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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Nov 01. 2015

#17 아르바이트를 하다(3/3)

알바로 가치관을 재정립하다

나와 함께 야간에 홀에 일했던 내 또래 여자분이 있었다.  그분은 원래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어 다시 입시를 준비했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고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원치 않는 대학이라고 용돈은커녕 등록금조차 지원해주지 않으신다고 했다. 그 여자분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1주일에 5일 이상 밤에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 한다고 했다.


다른 어떤 알바생은 배달 아르바이트가 직업이라고 했다. 한 달에 2번 쉬고 일을 하면 한 달에 150만 원 이상 번다고 했다. 그는 원룸에서 살며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다국적 기업이었던 패스트푸드 점에서는 오래 일한 사원에게 승진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그는 시험을 보고 단계적으로 올라가 이 패스트푸드에서 뼈를 묻고 싶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정말 가지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모두 돈인 경우가 80% 이상이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나 역시 처음엔 돈을 벌고 싶었기에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육체노동이다. 그래서 그들과 내가 선택한 것은 육체노동이었다.

 

육체노동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나는 나의 육체와 시간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몸이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언젠가는 늙을 것이고, 내가 아무리 젊다지만 언젠가는 늙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스쿠터를 타고 새벽의 거리를 달리며 지식노동자가 되어야겠다고 어렴풋이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르바이트 3개를 하며 한 학기를 보냈다.  그때 나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그동안 너무 편안하게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도전한 것이었다. 그 학기의 학점은 보란 듯이 잘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학점보다 중요한 돈의 가치와 내가 번 돈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과 직업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도서관 사서처럼 앉아서 하는 편안한 사무직 일은 편하고, 안정적이다. 하지만 능동적이지 않다. 생산적이지도 않다. 수동적으로 모든 일들을 맞이하고  처리한다. 새로운 일이 발생하면 귀찮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돌잔치 MC는 능동적이고, 활기차다. 50명  이상되는 사람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해야 하고 아기의 어머니, 아버지의 눈치를 잘 봐가며 진행해야 한다. 부모의 성향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고 내가 준비해간 대로  진행하다가는 부모가 컴플레인을 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맥도널드 야간 배달 아르바이트는 육체와의 싸움이었다. 새벽에 배달하는 중 깜박 졸아 오토바이가 휘청해 사고가 날  뻔한 경우도 있었고, 3개의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계속해나가니까 3개월이 지나가면서는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사실 큰 힘을 쓰는 일은 아니었지만 밤에 일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힘들게 번 돈은 함부로 쓸 수 없었다. 돈의 가치를 다시 정립한 것이다. 나는 신발, 전자제품 등 필요한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갖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돈에 매몰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돈은 필요한 만큼 벌면 된다. 하지만 일은 달랐다. 일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단순히 돈만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은 나를 좀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쩌면 돈을 벌면서 직업관을 형성했는지도 모른다. 아르바이트 경험이란 것이 당시에는  그때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노동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와 잘 맞는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인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하고, 어떤 일을 하면 재미있는지를 찾는 시간인 것이었다.


나는 그런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으니 모든 경험이 새로웠다. 이기적인 사람, 화를 잘 내는 사람, 착한 사람, 자기 주장만 펼치는 사람, 피해를 감수하는 사람, 사람을 막 대하는 사람 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마주했고, 그들과의 만남에서 나는 많은 인생 교훈을 얻었다.


처음엔 단순히 생존을 위한 일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인생과 직업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르바이트는 그런 의미에서 꼭 해봐야 하는 것이다. 부모님에게서 돈을 받아쓰면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도 안 된다. 독립이란 경제적으로 부모님에게서  자유로워졌을 때 비로소 실현 가능한 일이 된다.


독립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부모님의 품 안에서 느끼는 온기는 사회에서 맞는 찬 바람으로 다 식어버린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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