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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라이프 Jun 04. 2020

Racism과 Xenophobia

우린 Racism과 Xenophobia에서 자유로운가

    흑인 George Floyd의 처참한 죽음이 도화선이 되어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과 인권유린에 대한 시위가 엄청난 규모와 강도로 연일 이어지고 폭력사태와 방화, 약탈까지 일부에선 일어나고 있다. 다양성의 가치와 인권에 대한 존중이 미국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도 뿌리 깊은 내면의 환부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 하나의 사건으로 촉발되긴 했어도 최근, Breonna Taylor,  Ahmaud Arbery 등 억울하고 무고한 죽음이 계속되어 온 터라 표출된 분노의 정도는 이전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백인 경찰 Derek Chauvin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8분 이상 질식되어 숨지는 장면이 캡처돼서 SNS를 통해 퍼지게 되었다. 한 개인이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여과 없이 들여다보게 되는 과정은 나 자신에게도 고통과 슬픔 그 자체였다.


 6월 2 일은 Tulsa Race Massacre가 일어난 99주년째 되는 날이었다. 1921년 5월 30일 oil money로 부를 일군 흑인들의 Wall Street이라고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크게 융성한 흑인 지역에 와서 1500여 명의 무장 백인들이 1200여 채의 주거지를 불사르고 6월 2일까지 3일에 걸쳐 무차별 학살을 했던 사건이다. 이후 점령한 백인들은 Oklahoma Tulsa에 KKK의 지부를 크게 세우고 발전시키게 된다.

   

Corbis/Getty Images


 기술의 발달이 국가 간의 경계를 허물고 언어의 장벽을 넘고, 인류가 함께 우주로의 꿈을 쏘아 올리는 지금, 우리의 내면적 가치는  100년 전의 전근대적인 식민주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의 경쟁력인 다양성의 가치와 인권에 대한 존중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은 자신의 설자리를 잃어가는 고용불안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기득권 분쟁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들이 국수주의 정책을 기반으로 인종차별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뿐만 아니라 이 지경이 되도록 방임, 조장한 책임도 있다. 

트위터는 최근 폭력과 과열 시위를 부추긴 Antifa(극좌파)의 계정이 네오나치라는 백인우월주의 집단과 연동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트위터 계정을 폐쇄시켰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좌파 행세를 하며 긴장을 악화시키려는 정치적 권모술수까지 연루된 사실에서 인종주의가 얼마나 뿌리 깊은 편견에 기원하고 있으며, 이를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준다. 

    비단 이것은 다인종 국가인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한국의 경우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 현상) 문제도 그만큼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단일민족이라는 혈통적 순수성을 고귀한 자랑거리로 삼았지만 그만큼 사회의 개방성이나 다름에 대한 관용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다문화라는 근사한 말로 포장을 하고 있지만 사회경제적 지위가 다른 사람들과의 공존 자체를 꺼려 다문화 가정 출신이 사회적 성공 진입기회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미국의 인종주의와 한국의 제노포비아가 차별성과 배타성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많이 닮아 있으며, 나 또한 이런 경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던 나의 피부색과 외양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그 안에 들어 있는 우리 내면의 감정과 추구하는 가치가 비슷하다면 같은 인간으로서의 우리 존재의 고귀함과 존엄함은 마찬가지 아닌가. 나눔과 다양성의 소중한 가치에 대한 우리의 반성과 성찰이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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