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서울을 그리다
< 대문사진 출처 : @afficial_alliswell. 김포공항 가는 길 전광판 >
오래간만에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잘 지내냐, 요즘 어떻게 사느냐, 아이들은 어떠냐 간단한 안부 문자였다.
'벌써 이사간지 2년이나 됐어.'
'응, 벌써. 시간이 금방이네. 저번에 집에 일이 있어 당일치기로 제주 갔다 왔거든. 그런데 우리 살던 동네도 많이 바뀌었더라, 그새.'
'그렇지, 아파트 단지도 생기고 도로도 새로 생기고. 많이 바뀌긴 했지.'
'동네가 낯설어지니깐 제주도 낯설고. 너무 낯설더라.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고.'
'이제는 육지 것, 이 다 됐네.'
'그런가.^^'
그렇게 육지로 이사 온 지 2년 차에 고향 친구에게 '육지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제 정말. 진짜 육지 것, 이 되었는가.
육지 것이란 이름이 제주사회에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1948년 4.3 사건이 터지고 서북청년단이 무고한 제주양민을 학살하면서부터이다. 이후 6.25가 터지면서 육지 병사들이 모슬포육군 제1훈련소 등에서 훈련을 하면서 제주사회에 퍼진 말로 본다. 먼저 온 사람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상대적-방어적인 텃세 속어(俗語)인 셈이다. 즉 육지사람,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로 '-것'이라고 붙이면서 육지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육지 것'이다.
출처 : 이문호칼럼. '육지 것' vs '제주 것'. 뉴스 N제주
칼럼에서는 사람을 얕잡아 부르는 말로 '-것'이라고 나왔지만, 제주 사람들은 통상 육지에 사는 친구에게 '육지 것', 육지 사는 제주 사람이 제주 사는 친구를 '제주 것'이라고 말하며 친근하게 놀리는 말이다. 제주 친구에게 놀림을 당할 만큼 육지 것이 되었나 생각해 보자면.
아직도 민원으로 동네 N카페가 들썩일 때마다 육지 사람들의 지나친 간섭에 혀를 내두르고 있으며.
< 제07화 민원 넣으세요 >
겨우 정착한 학원에서 벗어나 이제 새로운 동네에서 학원을 이 잡듯이 찾아내 레벨테스트를 볼 생각에 심장이 터질 듯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 제04화 좋거나 나쁘거나 레테 >
그러나 막상 레테를 보고 학원을 등록하고 나니 학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원에서 우리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레테'라는 말에 섣불리 겁을 먹고 학원의 과대포장에 속아 넘어갔다는 느낌이 든다.
날씨가 너무 추워 장을 보러 가지 못해(장롱면허이기 때문에) 컬0과 쿠0에서 실시간으로 장을 보고 있으며.
< 제10화 지금 주문하신 물건은 >
3월의 봄 신학기를 준비해야 하는데 2월의 끝자락에 영하의 추운 겨울이 아직도 너무 춥고.
< 제13화 설레는 온도 적당한 습기 >
결국 쇼핑몰에서 70% 세일하는 롱패딩을 구입했다. 아니 정확히는 13화 글을 읽었는가, 남편이 대뜸 사줬다. 난생처음으로 롱패딩을 입고 나니 이 겨울세상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LG 트윈스의 유00를 통해 미국에서 스프링캠프하는 야구선수들을 응원하며 D-24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 제17화 야구, 좋아하세요 >
여전히 카페라테를 1일 한잔 하며 동네 스타벅스를 매일 출석체크하고 있다.
< 제02화 서울 동경의 시작 >
처음에는 낯설어서 '육지생활'이라고 표현했던 일들이 이제는 익숙함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럼 진정 육지 것이 되었군.
같은 대한민국 나라 아래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싶지만 나라 끝에 위치한 섬이 주는 특별함이 색다름을 알고 있다. 나름 청년시절, 떠돌듯이 육지생활을 6년간 해왔지만 혼자가 아닌 가족과 함께 육지에 거주하며 살아가는 일은 또 다른 생존임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이 낯섦과 특별함, 색다름을 기록하고자 이 브런치북을 시작하였다. 연재하는 동안 약 3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연재 글 속에 2년의 육지생활이 다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재하면서 다른 이들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하고, 제주가 그리워서 '제주'라는 단어가 브런치스토리에서 보일 때마다 클릭해 본 것은 당연지사. 일주일을 살았든 한 달을 살았든 10년을 살았든 육지 사람들이 보는 제주의 이야기는 늘 독특하고 재미가 있다. 특별히 브런치작가들이 찍은 제주 풍경 사진은 그곳이 어디인지 한눈에 알아보는 즐거움과 반가움, 그리움을 대신했다. 그 와중에도 이 본토인을 자극하는 단어들이 있었으니, 그럴 때마다 속으로 부글부글 분노가 끓어올랐다.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지 말란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 글도 육지 사람이 보건대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군.'이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럴 때마다 '아, 그만 쓸까.', 도 싶었지만 서두에 말했듯이 낯섦과 특별함, 색다름에 대해 기록하고자 했으니 끝까지 밀어붙이기로 했다. 다 털어놓고 끝내야지만이 속이 후련할 느낌. 결국 육지생활에서의 외로움, 괴로움, 즐거움을 쏟아놓고자 글을 연재한 셈이다. 콸콸콸.
다 쓰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그동안 혼자서, 혹은 남편과 얘기했던 '다름'에 대해 이 공간에 풀어헤쳐 쓸 수 있어서 감사하다. 생각해 보니 육지 생활 1년 차에는 '역시 육지.', '역시 육지 사람들'이라는 말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다. 제주사람을 벗지 못해 육지에 살면서도 외지인을 바라보던 말, '육지 사람(육지 것들)'. 그런데 2년 차가 되고 보니 '육지'라는 말을 쓸 일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 '육지'라는 단어 안에 내가 속하게 되었으므로. 결국. 그렇게 재외도민증을 가진 '육지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공항 가는 길은 설레며. 육지에서 많은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아직도 푸른 제주 바다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마음이다. 제주가 우리 가족에게 고향이듯 늘 그리워하며 살겠지, 그렇게. 그리고 육지에서 육지 것처럼 살아가겠지, 이렇게.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폭삭 속았수다. (고생하셨습니다.)
재외도민증을 가진
육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