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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Nov 09. 2015

#23 자립과 독립으로 내가 되다(3/3)

필리핀에서 나는 완벽한 자립을 하지 못했다. 필리핀 어학원들은 삼시세끼 밥을 주고, 빨래도 해준다. 매니저였던 나는 식숙사 비용 일체를  면제받는 대신에 학원에서 학사관리를 해야 했다. 몇 명 안 되는 작은 사무실에서 큰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회사 생활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생활은 안정되고 좋지만 심장이 뛰는 일은 아니고, 그렇다고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의 4개월은 빨리 지나갔다. 시간이 가는 것을 잊고 있으면 금세 1달이 지나고 어느새 매니저로서의 생활도 끝나갔다. 학원에서는 더 머물러주기를 원하는 눈치였지만 점점 생활이 지루해지고 학원에서 공부하고, 일을 하는 비율도 일 쪽으로 늘어가는 느낌을 받아서 더 있을 수 없었다.


한국에 들어온 나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고, 떠났다. 호주에서는 A부터 Z까지 다 내가 해야 했다. 음식, 빨래, 거주, 장보기, 청소 등등 어느 것 하나 누가 대신해주는 법이 없었다. 한국에서 자취도 해보았지만 밥은 거의 해먹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학교 근처에서  사 먹어도 그렇게 비싸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외식을 하면 비쌌다. 외식 한 번 하면 그 가격으로 3~4 일치  식사할 수 있는 장을 볼 수 있는 가격이 나왔다.


나는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간이 맞지 않아 인공조미료를 많이 넣었다. 하나, 둘씩 시도해서 음식이 완성되는 것을 보면 신기했다. 어쩔 때는 같이 사는 쉐어메이트들이 내가 해준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해주면 기분이 좋았다.


진정한 자립과 독립의 시작이었다. 빨래도 수건과 옷을 같이 돌리면 수건에 있는 먼지들이 옷에 묻는다는 것을 알고 귀찮지만 분리해서 돌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소는 자주는 아니지만 1주일에 한 번이라도 깔끔하게 하려고 했다. 내가 생활하는 곳에 대한 청결의식이 생긴 것이다.


조금씩 나는 변해갔다. 내가 된다는 것에 의미를 깨달으면서 말이다. 어쩔 때는 모든 집안 일이 귀찮아지기도 하고, 어쩔 땐 지저분해진 모든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부지런을 떨기도 했다. 매번 깔끔하게, 맛있는 것을 해먹고, 살기는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혼자 무엇인가 한다는 것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일정을 조정하는 법도 배웠다.


이제야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먹을 때 행복한지, 무엇을 하기 싫은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 먹는 것보다 귀찮더라도 밥 해먹는 것이 좋고, 귀찮아도 청소를 하고 쉬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 영역을 어지럽히는 것을 싫어하고, 규칙적으로 사는 것이 편하다.


첫걸음은 필리핀 어학원 매니저였다.  그때부터 하나씩 해온 자립과 독립을 위한 생활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 같다. 처음엔 어렵다. 무엇을 선택하고, 그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인 적이 없다면 더욱 힘들다. 하지만 하나씩 해가면서 일이  해결될 때는 쾌감을 느끼고, 뭔가 잘 안되어서 실패하거나 꼬여도 그 일을 풀어가는 재미도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실천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다.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없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바란다면 이전과는 다른 선택과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첫걸음으로서 자립과 독립이 좋은 디딤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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