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영일년 4月 : 봄에 피는 청춘예찬 3
일본의 시작은 4월이다. 일본 학교는 4월에 일제히 개학하고, 일본 기업은 4월부터 회계연도를 시작한다.
즉, 일본에서 4월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처음 시작하는 설렘 가득한 시간이다.
<4월 이야기>는 모든 것이 처음인 신입생 우즈키(마츠 다카코)의 첫사랑 이야기다. 67분 분량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홋카이도 출신 우즈키는 도쿄의 대학에 입학하면서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 이웃집에 이사 인사를 돌리고, 홀로 영화관에 간다. 대학교 낚시 동아리에 가입하여 친구도 사귄다. 그리고 서점에 들러 누군가를 유심히 지켜본다.
우즈키는 시종일관 설렌다. 같이 생활하던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혼자 생활해야만 한다. 그래서 낯설고 두려울 수 있지만, 우즈키는 늘 밝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이웃과 교류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의 중심에는 첫사랑이 있다. 짝사랑하던 선배와 서점에서 만났을 때의 설렘은 영화의 절정이다.
설레는 감정으로 우즈키가 바라보는 4월의 도쿄는 아름답다. 우즈키를 시종일관 따뜻하게 비추는 봄 햇살, 바람에 휘날리는 벚꽃, 결코 차갑지 않은 봄비, 그리고 자신을 알아보는 선배의 하얀 미소까지... 비가 내리자 우즈키는 우산을 빌리기 위해 선배에게 찾아간다. 이미 우산을 빌렸지만 다시 선배를 보기 위함이다. 첫사랑에 빠진 우즈키가 바라보는 세상은 우즈키의 대사처럼‘사랑의 기적’이다.
내 첫사랑을 기억한다. 15년 전 그녀는 <4월 이야기>의 마츠 다카코를 닮았다. 매일 저녁이면 재수학원 앞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 아래에 서서 저녁노을을 바라봤다. 그러면 보라색 블라우스를 입은 한 살 연상의 그녀가 학원을 나가며 내게 인사를 건네곤 했다. 흩날리는 벚꽃 사이로 비친 그녀의 미소는 보랏빛 향기가 되어 나를 취하게 했다. 실은 저녁노을이 아닌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년이 흘러 그녀에게 고백했을 때도 봄이었다. 그녀는 부산으로, 나는 서울로 대학에 입학했고 그 후로 오랫동안 내 짝사랑은 이어졌다. 드디어 고백하기 위해 부산으로 찾아갔을 때, 그녀의 대학교 운동장에도 벚꽃나무가 있었다. 저녁노을이 아닌 그녀를 기다리며 바라본 세상은 내 심장 박동에 맞춰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녀를 사랑해서 모든 세상이 아름다웠던 사랑의 기적, 그 절정의 순간이었다.
그 순간 고백이 안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설레는 순간의 느낌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녀를 <4월 이야기> 마츠 다카코로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벚꽃이 흩날리는 저녁, 수업을 마친 그녀가 나에게 걸어왔다. 나는 감춰뒀던 꽃다발을 그녀에게 건넸다.
첫사랑은 초라한 결과보다 장엄한 시작으로 추억한다. 모든 세상이 첫사랑을 위해 돌아가고 나는 운명의 소용돌이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봄을 집어삼킬 듯 피었다가 한 번의 봄비에 아스러지는 벚꽃처럼 첫사랑의 결과에 실망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처음이란 놈은 항상 서툴고 어설퍼서 첫사랑 또한 가슴 아린 결말로 이어진다. 그래도 첫사랑을 시작하는 설렘은 첫사랑의 결말보다 거대하고 장엄해서 첫사랑 그 자체가 된다. 그래서 첫사랑의 추억이 아름다운 건지도 모르겠다.
쏟아지는 봄비 속에서 빨간 우산을 든 우즈키는 해맑게 웃는다. 앞으로 첫사랑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마냥 설레는 얼굴이다. 마치 주말을 기다리며 괜스레 긴장되는 금요일 밤 같다.
첫사랑은 그런 것이다.
#. 설레는 그때 그 순간으로 추억하기에 첫사랑은 늘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