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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Nov 05. 2015

#20 익숙한 것과의 결별(3/3)

결별하라

워킹홀리데이 초반에 지냈던 1인실 같은 2인실 방

제일 처음으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의식주 해결이었다. 자취 경험이 있었지만 간혹 집에 가면 어머니가 해주시는 빨래 덕분에 빨래는 내 삶과 동떨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는 빨래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예전에는 수건을 한 번만 쓰면 바로 빨래통에 넣었지만 내가 빨래를 하고 나서부터는 그럴수가 없었다. 참 요상한 일이다. 어머니가 해주실 때는 그렇게 많이 쓰던 수건을 내가 직접 빨래를 하고, 쓰려니까 많이 못쓰겠던 것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사소하지만 이런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식. 삼시 세끼 메인반찬이 없으면 반찬 투정을 부렸던 것이 호사였다. 아침에는 토스트 점심에는 라면, 저녁에는 간단한 볶음밥을 해먹었다. 본격적으로 일을 다니고서 부터는 아침에는 시리얼, 공장에서는 1주일치 카레를 만들어 카레만 싸갔고, 저녁엔 음식할 힘이 없어 라면만 끓여 먹었다. ‘그 사람이 먹는 것이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처럼 먹는 일은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음식을 해먹으면서 군대를 전역하고 느꼈던 엄마 밥상의 소중함보다 더 큰 소중함을 느꼈다.


마지막으로는 잠자리 및 전반적인 생활. 워킹홀리데이에서는 돈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상황들이 많이 생긴다. 작은 돈인 것 같지만 1주일에 방값이 10~30불 차이면 한 달에 100불 이상 차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싼 방에 가면 싼 방값을 하고, 비싼 방에 가면 비싼 방값을 한다. 자신의 가치와 판단 기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나는 벌레만 안 나오면 어디든 누워 잘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잠자리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라쿠트에서 내가 머문 방은 2인실이었다.(훗날 나는 그 방을 1인실로 썼다.) 원래는 1인실이면 넉넉하지만 2인실로 쓰기엔 조금 부족한 방이었지만 워킹홀리데이를 온 사람들의 특성상 방값을 줄이기 위해 여려 명이서 방을 쓰는 것이 일상화 되어있다.


방에는 프레임없이 메트리스만 두 개 놓여져 있었고, 옷을 걸 수 있는 행거와 탁자 그리고 의자 한 개가 있었다. 나와 룸메이트(이하 룸메)는 서로 개인적인 성향이 강했다. 서로 할 일을 하고 간섭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가 룸메보다 형이어서 편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도 그 친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 룸메는 나보다 3살이 어린 친구였는데 내가 저 나이때 워킹홀리데이를 왔으면 저렇게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한 친구였다. 공부하고, 책을 읽고, 이 공장을 마치고 다음 일자리는 어디가 좋을지 계속 생각하는 친구였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이런 것이다. 부모님도, 친구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없는 곳에서 의식주를 내가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주체적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 시키거나 혹은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일들을 해야하는 것이다.


생존하기 위한 일들을 하다보면 자신을 만나게 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나는 어떤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지, 귀찮더라도 빨래를 자주하는 것이 좋은지, 지겹더라도 음식을 한 번에 해놓고 여러 번 먹는 것이 좋은지 등 사소하지만 혼자 해결하면서 진정한 자신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다.


나침반을 통해 방향을 찾을 때 나침반의 침이 빙그르르 돈다. 정확한 내 방향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런 빙그르르 돌아감 없이 나침반은 자신의 방향이 어디인지 알려줄 수 없다. 삶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통해 이런, 저런 혼란과 어려움을 겪어보면서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자신을 만나는 일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처음만 고생하면 나중엔 점점 고생이 익숙해지고, 내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나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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