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영일년 4月 : 혼자서 되새기는 청춘 4
프랑스 칸 출장 덕분에 파리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 바로 향한 곳이 퐁네프 다리였다. 프랑스어 퐁네프(Pont-Neuf)는 '새 것'을 뜻한다고 한다. 400년 전 최신식 석조 다리로 지어졌지만, 이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서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었다. 바로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덕분이다.
그런데 영화가 퐁네프 다리를 본뜬 인공 세트에서 촬영된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엄청난 세트 제작비 때문에 투자자들이 영화 제작 도중 파산했다고 한다. 그래도 실제 촬영지는 아니지만 퐁네프 다리에 서니 영화 속 장면들이 머릿속을 적셨다. 눈 앞 벤치에 앉은 알렉스와 미셸을 상상하니 괜스레 설렜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부랑자 알렉스(드니 라방)와 방랑자 미셸(줄리엣 비노쉬)이 퐁네프 다리에서 나눈 불꽃같은 사랑을 그린다. 레오 까락스 감독의 페르소나 드니 라방과 프랑스 국민배우 줄리엣 비노쉬의 연기는 진짜 연인들의 사랑을 보는 듯 강렬하다.
둘의 사랑은 순수하다. 떠돌이 알렉스와 시력을 잃은 화가 미셸은 가진 것이 없다. 부랑자에게 재산, 학벌, 지위가 의미 있을 리 없다. 때문에 퐁네프 다리에서 사랑의 조건 같은 건 통용되지 않는다. 조건이 사라진 다리에서 둘은 순수해서 강렬한 사랑을 나눈다. 폭죽이 터지는 밤하늘 아래, 알렉스와 미셸이 춤추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탱고나 왈츠 같은 격식과 순서 따윈 안중에 없다. 그저 흥 나는 대로 몸 가는 대로 움직일 뿐이다. 그래서 춤마저 자유롭다.
그런데 둘의 사랑에 균열이 생긴다. 바로 가지게 되면서부터다. 미셸의 아버지가 눈을 고칠 신기술을 구해 미셸을 찾는다. 그러자 알렉스는 미셸을 보내지 않으려 미셸 실종 포스터에 방화까지 저지른다. 하지만 시력을 가질 수 있게 된 미셸은 퐁네프 다리를 떠나 현실 세계로 발을 들인다. 그렇게 이별한 둘은 2년이 지나 퐁네프 다리에서 재회한다.
평화로운 파리의 낮, 퐁네프 다리 아래 벤치에 앉아 알렉스와 미셸을 떠올렸다. 예전에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둘의 결말이 과연 행복했을까 의심했다. 동료 부랑자가 알렉스에게 "사랑은 바람 부는 다리가 아니라 포근한 침대가 필요하다"라고 일갈한 것처럼 사랑에는 현실적인 조건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퐁네프 다리를 보자마자 떠오른 건 불꽃 아래서 둘이 춤췄던 순간이었다. 그들의 열정적이고 강렬했던 사랑말이다. 현실로 복귀했던 미셸이 알렉스를 다시 찾은 것도 결국 강렬했던 사랑의 순간을 잊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사랑에는 현실적인 조건이 필요하지만, 조건에서 사랑이 시작되지는 않는다. 결국 사랑은 인간의 순수한 욕망에서 시작되어 불꽃처럼 타오르는 법이다.
사랑과 이별을 되풀이하면서 어느덧 사랑이 점점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또다시 이별을 겪기 싫어 안전한 조건으로 사랑에 제약을 뒀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미지근한 물에 풀어낸 냉면 마냥 밍밍하곤 했다. 어쩌면 불꽃이 튀기도 전에 한순간의 재로 끝날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오직 사랑만 생각하게 하는 영화라서 좋다. 바다로 떠난 알렉스와 미셸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해변을 뛰어다닌다. 이 순간만큼은 둘에게 어떤 고민과 근심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처럼 현실적인 걱정은 잠시 접고 먼저 사랑을 시작하고 싶다. 활활 타올라 재가 되더라도 평생 기억될 만큼 열정적인 사랑말이다. 나는 아직 사랑을 하고 싶은 인간이다.
퐁네프 다리 아래 공원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 커플이거나 부부였다. 따뜻한 봄 햇살을 맞으며 한가로이 공원을 거닐고 있는 연인들의 표정이 깊이 우러난 평양냉면 같았다. 다음에는 꼭 누군가와 함께 오리라 결심하며 자리를 떴다. 그날 저녁은 나 홀로 파스타였다.
#. 위시리스트: 이것저것 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따라가는 불꽃같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