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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Oct 29. 2015

#15 아르바이트를 하다(1/3)

현실에 눈을 뜨다

아르바이트는 대학생들에게 이제 수업과 같은 의미다. 일과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부유한 집의 학생들은 아르바이트가 굳이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일반 대학생들은 집에서 용돈을 받아도 개인의 소비욕을 채우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어떤 학생들은 등록금 이외의 용돈은 전혀 받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는 친구들도 있고, 어떤 학생들은 등록금부터 마련해야 하는 친구들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활비 또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은 자기 시간이 없다. 학교 수업을 오전이나 오후로 몰고 비는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생활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선택적인 것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철없던 스무 살의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지도 않았고, 할 생각도 없었다. 잘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중산층이라 생각했던 우리 집 경제상황에서 한 달 용돈 30만 원을 받고 다음 용돈을 타기 전까지 다 쓰면 어머니께 연락해 5~10만 원을 더 받아서 쓰면 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울어진 집안은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기울어갔다. 어머니에게 모자란 용돈 좀 부쳐 달라고 전화를 드리면 용돈을 보내주시는 시간이 점점 오래 걸렸고, 월 초가 되어 용돈을 받으러 가면 때때로 용돈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별 걱정이 없이 그저 돈을 조금 늦게 받는다라고 생각했다.


군대 2년을 마치고 오니 집 사정은 더욱 안 좋아져 있었다. 방이 3개 있는 집에서 2칸 있는 반지하로 옮겼고, 평수도 많이 줄었다. 나는 그제야 실감이 났다. 부모님은 등록금을 더 이상 지원해주지 못하신다고 했고, 나는 국가에서 해주는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전역하고 1년이 지났다. 그 1년 동안도 별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 아마 나는 인정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 전의 아르바이트 안 하고 편하게 누렸던 삶을 잃기 싫은 욕심이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생활이 힘들어지고 여자친구를 만나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데이트를 미루는 일을  반복했을 리 없다.


스물다섯이 되던 해 나는 무엇인가에 홀리듯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떤 일이든 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해본 일이 별로 없었기에 두렵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로 취업 전 경력을 쌓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는 도무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으로 아르바이트 구직사이트에 접속해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커피, 레스토랑, 고깃집, 행사장 알바, 웨이터, 돌잔치 MC 등 세기 벅찰 정도의 많은 아르바이트들이 있었고 나는 고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중 눈에 들어온 돌잔치 MC. 구인 광고를 천천히 읽어보니 돌잔치, 칠순, 결혼식 등 행사에 나가 진행하는 일로 시간 대비 수입이 좋은 일이었다. 돌잔치는 보통 3타임이 있는데 12시, 3시, 6시 이렇게 있고 한 타임에 2~3개의 돌잔치를 도맡아서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첫 번째 행사 페이는 4만 원이고,  그다음부터는 개수에 상관없이 2만 원씩 이었다. 만약 4개의 돌 잔치 진행을 했다면 4만 원 + 2만 원 x3 = 10만 원인 것이다. 학교 행사에서 몇 번 진행을 해보았던 나는 자신 있었다. 그리고 곧장 사무실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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