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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Nov 07. 2015

#21 자립과 독립으로 내가 되다(1/3)

자기 일은 스스로하자

교육방송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유럽과 한국의 육아 방식의 차이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아이의 나이는 똑같은 6살이었다. 영국의 엄마는 아침에 자신의 일을 한다.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차리고 아이를 부른다. 아이는 낑낑대며 자신의 옷을 차려 입고, 여러 개의 시리얼 중 자기가 먹고 싶은 시리얼을 우유에 부어 먹고, 혼자 이를 닦고, 혼자 신발을 신고 프리 스쿨에 간다. 반면에 한국의 6살 아이는 일어날 때부터 엄마가 깨워주고, 씻겨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이를 닦아주고, 신발은 신겨, 안아서 문밖을 나간다.


자아가 형성되어가는 단계에서부터 이렇게 큰 양육방식의 차이가 나면 몇 년후 청소년 시기가 지나고 갓 성인이 되었을 때면 벌써 10년에서 15년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누군가 도와주는 삶과 자기 스스로 하나씩 해나가야 하는 삶 중 어떤 삶이 자존이 강할까?


영국의 아이는 자신이 자기 일을 하는 것에 전혀 거부감이 없어 보였다. 다만 느리고, 잘 안 될 때에는 엄마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조금 느려도 말이다.


우리 사회가 자식에 대한 사랑의 도가 넘쳐 과보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아이들은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반면에 같은 나이의 우리나라의 아이는 칭얼대기 바쁘다. 졸린 눈을 비비는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힌다. 아이는 어린이집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가기  힘들어한다. 결국엔 눈물을 보인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나의 유년시절도 돌아보았다. 내가 기억나는 어린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 그리고 중학교 이후를 보면 나름 독립적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모든 일에는 부모님이 개입되어 있었고, 부모님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일이 많다. 아마 우리 어머니는 일을 하셔서 덜 한 편이었는데도 나에게 그런 인상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엄마들의 자식사랑은 세계에서도 으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양육풍토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대학교에서 가서도 부모님의 선택 기준에 따라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거나 앞 일을 결정하는 경우가 생긴다.  몇몇 부모들은 대학생인 자식의 담당 교수에게 찾아가 직접 진로 상담을 받기도 한다는 뉴스를 보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데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고,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부모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쳐가면서 자식에게 그럴 수 있을까?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다. 사람은 태어남을 시작으로부터 독립된 하나의 개체이다. 그 누구의 소속도 아니며 그저 그 사람이다. 부모의 DNA에 따라 지능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환경에 따라 사람의 성장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려면 선택하는 연습을 어릴 때부터 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하는 선택 연습은 실수와 실패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그 실수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내 자식은 그러지 않길 바라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들을 선택해주고,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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