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년 장국영에 부쳐
<해피 투게더>

혼영일년 4月 : 혼자서 되새기는 청춘 1

by 오들로

2003년 4월 1일, 나는 떠돌고 있었다.

학창 시절, 늘 고향을 떠나고 싶었다. 언제부턴가 부모님의 보호는 내게 구속이었다. 새장을 벗어나 나만의 둥지를 짓고 싶었고, 방법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듭된 수험 실패는 나를 삼수로 이끌었다.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그저 스무 살이기만 했던 나는 부유하는 존재였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고 모든 게 불안했던 날이 이어졌다.


그날 장국영은 거짓말처럼 자신의 죽음을 알려왔다.

장국영은 내 추억 속 책받침을 장식했던 영웅이었다. <영웅본색 2>의 공중전화 부스씬은 비장했으며, <천녀유혼>의 목욕통 키스는 숨막힐 것만 같았다. <패왕별희>의 경극 연기는 처절했으며, <아비정전>의 맘보춤에 넋이 나갈 정도였다. 그런데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때 정작 생각난 영화는 <영웅본색>도 <천녀유혼>도 아니었다. 바로 <해피 투게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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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투게더>는 아르헨티나에서 이방인 보영(장국영)과 아휘(양조위)의 만남, 이별을 왕가위 감독 특유의 미장센으로 빚어낸 수작이다. 이국적인 아르헨티나 풍광과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이 어우러진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영화다.


영화에서 보영은 늘 떠난다.

보영은 익숙함과 속박에 지겨워지면 자유를 찾아 떠난다. 보영의 방황에 지친 연인 아휘는 보영을 잊으려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보영을 받아들이고 만다. 다친 보영을 간호하던 아휘는 보영이 나으면 다시 떠날까 두려워 그의 여권을 숨긴다. 그러자 구속을 싫어하는 보영은 자유로운 영혼답게 떠나버리고, 결국 둘은 헤어지게 된다.


장국영의 자살 소식을 듣고 떠올랐던 장면이 있다.

보영이 집으로 돌아와 아휘의 이불을 붙들고 우는 장면이다. 보영은 아휘가 떠난 빈 집에서 이과수 폭포가 그려진 스탠드를 발견한다. 보영은 그제서야 알게 된다. 그동안 보영이 물줄기가 끝없이 떨어지는 폭포를 볼 때, 아휘는 그 폭포를 바라보는 두 연인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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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장국영은 청년이었다.

영화 속 그는 사랑 받으나 늘 혼자가 되려 했다. 사랑에 머무르지 않고 떠난 덕분에 자유로웠고 그래서 쓸쓸한 영혼이었다. 떠돌며 정착하지 못한 청춘은 떠돌았기에 청춘이었다. <해피 투게더> 보영이 울고 있을 때, 자유롭게 날아가고자 했던 스무 살의 나 또한 같이 울고 있었다.


47살의 장국영을 청년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늘 떠돌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에서나 삶에서나 그는 상처받은 영혼의 얼굴로 쓸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왕가위 감독과의 첫 번째 영화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은 맘보춤을 추기 전, ‘발 없는 새’를 얘기한다.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살았대.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쉬었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새가 죽는 때지”


자유는 청춘의 특권이지만, 대신 불안이라는 채무를 낳는다.

그래서 자유와 불안은 동시에 청춘의 상징이기도 하다. 자유롭고 싶어서 바람에 몸을 맡겨보지만 그만큼 불안하고 상처 받기도 한다. 그래도 스무 살의 내가 어둠 속에서 끝내 한 줄기 빛을 찾아낸 이유는 먹구름 속을 자유롭게 날았던 덕분이라고 믿는다. 구름은 언젠가 걷히고 해는 반드시 뜬다. 보영도 불안이란 먹구름 사이를 날아가면서 언젠가 아르헨티나 햇살 같은 희망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해피 투게더>의 원제 “춘광사설(春光乍洩)”은 구름 사이로 잠시 비치는 봄 햇살이란 뜻이다.


하늘을 날다가 끝내 죽어서야 땅에 몸을 맡겼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늘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그래서 영원한 청년이었다.

따뜻한 봄 햇살이 비치는 4월 1일이면, 그 청년이 항상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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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 없는 새가 되어 홀로 영원히 날아간 청년, 장국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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