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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아파트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by 달빛의 여행자

서울, 하면 상징하는 바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 하나를 고르자면 바로 '아파트'. 이전 글에 밝혔듯이 우리 가족은 야구 'LG TWINS'팬. 야구장에서 응원가는 많지만 그중 대표적인 노래는 바로 '아파트'와 '여행을 떠나요'이다. 필자가 중학교 시절 운동회 때 불렀던 응원가이지만 아직도 그 노래는 명불허전. 그래서 2000년대에 태어난 우리 아들들도 그 옛날 노래, '아파트'와 '여행을 떠나요' 노래를 즐겨 부른다. 매주 야구장에서 불렀던 응원가 덕분에. 이것뿐이랴. 가수 로제가 '아파트'노래는 발매함으로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온 세계가 '아파트 아파트'를 외쳤다. 정확히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그들은 춤추면서 부르는 이 '아파트(A.P.T.)'라는 단어가 어떤 뜻인 줄 알고 있을까.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동화책을 떠올려 보면, 서울에 사는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다 아파트에 살았다. 그리고 층간소음 문제가 거론되었으며, 그때 집에서 키우던 개가 짖어대는 소리에 민원이 많아 개의 성대수술을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아, 서울은 그렇구나.' '아파트는 그렇구나.'라고 여기던 그 시절. 동갑내기 사촌형제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어 항상 따스한 물이 나오고 화장실 변기가 집 내부에 있는 것이 늘 부러웠었다. 그런 부의 상징, '아파트'.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영어 들려준답시고 '슈퍼윙스'라는 만화를 영어 버전으로 보여준 적이 있다. 비행기들의 이야기인데, 주인공 '호기'가 세계 각 나라의 어린이에게 물건을 배달하는 그 과정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리는 이야기다. 호기가 세계 곳곳을 찾아 택배를 배달하는 만큼 그 나라의 풍경, 건축물, 특징들이 잘 표현된 것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호기가 '대한민국' 어린이를 찾아왔을 때 과연 우리나라는 어떻게 만화로 표현될지 궁금했다. 만화 속에서 호기가 택배 상자를 들고 찾아간 어린이의 집은 아파트였다. 그래서 몸집이 큰(비행기였기에) 호기는 아파트에 들어오기 어려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중에는 아파트 천장을 뚫는 모습도 나온다. 또한 그 어린이의 일상 모습은 학교 수업 후 방과 후, 태권도 학원, 줄넘기 학원 등등의 스케줄을 감당하는 이야기로 표현된다. 아뿔싸. 세계에서 보는 '대한민국'이미지는 이렇구나,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바로 '아파트'와 '사교육'.




물론 제주에도 아파트가 있다. 필자도 주택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5학년때 아파트로 이사 가서 현재까지 쭉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물을 가스레인지에 끓여서 찬물과 섞어서 샤워하고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집 밖을 나서야 했던 어린 시절 모든 생활은, 이제는 동화책에 나오는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여하튼 제주에도 아파트가 있지만 육지에 와서 보니 이는 차원이 다르다.

일단 층수. 아파트가 기본적으로 24층, 36층 그 이상인 아파트도 흔하다. 지인은 32층에 살게 됐는데 사다리차로 짐을 옮기는데 다리가 후들후들거렸다는 후문을 건넸다. 세상에, 32층이라니. 이렇게 무한대로 집이 높아질 수 있는가. 그 정도의 높이라면 구름을 걷는 것 같지 않을까. 제주에서 아파트 10층에 살 때도 내 지인은 집이 너무 높아서 어지럽지 않냐며, 창 밖으로 밑을 보면 아파트가 무너질 것 같다며 사설을 늘어놓았었다. 그런데 육지에서 10층은 뭐. 저(低) 층이 아닌가. 최소 20층 이상은 돼야 '아파트'라는 이름이 붙는 것 같다.


▲ 서울 어딘가, 빌딩 뒤편. 실외기가 잔뜩 달려있는데 화재 위험이 없나요 ⓒmoonlight_traveler

그리고 아파트 간격. 이리 서로 친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파트와 아파트와의 간격이 가깝다. 그리고 아파트 모양도 일(-) 자 모양보다는 기역(ㄱ) 자 모양이나 시옷(ㅅ) 자 모양의 아파트들이 많다. 워낙 땅값이 비싸서 좁은 땅 안에 많은 아파트를 지으려다 보니 그런가 싶다. 이런 친밀함은 단지 아파트뿐이랴. 집과 집의 간격. 건물과 건물의 간격. 단독주택이어도 마찬가지다. 창문을 열면 바로 앞집 창문이 보이는 건 일상다반사. 아, 창문조차 열 수 없단 말인가.

이뿐이랴. 제일 놀라운 사실은,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비밀의 아파트.

▲ 출입통제시스템 ⓒmoonlight_traveler


아파트 옆으로 큰 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공원에 가기 위해서는 아파트 단지와 공원을 연결하는 경사로나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그 경계에 철문이 하나 있다. 아파트 단지 구역을 정하고자 문은 있을 수 있지. 구역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그. 런. 데. 그 철문에 잠금장치가 달려있다. 그리고 그 철문을 매달고 있는 기둥에는 인터폰이 자리 잡고 있다. 이건 공원을 오고 가는 문이 아니라 진짜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문이다. 세상에. 대체 그 누가 '아무나'이던가. 동네 사람들. 이웃 동네 주민들. 아님 무언가를 팔러 온 사람들. 특정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아파트에 거주하지 않는 이, 외부인은 바로 '아무나'인 셈.

나중에 알았지만 이는 출입통제시스템이다. 아파트 주민의 출입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장치 시스템으로서 카드 리더기나 비밀번호를 입력해서 출입할 수 있다. 이의 목적은 '아파트 주민의 안전한 주거 환경을 유지'하는 데에 있다.

생각해 보니 '민원'에 대한 사건들이 떠오른다. (제7화 '민원 넣으세요' 참고 https://brunch.co.kr/@luckyblue5/25)

물건을 파는 상인이나 전도를 목적으로 들어오는 종교인이나 누구든지 내가 이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누리는 모든 환경을 방해하거나 저해하는 상황들을 민원 넣기 전에, 만들어놓은 안전 장치인가. 알게 모르게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로 하여금 아파트 내에서 많은 피해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모든 아파트들이 경계지역에 출입통제시스템을 만든 게 아닐까.

지하에 있는 커뮤니티 시설에 가보면 출입문에 커다랗게 '다른 아파트 주민은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파트 N카페(온라인)에서는 '단지 내 골프장에 다른 아파트 주민이 이용하고 있다', '사람이 없으면 친구 데리고 와서 같이 골프 쳐도 되지 않느냐' 며 서로 설왕설래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은 듯싶은데. 꼬박꼬박 매달 커뮤니티 시설 운영비를 내면서도 한 번도 이용하지 않은 필자 가족에게는 조금은 손해인 듯 싶기도 하다.


“아들 집 간 김에 사우나? 이젠 안돼” 강남 아파트, 안면인식 속속 도입

"입주민이 카드를 찍으면 뒤에 외부인이 붙어서 커뮤니티 시설에 입장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가구 수가 많은 대단지다 보니 외부인이 입주민 카드를 남용해 커뮤니티 시설을 사용하는 일이 빈번한데, 커뮤니티 시설에선 주민만 만나고 싶다”(00동 아파트 주민 A 씨)
서울 신축 아파트 단지들이 외부인의 커뮤니티 이용·흡연·음주·반려동물 동반 출입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입주민들은 커뮤니티 시설에 안면 인식 기술이 적용된 입출입 시스템을 도입하는가 하면, 아예 단지 내 보행로 주변에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는 울타리를 세우는 곳도 있다. 최근 입주한 주민 B씨도 “사우나·헬스장·수영장·도서관 등 아파트 단지 커뮤니티 시설 모두 사용인원 포화로 이용이 어렵다”며 “외부인이 입주민 카드를 빌려 수시로 커뮤니티를 사용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화난다”라고 말했다. 이어 “외부인 출입으로 인한 커뮤니티 유지·보수비용보다 안면인식 설치비용이 더 저렴할 것”이라며 “초기에 외부인 출입을 차단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입주민 C씨도 “입주민 전용 사우나인데, 할아버지부터 손주까지 가족 3대가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서 “외부인까지 출입해 커뮤니티 시설이 혼잡하다 보니 주민들끼리 자리싸움도 벌어진다” 고 토로했다.

-기사 출처 : 박로명 기자. 헤럴드 경제. 2024년 12월 18일


아. 카드도 아니고 핸드폰 NFC도 아니고 비밀번호도 아니고. 이제 발 빠르게 아파트에 '안면인식'이 도입되고 있다. 안전과 관리비 등의 비용과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지만. 출입통제시스템을 보더라도 더욱더 아파트가 '비밀의 아파트'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전에 육지에서 택배기사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라는 아파트가 있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기사를 보며 '쯧쯧 깍쟁이 서울사람들'이라고 혀를 찼었다. 얼마나 택배기사분들이 그 무거운 물과 박스들을 들고 배달을 하는데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란 말인가. 여차 엘리베이터 점검 시 홀로 10층까지 계단 올라가는 것도 힘든데 짐까지 들고 그 어찌 계단을 걸어간단 말인가 싶었다.

그런데 육지에서 지내다 보니 몸소 경험하게 된다. 일화로. 아이 학원 셔틀차량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엘리베이터가 위층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24층 멈추고. 22층 멈추고. 20층 멈추더니. 이제는 19층. 18층. 차례대로 멈춘다. '누군가 엘리베이터로 장난을 친 게 분명하군. 우리 차례 때 그 범인을 째려보고 말테야.'라고 다짐하던 찰나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데, 아뿔싸. 짐수레에 잔뜩 박스를 실어놓은 택배기사분이 계셨다. 위층부터 차례로 배달할 층을 한꺼번에 누르고서 한층 한층 멈춘 사이 잽싸게 택배를 문 앞에 두고 사진 찰칵.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일을 반복하고 계셨다. 이를 어쩐담.

"몇 층만 더 짐 내릴게요."

"아, 괜찮습니다."

말은 괜찮다, 고 했지만 셔틀시간이 급박해 다리는 저절로 떨리고 있었다. 결국. 택배기사님과 함께 한층 한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택배 상자를 문 앞에 두고 사진 찰칵, 다시 엘리베이터 탑승하기를 몇 번 반복해서야 1층에 내릴 수가 있었다. 늦었어, 뛰어. 하며 아이와 맘스테이션까지 뛰어가기는 덤.

아, 이렇기에 엘리베이터에 택배기사분들 이용하지 말라고 입주민들의 항의가 있었던 거구나. 우리가 사는 곳도 24층으로서 꽤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일이 전전긍긍인데. 다른 32층, 36층, 42층 아파트들은 어찌 그 층마다 멈추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말인가. 물론 엘리베이터가 2곳인 아파트도 있지만. 택배 회사가 한 곳도 아니고. 그 시간에 나 말고 다른 주민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간사하다, 사람은.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이전의 신문 기사 내용이 타당함을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분들은 우리의 편리성을 위해 그 무겁고 수고스러운 일을 24시간 해주시는 게 아닌가. 그분들의 노고를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동에 택배기사님이 오실 시간에는(거의 시간이 비슷하다) 미리 앞서 준비해서 엘리베이터 앞에 나가 있자. 아니면 계단 내려가는 일이 무릎을 무리하게 만들지라도 계단을 이용하자, 싶다.


아파트에 거주하면 관리비도 만만치 않다. 비싼 관리비를 지출하는 만큼, 그 안에 거주하는 우리 가정의 안전과 편리함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서 아파트 내에 있는 커뮤니티 시설, 즉 골프장, 헬스장, 키즈카페, 사우나 등은 우리 입주민만 쾌적하게 이용해야 하고. (물론 안전의 문제도 있지만.) 아파트 단지 내의 CCTV와 출입통제시스템은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또한 20 몇 층 혹은 30 몇 층을 오고는 엘리베이터를 신속하고 빠르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한 층 한 층 신속배달하는 택배는 없어야 한다.

,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세상이 각박하다. 그래서 다들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 건가. 물론 입주민으로서는 편리하고 쾌적한 거주지역이지만. 그 안에 많은 이들의 수고 또한 잊지 말아야 함을 생각해야겠다.

,라고 집 마당에 농사를 지어보며 살고 싶지만 여전히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자(者)가 글을 써 본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지 않는 자가
바로 '아무나'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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