 서울로 이주했다.
아이들에게는 서울 이사의 타당한 이유가 되었던 야구. 23년 3월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과의 시범 경기를 시작으로 그 해에 야구를 열망했고 LG TWINS에 열광했다. 야구는 총 10개 구단이 있으며 한 해 144경기가 치러지며 한 주에 월요일 빼고 매일 경기가 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픽(pick)한 LG TWINS팀은 서울 구단이며 잠실야구장을 홈(HOME)으로 두고 있고 1994년 이후로 우승해 본 적이 없는 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오래된 팬분들이 많음을 엿볼 수 있다. 1994년 이라니. 그렇게도 우승이 어렵단 말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우리를 환하게 환영하듯, LG TWINS는 23년도에 꽤나 많은 경기를 승리했으며. 마치 선물처럼, 결국에는 정규리그 우승,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했다. 무려 29년 만의 우승이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가. 야구에 관심을 갖고 열렬히 응원하는 우리의 마음을 LG TWINS가 알아줬을까. 정말 놀랍고도 신기했다. 94년 중년이었던 사람들은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셨으며 그때 부모 손잡고 야구장에 오던 어린아이들은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그 모든 이들이 함께 야구장에서 경기를 응원하며 우승소식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들 가운데. 우리는 엘팬(LG fan) 1년 차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게 되었다. 물론 우리는 티켓을 구하지 못해 한국시리즈를 집에서 TV로 생방송 야구 중계를 숨죽여 지켜봤고. 결국 우승을 하게 되자 거실 한복판에 네 명이 둥그렇게 서서 노란 타월을 휘날리며 '서울의 아리아'를 불렀음은 당연.
23년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으로 24년에는 더욱더 LG TWINS를 응원했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집에서든 길거리에서든지 야구 선수들(구단 상관없이)의 응원가를 불러댔으며 필자는 틈만 나면 (아이들 몰래) 야구 생중계 혹은 하이라이트를 보곤 했다. 단지 눈과 입으로 야구를 응원했느냐.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 유니폼과 포토카드
처음으로 잠실야구장에 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유니폼샵을 방문한 것이다. 먼저 유니폼 디자인과 사이즈를 골랐다. 그리고 등판에 선수 이름을 마킹해야 하지 않는가. 각자가 좋아하고 응원하는 선수 이름을 골랐다. 남편은 포수 27번 박동원선수, 나는 8번 문성주선수, 사랑이는 17번 박해민선수, 기쁨이는 10번 오지환선수. 이렇게 각자 유니폼을 고르고 마킹을 마쳤다. 진정으로 야구팬이 된 것 같은 이 기분. 더 열정적으로 야구를 응원해야 하는 명분이 생겼다. 유니폼이 한 벌 뿐인가. 이때 여동생 옷장에 걸려 있던 '양의지'선수의 유니폼 2벌의 이유를 알았다. 홈팀 경기와 원정팀 경기 유니폼이 다르다는 것. 어김없이 우리도 홈경기, 원정 경기 각각 유니폼을 구매할뿐더러 최애 선수의 플니폼(플레이어 유니폼) 및 기념구도 구매했다. 이는 매번 다른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쏠쏠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편 매주 달라지는 포토카드의 주인공. 사실 아이돌의 포토카드가 비싼 값에 팔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혀를 쯧쯧 찼었지만. 야구팬으로서 최애 선수가 포토카드의 주인공이 된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렇게 한 장 오천 원의 포토카드를 수집하고 집안 곳곳에 전시해 두는 것은 물론.
우연히 아이들이 캐치볼을 할 LG TWINS 야구공을 구매했다가 야구 선수에게 사인을 받게 된 이후로. 야구공 2개와 유성펜을 들고 다니면서 선수들에게 호시탐탐 사인받을 기회를 노리는 재미도 있다. 그렇게 인파를 뚫고 사인을 받아 거실 책장 위에 사인볼을 전시해 둔 것은 우리 집의 귀한 소장품이다. 참고로 필자는 문성주선수 팬인데, 정말 문성주선수에게 사인볼 하나 받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 굿즈(goods)
아이돌에게만 굿즈가 있으려나. 야구에도 굿즈가 있다. 유니폼과 포토카드를 넘어서서 각 구단별로 타월, 응원봉, 응원배트가 있다. 또 트렌드에 맞게 그때 유행하는 캐릭터(마루, 짱구, 춘식이, 위글위글, 망그러진곰)와 콜라보하여 때마다 인형, 모자, 유니폼, 야구공, 응원배트, 돗자리, 우비, 부채, 가방 등의 제품이 출시된다. 이렇게 다양한 상품이 출시됨에도 불구하고 모든 제품을 팬들이 환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제품들의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가장 큰 역할은 경기의 승패여부다. 한화이글스의 경우 여름에 블루컬러의 썸머 유니폼이 출시되었는데 그 유니폼을 입은 내내 경기에 승리를 거두게 되면서 썸머 유니폼의 판매율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로써 야구 굿즈 산업도 꽤나 큰 시장이다. 프로야구 사상 첫 1000만 관객을 돌파한 2024년에는 굿즈 판매 매출도 크게 상승하여 최고 340%가 상승하기도 했다. 이 천만 관객과 굿즈 판매 매출에 우리 가족 네 명의 기여도도 한몫을 차지했다고 볼 수 있다.
★ 경기장 투어
잠실야구장 이외에도 어디에서나 등장하는 열혈팬처럼 다른 지역의 경기장 즉 원정석에 앉아 누구보다도 목이 쉬도록 응원대열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다른 구장을 구경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경기 당일날 아침 일찍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리고 원정석에 겨우 앉았지만. 다른 구장은 잠실야구장처럼 크지 않아서 원정석에서도 홈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원정석인데 다른 팬들 사이에 껴서 눈치를 보며 응원해야 한다니. 나중에 알았지만 축구경기장에서는 홈 응원석에 원정팬이 입장할 수 없으며 원정석에 홈 팬이 들어올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 야구는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도 내 편도 응원하고 다른 편도 응원할 수 있는 스포츠다. 여하튼 다른 색의 유니폼 사이에서 멀뚱멀뚱 일어서서 우리 팀을 응원한다는 것이 여간 민망한 게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이 자리가 우리 자리인 것을.
잠실야구장을 비롯하여 고척, 인천 문학, 수원, 대전, 대구, 부산 사직으로 원정 응원을 갔다. 먼 길을 달려간 만큼 날씨도 좋고 경기도 이겼으면 좋겠지만. 경기 중 비가 와서 우천 중단이 되기도 하고, 폭염으로 열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경기 패배를 맛보며 다시는 이 경기장 오지 않으리라, 다짐한 적도 있었다. 패배한 이유가 이 경기장 탓이라 여기며. 그래도 우리 팀을 응원하며 그 지역의 야구 경기장을 구경하며 각 구장마다 유명한 음식을 맛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어느 야구장을 가든 맛집은 꼭 있으니 먹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사실. 야구 10개 구단 중 못 가본 구장은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 창원 NC파크 두 곳이다. 사실 서울에서 거리가 꽤나 멀어서 가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남편과 결심했다. 올해 광주와 창원 여행을 계획해서라도 야구장을 꼭 가보리라 하고. 아, 올해 대전 한화 이글스 파크가 새롭게 '대전한화생명볼파크'로 신축했다. 그럼 대전 경기장도 다시 가봐야지. 그곳은 농심가락 떡볶이가 맛있으니 꼭 먹어야겠다.
사실 야구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아이돌을 좋아하면 좋아할 이유를 백가지라도 댈 수 있는 팬의 마음이랄까. 야구가 왜 재미있고 우리 구단이 왜 좋은지. 왜 문성주선수가 최고의 선수인지 구구절절 표현할 수 있다. 여동생에게 '이런 걸 왜 봐.' 하던 필자는 공 하나에 웃고 우는 야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이긴 경기에는 경기 하이라이트, 더그아웃직캠(더그아웃 카메라) 영상을 또 보고 또 보며 즐거워한다.
왜 이렇게까지 야구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즉. 2월에 육지로 이사 와서는 아이들 전학과 적응에 힘을 쓰며 5일간 집에서만 지내는 나날 속에 마음이 많이 울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야구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북적북적거리며 봄햇살을 맞고. 맘껏 소리 지르며 손뼉 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때에는 야구가 유일한 소통의 창구였던 것. 야구장을 한 번 갔다 오면 유니폼과 굿즈들을 정리하고 손빨래하는 뒤처리가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주말마다 야구장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던 건 야구장에서의 환호만큼이나 마음이 설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야구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시즌 중에 야구팬들 사이에 늘 회자되는 말이 있다.
'경기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마라.'
이런 경기가 무려 144경기나 있다.
'그깟, 공놀이.'
농구, 배구, 축구 공보다 아주 작은 공 하나를 치고 잡으면 환호하고 못 치고 못 잡으면 분노할 때 하는 말이다. 공놀이에 그렇게 좋아하지도 그렇게 슬퍼하지도 팬끼리 싸우지도 말라는 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야구 끝인 9회 말 2 아웃 상황에서도 역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야구 경기는 끝날 때까지 이겼다, 졌다, 함부로 정할 수 없다.
그렇게 야구 경기에서 삶을 배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한 가지 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 매번 경기 때마다 우리 아이들과 나누는 이야기다.
7일 중 6일 매일 경기가 열린다. 3월~11월까지는 경기가 있다. 추운 겨울을 어찌어찌 지내다 보면, 따스한 계절 봄바람이 불어오면 꽃이 활짝 피듯이 시끌벅적한 야구 시즌이 돌아온다. 우리가 응원하는 LG TWINS는 23년 팬으로 입단한 우리에게 승리를 거머 줬다. 그리고 24년에는 정규시즌 3위에 머물렀다. 오늘로써 25년 야구 시즌은 D-44다. 지금 선수들은 따뜻한 해외로 나가 스프링캠프를 진행 중이다. 과연 올해 LG TWINS의 성적은 어떠할 것인가. 그래도 이기면 좋지,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올해 더욱더 열광적으로 잠실야구장에서 LG TWINS를 응원할 것이다. 기필코 올해는 문성주선수에게 사인을 받으리라 다짐하며.
"우리들의 함성을 여기에 모아
외쳐라 무적 LG
자 승리하라 LG
LG의 승리 위해 다 함께 외쳐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