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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라이프 Apr 26. 2020

결핍이 결핍된 사회

부족함이 주는 혜택에 대해

  언제부터인지 풍요와 편리함보다는 아날로그 시대의 느림과 결핍이 너무 그리울 때가 있다. 어릴 적 일 년에 한 번쯤 하는 만화영화 로봇 태권 V를 극장에서 보던 때가 기억난다. 마지막 적을 무찌르는 장면에서 함께 주제곡을 합창하고 손뼉 치며 보던 영화의 감동은 어디서나 언제든지 재생할 수 있는 요즘 만화영화와는 비교가 안된다. 현실과 구분이 안될 정도로 리얼하고 정교한 CG로 만들어 낸 디즈니나 픽사 애니메이션보다 2D 손 만화가 가끔씩 그리워진다. 너무 인공적이고 너무 기계적인 그 무엇인가가 화학물질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냄새나 마카 냄새를 내 삶에 잔뜩 묻혀놓는 느낌이 든다.  편리함이 애틋함을 대체하고 있다고 느끼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애틋한 말 한마디, 그 사람을 생각하며 고민하며 써 내려간 손글씨보다는 SNS에서 복사와 붙이기 기능을 이용해 몇 번의 손놀림으로 재빠르게 여러 사람에게 예의를 표시하게 되었다. 때론 그것도 좀 귀찮아서 이모티콘 한 번의 클릭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흔해지고 풍족해지고 결핍이 결핍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삶이 풍족해진다는 것은 반드시 축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맛있게 먹은 김밥은 어린 시절 소풍 가는 날 엄마가 정성스레 싸준 김밥이 아닌가 싶다. 소풍날 비가 올까 봐 걱정하며 잠자리에 들고, 긴 거리를 걸어가고 나서 맛있게 친구들과 함께 먹던 김밥의 그 소중한 맛은 김밥##, 김밥**,처럼 동네를 가득 채운 분식집에서 공장처럼 찍어내던 김밥 맛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었다.  추석빔, 설빔 때 입던 새 옷이 주는 감동은 시도 때도 없이 쇼핑으로 사 나르는 옷의 소중함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새 연필 한 자루, 새 공책 한 권도 너무 감사했던 시절을 지내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게 된다.




   슬픈 일이지만 지나친 풍족함은 우리에게 기대와 감사를 앗아간다. 너무나 바라던 한 개를 가졌을 때의 그 소중함과 각별함은 여러 개를 지니는 순간 금세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결핍을 통해 소중함을 배우고 결핍을 통해 더 큰 감사를 느끼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언젠가 자녀에게 충분하게 뒷바라지를 못 해주는 것에 대해 자책감을 느끼는 부모를 만난 적이 있다. 하지만, 역으로 내가 너무 풍족해서 아이에게 지나친 풍족함을 주고 있을 때, 오히려 아이가 소중함과 감사를 배울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자녀 성공의 필수요건인 동기유발이나 Grit(끈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다소 부족한 환경이 오히려 바람직하고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다소 부족함을 느낀 후, 성취했을 때의 감격과 감사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자녀에게 독이 될 정도의 풍족함보다는 의도적일지라도 약간의 결핍을 만들어 주는 것이 어떨까. 또한 다른 결핍을 느끼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며 그들을 통해 감사를 배우고 함께 감사함을 공유하는 경험이야 말로 정말 우리의 삶을, 우리의 마음을 한없는 풍족함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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