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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라이프 Apr 24. 2020

인생도 면역이 필요해

백신과 항원은 같은 병원체

  농장에서 살 때 가장 힘들다고 느낄 때는 힘든 노동 때문이기보다는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를 겪을 때였던 것 같다. 열심히 모든 노력을 다 하고 우리가 다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쯤, 우리가 다 한 것이 아니었음을 모두 우리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지나고 보면, 힘든 시기였지만 크고 작은 시련들을 겪으면서 다른 더 큰 일들을 극복할 수 있는 면역과 내성이 우리 안에 생기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작은 실패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실패는 내 안에 더 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체계를 형성하고 이런 실패나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난 후의 성취나 성공은 겸허함을 동반하여 아름답기까지 하다. 삶의 과정 속에서 실패는 병원체로 오인받을 수도 있지만, 우리 몸에서 잘 항체를 형성하는 백신이 되어 결국 그 어떤 어려움이나 시련을 잘 극복하여 성공에 이르게 한다. 



 어느 해는 가뭄으로 내 마음까지 바짝바짝 타들어가던 때가 있었고, 또 어떤 때는 수해로 물에 잠기거나 제 때 일을 못해서 걱정이었던 때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느 정도 수확기에 접어들을 때쯤 다가오는 반갑지 않은 태풍이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다 밤 새 휘몰아치는 바람소리에 잠을 설치고 난 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과수원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배들을 바라볼 때의 참담함은 더 이상 과수원일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의욕을 꺾어 버리기에 충분하다. 일 년 동안 뙤약볕에서 일한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 정말 너무 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여서 눈물도 나지 않는다는 경험을 해 보았다.  늦게 오는 태풍은 과실이 거의 익어서 깨져 버리기 때문에 판매를 못하고 주스공장에 보내거나 폐기 처리해야 돼서 일 년 농사를 망치고 부채에 허덕이게 된다. 때론, 우박피해로 일일이 배에 움푹 패이는 상처가 생기거나, 서리피해, 저온피해로 과실 형성이 안되거나 이런저런 다양한 이유로 과실 수확이 제대로 안될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닥친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빠 좌절할 틈도 없이 자연스레 감당해 왔고 그런 크고 작은 재해들을 겪으면서 시련에 대해 조금은 더 의연해지는 내성이나 면역이 내 안에 형성되는 것을 느꼈고, 나 스스로의 인격도 조급함과 욕심과 같은 모난 부분들이 깎이고 다듬어지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재해를 겪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탄탄대로의 인생을 꿈꾼다. 그러나, 그렇게 쌩쌩 달리다가 만나는 작은 장애물에 급정거를 못 해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다. 좀 천천히 가도 되고 섰다가 가도, 돌아가도 된다.  그 길을 가서 만나는 다른 모습들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에도 면역이 필요하다. 

독감처럼 찾아오는 크고 작은 상처와 시련들이 항상 함께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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