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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Nov 04. 2015

#19 익숙한 것과의 결별(2/3)

떠나라

타즈매니아에서 멜버른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본 멜버른 야경

나는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바꿀 수 없음을 깨닫고, 내가 이 곳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운 좋게 뽑힌 필리핀 어학원 매니저 자리로 영어공부를 하러 떠났다. 사실 필리핀에서도 술을 아예 끊은 것은 아니었다. 평일에는 한 잔도 못 마시지만 주말에는 실컷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아직까지도 나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편으로 내가 한국을 떠나 필리핀에 있는 동안 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것은 중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술자리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필리핀에서의 4개월은 그럭저럭 흘렀다. 더운 날씨 탓하며 스스로 게을러진 부분도 있지만 일단 익숙한 것과의 결별의 시작으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필리핀 어학원 매니저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나의 결별에 대한 갈증은 해갈되지 않은 상태였다. 떠나야만 했다. 어떤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내가 새롭게 태어나고 싶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곳에서 내가 스스로 이겨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한국에 들어와 한 달 정도 쉬면서 어디를, 어떻게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였고 그 전부터 생각이 있었던 워킹홀리데이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변 사람 몇 명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거나 가있는 상황이었고, 나는 그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들은 한결 같이 꼭 가라고 말했다. 그들이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한 자유를 그곳에선 느꼈던 것 같다.


나는 호주로 가기로 마음먹은 순간 비자와 떠날 준비를 하였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많은 정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확실한 것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떠남’ 자체가 목적이었다.


늦은 체크인으로 아슬아슬하게 탄 시드니행 비행기에서의 내 마음은 설렘과 불안감이 뒤섞여 복잡했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걱정하기도 하고, 생각하며 혼자 감정을 이겨내느라 버거웠다. 지금 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을 떠나 호주로 가는 비행기부터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처음엔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일하는 것 모두 낯설었다. 호주에 처음 갔을 때 만난 학교 동기가 있었고, 그 동기와 함께 이동한 지역에는 학교 선배가 있었다.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 힘나는 일이다. 하지만 나의 목적이었던 ‘익숙한 것과의 결별’과는 다른 행보였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힘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오로지 나만 믿고, 내가 헤쳐나가고 싶었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고,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달 반 가량을 같이 지내고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가 있었던 타즈매니아 지역이 겨울로 접어들면서 일이 줄어듦에 따라 워커의 수요도 줄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아는 형의 친구가 준 정보를 믿고 다시 멜버른에서 450km 떨어진 곳인 나라쿠트의 소공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진정한 워킹홀리데이의 시작이자,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시작했다.


일자리 정보가 있다는 것만 알고 갔지 다른 아무 정보도 없었다. 인터넷에 있는 몇 개의 후기 글들은 나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그것은 마치 글을 읽고 세계 여행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씩 체험하고, 느끼면서 나를 내려놓기도 하고, 혼자 힘을 내보기도 하면서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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